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VS 신탁’ 목동신시가지아파트, 재건축 사업방식 각축장 돼[MONEY]

‘둔촌주공 사태’에 수주 늘리던 신탁방식, 최근 반대여론 커져
진행상황 따라 사업방식 둘로 나뉘어…신탁방식 시험대 오를 것

파리공원을 둘러싼 목동신시가지아파트 전경 사진=양천구

빠른 속도로 확산하던 신탁방식 재건축에 제동이 걸렸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일부 단지에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신탁방식은 재건축조합이 아닌 신탁사가 개발 시행자가 되기 때문에 재건축 조합 설립 과정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신탁업계에선 이밖에도 금융기관인 신탁사가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재건축 전 과정에 필요한 제반비용을 댈 수 있고, 비전문가인 조합 및 조합원들에 비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공사와 협상을 원만하게 이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신탁사들은 지방에 이어 여의도 그리고 목동까지 수주를 늘려왔지만 최근 일부 단지에서는 반대 여론이 늘고 있다. 재건축 사업규모가 크고 사업성이 우수한 목동에선 신탁사 지원 없이도 자금조달이나 시공사와 협상이 유리하기에 높은 신탁보수를 지불하고 얻는 이점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신탁방식을 사용했을 때 들어가는 높은 수수료 외에 목동7단지에서는 절차상 문제가 더해졌다. 한 단체가 소유주에게 알리지 않고 신탁사 선정 입찰공고를 낸 사건이 벌어지며 소유주들 사에에서 신탁방식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으로 번지고 있다.

목동 총 14개 재건축 단지 중 이미 6개 단지가 신탁방식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러나 높은 찬성률로 신탁방식을 선택한 이들 단지와 달리 목동7단지 등 일부 단지에선 신탁사 선정 필요성에 의문이 생기며 조합방식 추진에 무게추가 실리고 있다.

결국 목동에서 조합방식과 신탁방식 재건축 단지가 반반으로 갈려 추진된다면, 향후 사업방식에 따른 성과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에서 신탁방식을 채택해 완료한 대규모 정비사업이 없는 가운데, 서남권 대표 주거선호지인 목동에서 사업 시행자로서 신탁사의 사업진행 역량 및 사업완료 후 아파트 완성도까지 극명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속도·안정성 무기로 흥하던 신탁방식, 최근 주춤

올초부터 목동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신탁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대거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 안전진단 평가항목에서 구조안전성 비중을 낮추면서 1월에만 목동에서 3·5·7·10·12·14 6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했다. 곧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을 지자체장 재량에 맡기면서 여전히 조건부 재건축 대상이던 1·2·4·8·13단지도 안전진단 허들을 넘었다.

이를 계기로 목동아파트 곳곳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 관련 설명회가 열렸다. 소유주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지난해 정비업계를 흔들었던 ‘둔촌주공 공사비 갈등’ 사태로 인해 조합방식 재건축 사업은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신탁업계는 소유주들의 이 같은 불안감을 파고들어 신탁방식 재건축의 빠른 사업 진행,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시공사와의 협상력, 자금조달 능력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3월 목동아파트 중 가장 규모가 큰 목동14단지가 KB부동산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목동10단지가 한국토지신탁, 목동9단지와 11단지는 한국자산신탁을 예비신탁사로 선정했다. 목동5단지와 13단지가 소유주 설문조사를 통해 신탁방식 재건축 추진을 결정한 상태로 예비신탁사는 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타 단지에서는 반대 기류가 읽힌다. 4·6·8·12단지는 조합방식으로 분위기가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형 신탁사가 이들 단지를 대상으로도 홍보를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3단지는 제2종일반주거지역을 제3종으로 종상향하는 문제로 서울시, 양천구청과 협의하는 데 힘을 쏟느라 사업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미뤄둔 상태다.
지난 8월 열린 목동아파트 6단지 재건축 신속통합기획 주민설명회 행사장에 설치된 조형물 모습. 사진=양천구

특히 ‘선도 단지’ 역할을 하는 6단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목동6단지는 2020년에 이미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올해 8월 신속통합기획을 확정짓는 등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처럼 남다른 성과를 이어온 6단지는 기존 재건축추진준비위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신탁사에 수수료를 낼 필요 없이 조합방식으로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7단지 갈등·정책 변화에 신탁 필요성 논란 거세
여기에 ‘목동 대장주’인 7단지에서 현재 신탁방식에 호의적인 ‘정비사업추진위원회(정추위)’의 정당성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신탁방식 자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목동7단지는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 중 지역 핵심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목동의 상징이다. 단지가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각종 상업시설, 학군을 갖춘 서울지하철 5호선 역세권에 위치하고 있다. 통상 행정구역과 학군 등을 기준으로 목동신시가지 단지들을 ‘앞단지’와 ‘뒷단지’로 나누는데 7단지가 바로 그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목동은 물론 부동산 시장 전체가 목동7단지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선 2개의 소유주 단체가 재건축 사업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기존에 재건축 안전진단부터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신청까지 진행하며 사업을 이끌어온 목동7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재준위)가 있는 가운데 최근 해임된 전임 재준위 위원장과 동대표 다수가 주축이 돼 정추위를 결성한 것이다. 서울시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제44조)상 동대표는 재건축 조합 임원은 물론 조합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 임원 또한 겸직할 수 없다.

정추위는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10월 6일 사전공지 없이 나라장터에 ‘예비 사업시행자(신탁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열흘 후인 1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 동안 현장 서류접수로 신청을 받은 해당 입찰에는 코람코자산신탁이 참여했다. 정추위는 단독으로 진행한 아파트 소유주 대상 사업방식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신탁방식을 택한 인근 단지에서 소유주 과반수가 참여한 설문 찬성률을 공개하고 예비신탁사를 선정한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일부 소유주 사이에선 “정추위가 독단적으로 신탁사를 선정하기 위해 ‘깜깜이 입찰’을 진행한다”든가 “특정 신탁사와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등의 성토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코람코자산신탁 관계자는 “좋은 사업지로 평가되는 목동7단지 입찰공고가 나온 것을 보고 내부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뿐 소유주들 간 논란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도 신탁방식을 채택하는 데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 조례 개정에 따라 7월 1일부터 서울 소재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 선정 시기를 기존 사업시행인가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조기에 시공사 선정을 하면 조합은 시공사가 납입한 입찰보증금을 대여받을 수 있어 자금조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대형 시공사가 선호하는 입지와 사업성을 갖춘 목동 재건축 단지는 굳이 신탁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높아진 공사비와 재건축 규제완화로 인해 신탁보수 역시 커질 전망이다. 통상 정비사업의 신탁계약은 분양매출 대비 1~2% 선에서 정해진다. 그런데 공사비가 급등하고 분양 가구수가 늘면 분양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비례해 신탁보수도 증가하는 셈이다. 용도지역 상향을 통해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 상가 분양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큰 목동 재건축 단지 입장에선 민감한 문제다. 한 목동 재건축 관계자는 “우리 단지에서 서울시에 제출한 신속통합기획안을 적용해 계산해보니 신탁보수가 총 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목동아파트 소유주들의 관심이 ‘속도’에서 ‘고급화’로 이동하는 것 또한 변수다. 대단지 재건축이 밀집한 목동에서 서울에 대형 정비사업 성공사례가 없는 신탁사들은 기존 조합방식 재건축과 입주 아파트의 완성도를 겨뤄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여의도는 50년이 넘은 아파트도 있고 소유주들 나이가 많아 돈이 더 들더라도 신탁방식을 통해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고 싶어하지만 목동은 그 정도는 아닌 상황”이라며 “올해 초에는 단지별로 추진 속도에 대한 경쟁심이 다소 있었지만 지금은 목동 이름값에 맞는 고급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소유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트렌드는 길어도 반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고급 단지 수요가 많은 서울 핵심 정비사업에선 설계변경이 많은 편”이라며 “신탁사가 빨리 보수를 받고 사업에서 엑시트(exit) 해야 하는 신탁방식 재건축의 특성상 이 같은 설계변경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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