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 변화는[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입력 2023-10-29 06:00:01
수정 2023-10-29 06:00:01
본격적인 예측 시즌이 돌아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 3대 예측기관이 내년 세계경제 전망보고서를 발표했다. 엔데믹의 실질적인 첫해가 될 내년에 세계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보다 또 다른 디스토피아 문제로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했다.지경학적 위험 최고조로올해만큼 이상기후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한 적도 없다. 홍수, 가뭄, 산불, 태풍, 쓰나미 등이 ‘대(大‧great)’가 붙어야 할 정도다. 슈퍼 엘리뇨의 위력이 발생 2년 차에 더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접두어를 한 단계 격상시켜 ‘초(超‧hyper)’ 자를 붙여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유난히 눈에 띈다.
지경학적 위험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근처럼 안보와 경제 간 분리가 어려울 때는 지정학적 위험보다 지경학적 위험이 더 중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내년에는 한국이 속한 동북아 지역에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선거가 많이 잡혀 있는 내년에는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세계와 각국 경제에 의외로 큰 복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더 우려되는 것은 체제와 관계없이 최고통수권자의 장기 집권 야망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이 문제가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어 이미 여야 간 극한 대립이 경제에 부담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체감적으로 와닿는 지적이다.
국제통상 환경도 국가 간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유사 입장국(like minded country) 간 협력과 연대에 맞추는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나 경제동반자협정(EPA)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WTO나 FTA는 협상 과정이 수년이 걸리고 입법기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심한 국가는 영원히 안 될 수 있다. 반면에 TIPF나 EPA는 이상기후, 공급망 확보, 디지털 전환, 난민, 마약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를 다룰 수 있고 입법기관의 비준과 관계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손쉽게 맺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경제 전체 차원에서는 침체‧불황‧회복‧성장 등 4단계와 저점, 정점의 의미가 퇴색되는 노랜딩(no landing)이 정착될 것으로 본 것은 종전의 경기순환 이론을 뒤엎는 예상이다. 3대 예측기관이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올해보다 0.1∼0.3%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수준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개별국가 성장률은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V자형, 나이키형, 스네이크형 등 경기순환상 모든 국면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나타나는 ‘랜드 러시(land lush‧원시형 경제)’가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개념의 통상체계로 자리를 잡는 TIPF나 EPA도 어느 국가와 체결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확률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 5월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과 중국‧중앙아시아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경제질서가 두 회담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중심으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뀔 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올해 국제금융시장은 금리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고 추가적으로 인상할 의향도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내년에는 2단계 금리인상 국면에 진입할 경우 달러 가치와 위상, 그리고 ‘대발산(GD‧great divergence)’이 재현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2024년 전망은첫째, 달러 가치와 관련해 스마일 이론이 들어맞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기에는 안전통화로, 회복기에는 머큐리(펀더멘털)와 마스(정책) 요인으로 강세를 보이다가 그 중간에는 약세를 보인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엄격히 따지면 이론이 아니라 미국 경기와 달러 가치 간 궤적이 사람의 웃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된 용어다.
앞으로 달러 가치는 강세가 될 요인이 많다. 머큐리 면에서는 미국 경제가 견실한 대신 달러인덱스 구성통화 비중의 70%가 넘는 유럽 경제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스 면에서도 미국 중앙은행(Fed)은 유럽중앙은행(ECB)보다 매파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달러 위상과 관련해 브레턴우즈 체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달러 임페리얼 서클의 형성 여부다. 브레턴우즈 체제란 1944년 IMF 창립 이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1971년 금태환 정지,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흔들리긴 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비교적 잘 유지됐다.
하지만 브레턴우즈 체제가 결정적으로 흔들렸던 때는 1995년 역플라자 합의 이후부터다. 잃어버린 10년이 우려될 정도로 수렁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주도로 엔‧달러 환율을 79엔대에서 148엔대까지 끌어올렸다(루빈 독트린). 당시 일본 경제 영향권에 있었던 동아시아 국가 환율도 동반 상승했다.
그 후 강달러 시대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과정에서 ‘자국 통화 약세’라는 반사 이익을 누린 아시아 국가는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어빙 피셔의 이론대로 아시아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까지 겹쳐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 붕괴 모형에 따르면 자산 거품을 떠받치는 돈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터진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Fed가 전시 때나 동원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달러 가치와 위상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틈을 파고들었던 것이 시진핑 정부의 ‘팍스 시니카’ 야망이다.
하지만 설리번 패러다임과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양대 축으로 하는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밀리면서 위안화 가치와 위상은 국제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급락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연일 위안화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셋째, 신흥국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GD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의 분데스방크(ECB 창립 이전에 유럽 통화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당시 신흥국은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했다. 스리랑카·파키스탄 등 이미 일대일로 참여국을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Fed가 금리를 더 올리면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신흥국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급한 것은 대외정책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종전의 규범과 관행을 답습하는 ‘시스템적 플랜A식 디커플링 접근’보다 급변하는 국가별 관계를 감안해 위험을 축소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컨틴전시 플랜B식 디리스킹 접근’이 필요하다. 후자는 유연하고 부지런한 대외전문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외환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착화 우려까지 제기되는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로, 재정정책은 ‘거대 야당이라는 입법적 한계에 부딪혀 부양정책 여지가 제한된 상황이다. 앞으로 닥칠 국제외환시장 여건을 감안해 원‧달러 환율은 적정선(1250원 추정)보다 50∼100원 정도 높게 운영할 필요가 있는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지경학적 위험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근처럼 안보와 경제 간 분리가 어려울 때는 지정학적 위험보다 지경학적 위험이 더 중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내년에는 한국이 속한 동북아 지역에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선거가 많이 잡혀 있는 내년에는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세계와 각국 경제에 의외로 큰 복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더 우려되는 것은 체제와 관계없이 최고통수권자의 장기 집권 야망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이 문제가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어 이미 여야 간 극한 대립이 경제에 부담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체감적으로 와닿는 지적이다.
국제통상 환경도 국가 간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유사 입장국(like minded country) 간 협력과 연대에 맞추는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나 경제동반자협정(EPA)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WTO나 FTA는 협상 과정이 수년이 걸리고 입법기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심한 국가는 영원히 안 될 수 있다. 반면에 TIPF나 EPA는 이상기후, 공급망 확보, 디지털 전환, 난민, 마약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를 다룰 수 있고 입법기관의 비준과 관계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손쉽게 맺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경제 전체 차원에서는 침체‧불황‧회복‧성장 등 4단계와 저점, 정점의 의미가 퇴색되는 노랜딩(no landing)이 정착될 것으로 본 것은 종전의 경기순환 이론을 뒤엎는 예상이다. 3대 예측기관이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올해보다 0.1∼0.3%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수준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개별국가 성장률은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V자형, 나이키형, 스네이크형 등 경기순환상 모든 국면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나타나는 ‘랜드 러시(land lush‧원시형 경제)’가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개념의 통상체계로 자리를 잡는 TIPF나 EPA도 어느 국가와 체결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확률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 5월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과 중국‧중앙아시아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경제질서가 두 회담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중심으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뀔 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올해 국제금융시장은 금리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고 추가적으로 인상할 의향도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내년에는 2단계 금리인상 국면에 진입할 경우 달러 가치와 위상, 그리고 ‘대발산(GD‧great divergence)’이 재현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2024년 전망은첫째, 달러 가치와 관련해 스마일 이론이 들어맞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기에는 안전통화로, 회복기에는 머큐리(펀더멘털)와 마스(정책) 요인으로 강세를 보이다가 그 중간에는 약세를 보인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엄격히 따지면 이론이 아니라 미국 경기와 달러 가치 간 궤적이 사람의 웃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된 용어다.
앞으로 달러 가치는 강세가 될 요인이 많다. 머큐리 면에서는 미국 경제가 견실한 대신 달러인덱스 구성통화 비중의 70%가 넘는 유럽 경제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스 면에서도 미국 중앙은행(Fed)은 유럽중앙은행(ECB)보다 매파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달러 위상과 관련해 브레턴우즈 체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달러 임페리얼 서클의 형성 여부다. 브레턴우즈 체제란 1944년 IMF 창립 이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1971년 금태환 정지,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흔들리긴 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비교적 잘 유지됐다.
하지만 브레턴우즈 체제가 결정적으로 흔들렸던 때는 1995년 역플라자 합의 이후부터다. 잃어버린 10년이 우려될 정도로 수렁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주도로 엔‧달러 환율을 79엔대에서 148엔대까지 끌어올렸다(루빈 독트린). 당시 일본 경제 영향권에 있었던 동아시아 국가 환율도 동반 상승했다.
그 후 강달러 시대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과정에서 ‘자국 통화 약세’라는 반사 이익을 누린 아시아 국가는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어빙 피셔의 이론대로 아시아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까지 겹쳐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 붕괴 모형에 따르면 자산 거품을 떠받치는 돈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터진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Fed가 전시 때나 동원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달러 가치와 위상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틈을 파고들었던 것이 시진핑 정부의 ‘팍스 시니카’ 야망이다.
하지만 설리번 패러다임과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양대 축으로 하는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밀리면서 위안화 가치와 위상은 국제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급락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연일 위안화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셋째, 신흥국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GD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의 분데스방크(ECB 창립 이전에 유럽 통화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당시 신흥국은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했다. 스리랑카·파키스탄 등 이미 일대일로 참여국을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Fed가 금리를 더 올리면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신흥국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급한 것은 대외정책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종전의 규범과 관행을 답습하는 ‘시스템적 플랜A식 디커플링 접근’보다 급변하는 국가별 관계를 감안해 위험을 축소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컨틴전시 플랜B식 디리스킹 접근’이 필요하다. 후자는 유연하고 부지런한 대외전문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외환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착화 우려까지 제기되는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로, 재정정책은 ‘거대 야당이라는 입법적 한계에 부딪혀 부양정책 여지가 제한된 상황이다. 앞으로 닥칠 국제외환시장 여건을 감안해 원‧달러 환율은 적정선(1250원 추정)보다 50∼100원 정도 높게 운영할 필요가 있는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