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블랙홀이 된 숏폼 콘텐츠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닐 모한 유튜브 최고제품책임자가 크리에이터들에게 숏폼 서비스 ‘쇼츠’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제공


# 직장인 A 씨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자주 본다. 그중에서도 추천 영상으로 뜨는 숏폼 콘텐츠를 주로 감상한다. 아이돌 그룹의 춤을 따라하는 ‘댄스 챌린지’ 영상부터 ‘재테크 공부에 좋은 책 3’와 같이 특정 상황에 맞게 책을 짧게 추천해 주는 영상까지 다양하게 뜬다. 그런데 호기심에 한두 개씩 눌러 보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다. 결국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상을 보느라 늦게 잠들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숏폼 콘텐츠의 대홍수’라고 할 만큼 매일 시시각각 숏폼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시간을 빨아들이고 있다. 영상 콘텐츠부터 K팝, 웹툰까지 전체 문화 시장도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숏폼 콘텐츠가 시장의 거대한 블랙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지나친 과열 현상이 일어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더 짧게, 더 강렬하게…치열한 60초 전쟁
숏폼 콘텐츠는 본래 15초~10분 이내의 영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숏폼 콘텐츠의 길이는 훨씬 짧다. 대부분 15초~1분짜리 영상으로 제작된다. 볼 만한 콘텐츠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집중 시간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대개 유튜브 영상을 더 볼지 안 볼지 결정하는 시간은 10~20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영상에서 즉각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곧장 정지 버튼을 눌러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 창작자들은 길이를 최대한 줄여서 더 가볍게,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숏폼 콘텐츠 이용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 나온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추구 현상을 꼽았다. 요즘 사람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이르는 ‘가성비’, 비용과 상관없이 심적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심비’에 이어 시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간편하게 즐기려는 심리는 영상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숏폼 콘텐츠의 열풍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인사이더 인텔리전스가 올해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일일 시청 시간을 조사한 결과 넷플릭스는 61.8분, 틱톡 55.8분, 유튜브는 47.5분으로 나타났다. 숏폼 콘텐츠만 제공하는 틱톡이 30분 정도의 미드폼 콘텐츠 또는 60분 이상의 롱폼 콘텐츠를 선보이는 넷플릭스의 전체 시청 시간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빌보드는 숏폼 콘텐츠의 인기를 고려해 새로운 차트까지 만들었다. ‘틱톡 톱 50’ 차트로, 지난 9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발표하고 있다. 이 차트는 틱톡에 올라오는 동영상의 조회수와 사용차 참여 횟수 등을 기반으로 순위를 매긴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 만한 강렬한 후렴구, 누구나 쉽게 따라하고 싶어지는 댄스 챌린지를 강조한 노래가 주로 상위권에 오른다.

폭발적으로 커지는 숏폼 콘텐츠 시장을 잡기 위한 플랫폼 업체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숏폼 콘텐츠로 처음 차별화를 시도한 건 틱톡이었다. 틱톡은 일반 유튜브 영상보다 짧은 숏폼 동영상으로 플랫폼을 특화해 201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엔 글로벌 소셜미디어 플랫폼 업체 메타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숏폼 서비스인 ‘릴스’를 내놓았다. 글로벌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는 2021년에서야 숏폼 서비스 ‘숏츠’를 선보이며 추격전에 나섰다. 국내에선 네이버가 최근 숏폼 서비스 ‘클립’의 별도 탭을 마련했으며, 11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후발 업체들은 창작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 2월부터 숏츠 영상에 광고를 적용하고, 창작자들에게 광고 수입의 45% 배분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의 광고 수익을 창작자에게 배분하는 정책은 유튜브가 처음 도입한 것이다.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 80%가 숏츠에서 발생하는 만큼 숏츠의 양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유튜브 숏츠 영상이 크게 증가한 것도 이런 전략과 맞닿아 있다. 네이버 역시 지난 8월부터 오는 12월까지 매달 8개 이상의 세로형 숏폼 영상을 만든 창작자에게 다달이 15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

최근엔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웹툰 플랫폼에서도 숏폼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웹툰 줄거리를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요약한 ‘숏툰’을 제작, 웹툰의 내용을 빠르고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웹툰에 이어 웹소설에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해 ‘숏노블’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감상’은 없고 ‘소비’만이 남았다
이쯤 되니 호흡이 긴 작품들은 점점 무용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숏폼 콘텐츠만으로도 큰 효용 가치를 느끼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한 영상 또는 주요 장면만 담은 숏폼 콘텐츠만을 본 후 해당 작품을 거의 이해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전체 맥락을 파악했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콘텐츠 내용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위험이 더 크다.

숏폼 콘텐츠를 보면서 종종 지적인 욕구가 충족되거나, 위로를 얻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재테크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담거나, 영감과 힐링을 주는 문구를 보여주거나, 책의 핵심 내용과 주요 문장을 짧게 알려주는 영상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

여기선 두 가지 질문을 되새겨 봐야 한다. 하나는 그 콘텐츠에 담긴 내용이 정말 해당 주제의 ‘본질’을 담고 있는지, 다른 하나는 그것이 영상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고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 방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OO 가지만 기억하라’, ‘잘나가는 사람들의 OO 가지 비밀’과 같은 ‘치트(cheat·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부정한 방식으로 바꾸어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를 찾는다. 치트의 원래 의미는 ‘부정행위’, ‘속임수’이다. 꾸준히 노력해봐야 보상이 따라온다는 보장도 없는 시대이니 이해는 된다. 다만 그것을 영상 작품에서까지 추구해야 할까. 아니,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영상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숏폼 콘텐츠만을 보고 해당 주제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책의 한두 문장만을 보고 그 책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할 순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숏폼 콘텐츠가 영상 작품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다른 영상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짧은 영상이 주는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지다 보면, 긴 호흡의 작품은 기피하게 되거나, 어쩌다 보더라도 금방 질릴 수 있다.

‘감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다’라는 뜻이다. 즉 콘텐츠의 내용 자체를 우선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 전체를 찬찬히 음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콘텐츠가 가진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단계까지가 감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일들을 숏폼 콘텐츠로는 결코 할 수 없다. 콘텐츠의 전후 맥락, 본질은 알 수 없으니 아예 감상의 첫 단계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숏폼 콘텐츠는 실컷 보고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 보았지만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쉽게 증발되어 버린다. 숏폼 콘텐츠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멈춰 서서 균형 있는 콘텐츠 시청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감상을 할 수도, 진정한 감동을 느끼지도 못하기 전에.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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