[커버 스토리 : 벼랑 끝에 선 자영업]
“코로나19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밤 10시 시간 제한 때보다 상황이 심각해요. 지금 다 녹다운이에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식당을 하는 장은영(42) 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했다. 요식업 10년 차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지만 최근 가게 사정은 최악이다. 그는 “적자를 감수하고 문을 여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PART1) 9월 위기설 끝난 게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정부가 나서 ‘9월 자영업자 대란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못 박았지만 체감은 다르다. 자영업자 140만여 명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폐업 관련 글이 올라온다. “이제 장사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고비입니다”, “6년 카페 폐업합니다”, “매출이 점점 더 떨어집니다. 무섭습니다”….
지난 9월 자영업자 대란설, 이른바 ‘9월 위기설’은 정부가 코로나19 지원 대책으로 각종 대출에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해준 조치들이 9월이면 종료돼 잠재된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불거졌다.
정부는 우려를 일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6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상환 유예 차주의 98%가 상환 계획서 작성을 끝냈다”며 “이에 속하지 않는 일부 부실 가능성이 있는 차주는 30조원 정도의 기금을 통해 재무 조정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의 경우 전체 대상 채무가 당초 100조원에서 76조원으로 감소하는 등 연착륙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9월 자영업자 대란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폐업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9월 위기설이 끝난 게 아니라, “9월부터 터져나가기 시작한다는 의미”였단 자조도 나온다.
수치도 심상치 않다. 자영업자 비율은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를 기록했다. 1963년 37%를 넘은 뒤 차츰 줄어들면서 지난해 말 20.1%대로 내려왔고 분기 기준 20%대 아래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질이다. 직원 한 명도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는 통상 독자적으로 사업하는 개인 사업자 또는 소규모 사업자를 지칭하는데 통계에서도 고용원이 있나, 없나로 자영업자를 세분화한다.
이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578만4000명의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37만 명으로 전체의 75.6%를 차지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까지는 70% 초반대를 기록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부터 75%를 넘긴 이후 나 홀로 자영업자의 비율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의 증가는 자영업의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자영업자가 경영난에 처하면 인건비를 가장 먼저 줄인다. 이 때문에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이마저도 버티지 못하면 폐업에 이르는 수순이다. 마지현 파이터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직원을 해고하게 됨에 따라 상당수의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최영균(52·가명) 씨도 최근 나 홀로 자영업자가 됐다. 코로나19 시간 제한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2022년부터 경영난에 처했던 최 씨는 고금리·고물가 폭탄에 지난 6월 직원에 이어 알바생마저 정리했다. 최 씨는 “버티고 버티다 물가 폭등에 더는 버틸 수 없어 혼자 하게 됐다”며 “나 홀로 하다가 조금 바빠지면 아내, 더 바빠지면 자녀들을 불러 일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를 항복시킨 것은 고금리·고물가다. 올해 3월 임대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건물주는 월세 10% 인상을 통보했다. 코로나19 위기 때 월세를 올리지 않는 등 주변 시세보다 싸게 받았지만 금리인상으로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게 건물주의 말이다. 더 큰 난관은 물가다. 전기료·가스비·재료비 모두 턱없이 올라 임대료와 공과금 여기에 인건비를 주고나면 ‘마이너스’ 신세다. 최 씨는 “분식점 특성상 음식 값을 올릴 수도 없어 하루 10만원의 매출 올리기도 어려운 날이 많았다”며 “재료비를 마련하려고 장사하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PART2) 과당 경쟁, 후진국 규모‘위기의 자영업’, ‘자영업의 추락’과 같은 표현들은 업계를 묘사해 온 단골 소재였다. 그만큼 자영업자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97년 외환 위기와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굵직한 거시 경제 충격과 소비 침체가 닥칠 때마다 자영업은 큰 폭으로 출렁였다. 이진국 KDI 연구위원은 “국내 자영업의 위기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현재까지 지속되는 추세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계의 경영난은 왜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경제의 체질이나 구조와 연관돼 있는 것은 아닐까.
경기도 화성시에서 마라탕 음식점을 운영하던 김영미(56·가명) 씨는 지난 7월 탕후루로 업종을 변경했다. 탕후루 프랜차이즈의 마진율이 좋다는 소식에 유행이 식기 전 빠르게 손님 잡기에 나서겠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개점할 때만 해도 반경 5km 내에 동일 업종이 없었지만 지금은 2km 이내에 탕후루 매장만 3개가 들어섰다. 매출도 반 토막이다. 오픈 초창기에는 줄 서서 구매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방과 후에나 시끌벅적하다.
A 씨의 사례는 한국 자영업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과당 경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 사업 거래에 등록된 탕후루 프랜차이즈는 모두 6곳이다.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달콤나라앨리스가 운영하는 왕가탕후루다. 이곳은 지난해 43곳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가맹점을 크게 늘리며 현재 420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유사 점포의 난립과 경쟁 심화는 자영업자의 경영난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 감소 추세다. 하지만 타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영업자(self-employment=자영업자+무급 가족 종사자)를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3.5%다. OECD 국가 35개국 중 여덟째로 높았다.
미국(6.6%, 2021년 기준), 독일(8.7%), 일본(9.6%)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큰 편이다. 반면 한국보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국가는 콜롬비아(53.1%, 2021년 기준), 브라질(32.1%), 멕시코(31.8%), 그리스(30.3%), 튀르키예(30.2%), 코스타리카(26.5%), 칠레(24.8%)로 중남미 국가가 많다. 제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거나 관광 산업이 높은 비율을 차지해 자영업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높은 비율의 자영업자는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경제의 상징이다. 많은 연구에서 산업화의 정도가 미흡하거나 노동 시장이 유연하지 못하거나 개인 소득세나 사회 보장 분담금이 많다거나 실업급여 수준이 낮다거나 조세 회피 가능성이 높으면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실제 중남미는 인플레이션 속에 쇠락의 길을 걷으면서 빈곤층의 자영업 비율이 높다. 그리스 또한 2009년 경제 위기를 겪은 후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받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반면 한국은 선진국이다. 2021년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 지위를 공인받았다.(그해 7월 개최된 제68차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무역개발이사회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886달러(약 4248만원)인데 경제가 쇠락하거나 산업화의 정도가 미흡해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노동 시장 경직과 사회적 자본, 사회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점을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로 제시한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의 저서 ‘수축사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상태에서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고육지책으로 나왔다. 60여 년 동안 수출 주도 성장에 매진하면서 한국이 이룬 성장은 가히 역대급이다. 하지만 시야가 좁았다.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 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적 자본 축적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내수 경제(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수출(대기업) 경기 간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고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양극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출 주도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 한국 경제는 고용 인구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임금 노동자에 흡수되지 못한 고용 인구는 내수 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 분산됐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지연된 산업화의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한국의 대표 산업 도시인 울산 지역의 자영업자 비율이 전국에서 둘째로 낮은 것(1위는 세종시)도 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PART3) 고령화 시대 뇌관은 자영업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위험성이 크다. 자영업이 어려워지면 다시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상공인을 위한 퇴직금으로 통하는 ‘노란우산 공제의 폐업 공제금’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만4191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치였던 2021년 지급 건수가 9만9388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지급 건수는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노란우산 공제는 소상공인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다가 폐업할 때 기존에 납입한 돈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제도다. 즉 지급 건수가 많을수록 폐업한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노란우산 공제에 가입하지 않은 자영업자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소상공인 폐업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 큰 뇌관은 고령화다. 은퇴 이후 재취업이 안 되는 고령자들은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고령 자영업자의 고용의 질은 형편없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며 최근 5개년간(2017~2021년) 15세 이상 전체 자영업자 수는 3.2%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1.4%나 증가했다. 특히 2021년 60세 이상 자영업자 10명 중 9명(87.2%)은 고용원이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였다.
대부분의 고령 자영업자들은 부족한 창업 자금을 가지고 철저한 시장 조사 없이 급박하게 사업을 시작했고 무한 경쟁의 자영업 시장에서 최저임금 수준도 벌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8월 기준으로 1년 이내 사업을 시작한 60세 이상 자영업자 10명 중 4명(43.0%)은 ‘500만원 미만’으로 창업했으며, 64.5%는 창업 준비 기간이 ‘1~3개월 미만’이었다(통계청 비임금 근로 부가 조사).
월평균 영업이익 또한 세대 중 가장 낮았다. 2019년 기준 월평균 영업이익이 최저임금(주40시간 기준 174.5만원)보다 낮은 소상공인 비율은 60세 이상이 53.6%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50대(37.3%)다.
고령화로 노동 시장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령층의 자영업 진출 증가 경향이 지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고령 국가 일본은 이미 고령층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최고치를 찍었다. 2016년에 이미 전체 자영업자의 35.9%,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41.6%가 고령자다.
하지만 고령층의 열악한 고용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당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 자영업자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한다. 한국은행은 ‘일본 고령층 고용의 3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며 “한국 노인 세대의 경제 여건은 일본에 비해서도 매우 열악하고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20년의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다.
우리는 어떠한 방안이 있을까. 2018년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골목 상권 활성화 방안을 듣기 위해 외식 전문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국회로 불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백종원 매직’은 그칠 줄 모른다. 자영업자의 구원투수가 정부가 아닌 백종원 대표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TV과 유튜브에서는 자영업자를 살리는 제2의 백종원 프로그램이 화제다.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 ‘장사의 신’ 등등이다.
홍성국 의원은 그의 저서에서 “자영업자의 쇠퇴는 사회적 변화가 원인이지 아이디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더 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문가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자영업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질적 성장’과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기의 자영업자를 위한 진짜 구원투수가 필요한 시기다.
[커버스토리 : 벼랑 끝에 선 자영업]
-“아프니까 사장이다”…녹다운 자영업자
-“순수익 1000만원에서 마이너스 됐다”…자영업자 위기
-유동성 스쳐간 자리엔 공실뿐…자영업자 쓰러지자 텅 빈 상권
-아파트 이어 상가 거래도 뚝… 공인중개사 10개월간 1만2500개 폐업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코로나19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밤 10시 시간 제한 때보다 상황이 심각해요. 지금 다 녹다운이에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식당을 하는 장은영(42) 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했다. 요식업 10년 차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지만 최근 가게 사정은 최악이다. 그는 “적자를 감수하고 문을 여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PART1) 9월 위기설 끝난 게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정부가 나서 ‘9월 자영업자 대란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못 박았지만 체감은 다르다. 자영업자 140만여 명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폐업 관련 글이 올라온다. “이제 장사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고비입니다”, “6년 카페 폐업합니다”, “매출이 점점 더 떨어집니다. 무섭습니다”….
지난 9월 자영업자 대란설, 이른바 ‘9월 위기설’은 정부가 코로나19 지원 대책으로 각종 대출에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해준 조치들이 9월이면 종료돼 잠재된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불거졌다.
정부는 우려를 일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6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상환 유예 차주의 98%가 상환 계획서 작성을 끝냈다”며 “이에 속하지 않는 일부 부실 가능성이 있는 차주는 30조원 정도의 기금을 통해 재무 조정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의 경우 전체 대상 채무가 당초 100조원에서 76조원으로 감소하는 등 연착륙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9월 자영업자 대란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폐업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9월 위기설이 끝난 게 아니라, “9월부터 터져나가기 시작한다는 의미”였단 자조도 나온다.
수치도 심상치 않다. 자영업자 비율은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를 기록했다. 1963년 37%를 넘은 뒤 차츰 줄어들면서 지난해 말 20.1%대로 내려왔고 분기 기준 20%대 아래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질이다. 직원 한 명도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는 통상 독자적으로 사업하는 개인 사업자 또는 소규모 사업자를 지칭하는데 통계에서도 고용원이 있나, 없나로 자영업자를 세분화한다.
이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578만4000명의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37만 명으로 전체의 75.6%를 차지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까지는 70% 초반대를 기록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부터 75%를 넘긴 이후 나 홀로 자영업자의 비율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의 증가는 자영업의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자영업자가 경영난에 처하면 인건비를 가장 먼저 줄인다. 이 때문에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이마저도 버티지 못하면 폐업에 이르는 수순이다. 마지현 파이터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직원을 해고하게 됨에 따라 상당수의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최영균(52·가명) 씨도 최근 나 홀로 자영업자가 됐다. 코로나19 시간 제한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2022년부터 경영난에 처했던 최 씨는 고금리·고물가 폭탄에 지난 6월 직원에 이어 알바생마저 정리했다. 최 씨는 “버티고 버티다 물가 폭등에 더는 버틸 수 없어 혼자 하게 됐다”며 “나 홀로 하다가 조금 바빠지면 아내, 더 바빠지면 자녀들을 불러 일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를 항복시킨 것은 고금리·고물가다. 올해 3월 임대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건물주는 월세 10% 인상을 통보했다. 코로나19 위기 때 월세를 올리지 않는 등 주변 시세보다 싸게 받았지만 금리인상으로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게 건물주의 말이다. 더 큰 난관은 물가다. 전기료·가스비·재료비 모두 턱없이 올라 임대료와 공과금 여기에 인건비를 주고나면 ‘마이너스’ 신세다. 최 씨는 “분식점 특성상 음식 값을 올릴 수도 없어 하루 10만원의 매출 올리기도 어려운 날이 많았다”며 “재료비를 마련하려고 장사하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PART2) 과당 경쟁, 후진국 규모‘위기의 자영업’, ‘자영업의 추락’과 같은 표현들은 업계를 묘사해 온 단골 소재였다. 그만큼 자영업자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97년 외환 위기와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굵직한 거시 경제 충격과 소비 침체가 닥칠 때마다 자영업은 큰 폭으로 출렁였다. 이진국 KDI 연구위원은 “국내 자영업의 위기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현재까지 지속되는 추세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계의 경영난은 왜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경제의 체질이나 구조와 연관돼 있는 것은 아닐까.
경기도 화성시에서 마라탕 음식점을 운영하던 김영미(56·가명) 씨는 지난 7월 탕후루로 업종을 변경했다. 탕후루 프랜차이즈의 마진율이 좋다는 소식에 유행이 식기 전 빠르게 손님 잡기에 나서겠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개점할 때만 해도 반경 5km 내에 동일 업종이 없었지만 지금은 2km 이내에 탕후루 매장만 3개가 들어섰다. 매출도 반 토막이다. 오픈 초창기에는 줄 서서 구매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방과 후에나 시끌벅적하다.
A 씨의 사례는 한국 자영업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과당 경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 사업 거래에 등록된 탕후루 프랜차이즈는 모두 6곳이다.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달콤나라앨리스가 운영하는 왕가탕후루다. 이곳은 지난해 43곳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가맹점을 크게 늘리며 현재 420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유사 점포의 난립과 경쟁 심화는 자영업자의 경영난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 감소 추세다. 하지만 타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영업자(self-employment=자영업자+무급 가족 종사자)를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3.5%다. OECD 국가 35개국 중 여덟째로 높았다.
미국(6.6%, 2021년 기준), 독일(8.7%), 일본(9.6%)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큰 편이다. 반면 한국보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국가는 콜롬비아(53.1%, 2021년 기준), 브라질(32.1%), 멕시코(31.8%), 그리스(30.3%), 튀르키예(30.2%), 코스타리카(26.5%), 칠레(24.8%)로 중남미 국가가 많다. 제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거나 관광 산업이 높은 비율을 차지해 자영업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높은 비율의 자영업자는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경제의 상징이다. 많은 연구에서 산업화의 정도가 미흡하거나 노동 시장이 유연하지 못하거나 개인 소득세나 사회 보장 분담금이 많다거나 실업급여 수준이 낮다거나 조세 회피 가능성이 높으면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실제 중남미는 인플레이션 속에 쇠락의 길을 걷으면서 빈곤층의 자영업 비율이 높다. 그리스 또한 2009년 경제 위기를 겪은 후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받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반면 한국은 선진국이다. 2021년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 지위를 공인받았다.(그해 7월 개최된 제68차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무역개발이사회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886달러(약 4248만원)인데 경제가 쇠락하거나 산업화의 정도가 미흡해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노동 시장 경직과 사회적 자본, 사회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점을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로 제시한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의 저서 ‘수축사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상태에서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고육지책으로 나왔다. 60여 년 동안 수출 주도 성장에 매진하면서 한국이 이룬 성장은 가히 역대급이다. 하지만 시야가 좁았다.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 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적 자본 축적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내수 경제(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수출(대기업) 경기 간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고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양극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출 주도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 한국 경제는 고용 인구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임금 노동자에 흡수되지 못한 고용 인구는 내수 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 분산됐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지연된 산업화의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한국의 대표 산업 도시인 울산 지역의 자영업자 비율이 전국에서 둘째로 낮은 것(1위는 세종시)도 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PART3) 고령화 시대 뇌관은 자영업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위험성이 크다. 자영업이 어려워지면 다시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상공인을 위한 퇴직금으로 통하는 ‘노란우산 공제의 폐업 공제금’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만4191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치였던 2021년 지급 건수가 9만9388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지급 건수는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노란우산 공제는 소상공인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다가 폐업할 때 기존에 납입한 돈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제도다. 즉 지급 건수가 많을수록 폐업한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노란우산 공제에 가입하지 않은 자영업자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소상공인 폐업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 큰 뇌관은 고령화다. 은퇴 이후 재취업이 안 되는 고령자들은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고령 자영업자의 고용의 질은 형편없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며 최근 5개년간(2017~2021년) 15세 이상 전체 자영업자 수는 3.2%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1.4%나 증가했다. 특히 2021년 60세 이상 자영업자 10명 중 9명(87.2%)은 고용원이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였다.
대부분의 고령 자영업자들은 부족한 창업 자금을 가지고 철저한 시장 조사 없이 급박하게 사업을 시작했고 무한 경쟁의 자영업 시장에서 최저임금 수준도 벌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8월 기준으로 1년 이내 사업을 시작한 60세 이상 자영업자 10명 중 4명(43.0%)은 ‘500만원 미만’으로 창업했으며, 64.5%는 창업 준비 기간이 ‘1~3개월 미만’이었다(통계청 비임금 근로 부가 조사).
월평균 영업이익 또한 세대 중 가장 낮았다. 2019년 기준 월평균 영업이익이 최저임금(주40시간 기준 174.5만원)보다 낮은 소상공인 비율은 60세 이상이 53.6%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50대(37.3%)다.
고령화로 노동 시장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령층의 자영업 진출 증가 경향이 지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고령 국가 일본은 이미 고령층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최고치를 찍었다. 2016년에 이미 전체 자영업자의 35.9%,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41.6%가 고령자다.
하지만 고령층의 열악한 고용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당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 자영업자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한다. 한국은행은 ‘일본 고령층 고용의 3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며 “한국 노인 세대의 경제 여건은 일본에 비해서도 매우 열악하고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20년의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다.
우리는 어떠한 방안이 있을까. 2018년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골목 상권 활성화 방안을 듣기 위해 외식 전문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국회로 불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백종원 매직’은 그칠 줄 모른다. 자영업자의 구원투수가 정부가 아닌 백종원 대표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TV과 유튜브에서는 자영업자를 살리는 제2의 백종원 프로그램이 화제다.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 ‘장사의 신’ 등등이다.
홍성국 의원은 그의 저서에서 “자영업자의 쇠퇴는 사회적 변화가 원인이지 아이디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더 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문가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자영업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질적 성장’과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기의 자영업자를 위한 진짜 구원투수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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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