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일일일’ 현실 될까...재계는 지금 ‘주 4일’ 열공 중

주 5일제를 도입 20년
근무시간 단축 재계 화두로
주 4일제 근무 효과와 안착 가능성 실험

[비즈니스 포커스]



기아는 얼마 전 노조와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이번 협상에서 기아 노조가 사측에 제시했던 요구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주 4일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었다. 사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최종 협상안에서는 해당 항목이 제외됐다. 그러나 기아에서 주 4일제 도입 논의가 오간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포스코는 상황이 반대다. 사측에서 먼저 노조에 격주로 주 4일제를 시행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여전히 임단협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어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일각에서는 포스코의 격주 주 4일제 도입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노조가 아닌 사측에서 이를 제안한 만큼 (주 4일제 도입이)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노사 협상 과정에서 주 4일제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이미 회사가 나서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늘고 있다. 2003년 주 5일제를 도입한 지 20년 만이다. 물론 대기업과 일부 IT기업에 해당하는 일이다.

과연 주 4일제는 한국 직장인들의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국내의 몇몇 기업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명 ‘주 4일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주 4일제 근무가 가져다주는 효과와 안착 가능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들의 실험 목표는 명확하다. 주 4일제가 애초 기대처럼 업무집중도를 높여 생산성 향상을 이뤄낼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올해 6월부터 월 1회 주 4일 근무제를 운영 중이다. 반도체(DS) 부문에선 ‘패밀리데이’,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디벨롭먼트데이’란 이름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다.
왜 ‘주 4일제’는 화두가 됐나삼성전자는 매주 필수 근무시간(40시간)을 채우면 월급날인 21일이 속한 주의 금요일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SK텔레콤과 카카오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는 올해 초부터 매달 한 번씩 전 직원이 일을 하지 않는 ‘놀금(노는 금요일)’ 제도를 운영 중이다. SK텔레콤은 월 1회 금요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를 갖고 있다. 이밖에 CJ ENM, 우아한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 휴넷 등이 현재 부분적 또는 완전한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야기한 ‘업무 방식의 변화’가 기업들의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택근무 혹은 근무시간 단축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렇게 회사가 아닌 공간에서 일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도 기업 생산성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코로나19 기간에도 실적이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엔데믹이 왔지만 굳이 과거의 방식대로 일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자연히 주 4일 근무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는 게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여기에 각종 정보기술(IT)의 발전도 한몫했다.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시켜주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의 등장으로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직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의 숫자는 손에 꼽을 만큼 적지만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앞으로 그 수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채용 양극화 심화 우려도 존재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주 4일제 시행을 주목한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주 4일 근무제가 한국에서도 대폭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재계 순위를 다투며 치열한 인재확보 경쟁을 펼치는 대기업들에 삼성전자의 주 4일제 도입 행보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기업을 선택할 때 근무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근무환경을 결정짓는 것 중 하나가 근무시간이다. 조건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더 많이 몰리게 될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이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은 기업들과의 인재 확보전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기업들도 가만히 이를 두고 볼 리 없다.

이 교수는 “인재 영입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의 뒤를 따라 많은 대기업들이 부분적으로라도 주 4일제를 도입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이번에 포스코가 노조에 먼저 격주 주 4일제 도입을 제안한 것도 삼성전자의 앞선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들린다.

아울러 최근 몇몇 기업들이 주 4일제를 도입한 결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사실이 알려지고 있는 점도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주 4일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7월부터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교육 전문회사 휴넷은 최근 이 제도 시행 후 지난 1년간 거둔 성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결과는 좋았다. 매출은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경쟁률 또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상승한 반면 퇴사율은 크게 떨어지는 효과를 냈다.

올해 1월부터 노사 합의로 주 4일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병원도 마찬가지다. 간호사 퇴사율이 0%를 기록하는 등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 4일제 근무 도입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의 움직임에 정치권에서도 주 4일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온다. 대표적 인물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그는 “혁신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주 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주 4일제 논의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영국, 일본, 호주, 미국 등에서 현재 주 4일제 근무와 관련한 기업들의 실험과 정치권의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물론 이런 주 4일제 확산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관론도 존재한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가 확산할수록 채용시장에서의 기업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예상했다. 대다수의 중소기업에 근로시간은 생산성과 직결된다. 이를 고려했을 때 많은 중소기업들이 주 4일제를 도입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 4일제가 확산하는 추세가 걱정스럽다”며 “워라밸을 좇는 젊은 인재들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더욱 커지는 반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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