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기 불황에서 무엇을 배울까 [이정희의 경제 돋보기]

1980년대에 호황을 누렸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그동안 호황으로 자산 시장에 형성된 경제 버블이 붕괴되면서 30여 년에 걸친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호황을 누리며 수출 강세와 저금리에 자산 시장(부동산·주식)이 황금기를 누린 것이다. 자고 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며 너도나도 부동산에 투자했고 주식에도 투자 자금이 몰리며 상승 장세를 이어 갔다. 일본이 국내적으로 자산 시장에서 부채를 통한 투자도 늘면서 과열에 의한 거품이 커지게 되면서 결국 1989년부터 일본 정부는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강수를 두게 되고 이에 따라 자산 시장에 버블이 터지는 경고음이 나오며 결국 장기 불황의 경제 위기를 맞고야 만다.

지금의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고금리와 자산 시장 침체, 가계 부채 증대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증가, 인구 고령화 등으로 내수 시장 침체 현상이 현재의 한국 경제와 일본의 1990년 초반과 매우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자산 시장의 호황은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난 고금리 현상으로 제동이 걸렸고 자산 시장의 버블이 터지면서 고금리에 가계 부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에 제동이 걸리고 내수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빠른 인구 고령화 또한 내수 시장의 활력을 떨어지게 했다. 일본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미국 경제학자인 하이먼 민스키가 주장한 “누적된 부채가 임계점을 지나면서 자산 가치가 붕괴하고 결국 경제 위기가 초래된다”는 민스키 모멘트는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와 미국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부채를 안고 자산 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도를 키우는 것이고 이는 자산 시장의 버블을 키워 가는 것이고 결국에는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에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자산 시장의 침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내수 경제의 침체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일본보다 빠른 고령화가 진행돼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고령화는 국가적으로 생산성 하락과 소비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경제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 1994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현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고령층의 비율이 약 30%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23년 뒤인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초고령사회 진입은 일본에 비해 20년 뒤인 2025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문제는 일본에 약 20년 격차를 두고 뒤따르고 있는데 고령화 속도도 더욱 빠르게 나타나며 점점 그 격차를 좁히고 있다.

한편 현재의 고금리는 국내외적으로 나타난 고물가 현상에 따른 것인데 경기 침체기에 고물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한 결과다. 특히 미국의 고물가 대책으로 고금리 기조를 이어 가며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5.5%, 한국 기준금리는 3.5%로, 2%포인트 차이가 발생하며 한국의 금리 인상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금리가 한 차례 더 인상된다면 한국의 금리를 계속 동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고금리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동안 대출을 통해 자산 시장에 투자한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고금리는 과도한 금융 부담과 함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경기 침체 속에서도 가계 부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10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281.73%로, 5년 전인 2017년 238.9%와 비교하면 42.8%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어난 부채를 줄이기 위한 긴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한국의 과도한 민간 부채는 가계 부채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통화 신용 정책 보고서를 통해 “가계 부채는 주요국과 달리 디레버리징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거시 경제와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며 경고하고 있다.

이제 한국 경제가 일본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대응 정책이 적절하지 못할 때는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금리 정책에서도 향후 급격한 금리 인상이 되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가계 부채 증가로 인한 경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부채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물가는 대외 변수에 많이 영향을 받고 있는데 경기 침체기의 물가 상승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고령화에 따른 소비 위축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인구 정책에서 고령화율 진행 속도를 낮출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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