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혁신의 아이콘’ 키움증권의 패착은 무엇이었나[비즈니스 포커스]

[비즈니스 포커스]
❶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지난 5월 4일 주식종목 폭락 논란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동 키움증권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❷ 키움증권 본사. 사진=키움증권 제공

키움증권이 연이은 악재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사태로 구설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키움증권 주가가 20%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키움증권은 자사주 매입과 함께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미 투자자의 힘으로 성장한 키움증권은 어쩌다 리스크의 온상이 되었을까. ‘0’ 수수료, 인터넷 증권사의 등장“키움, 인터넷에서 만나요. 키움, 끝내주게 키워봐요. 인터넷 종합 증권사♬”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키움증권(구 키움닷컴증권)은 2000년대 초반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트로트 가수 ‘이 박사’를 CF에 기용하며 회사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 박사의 CF송을 흥얼거리며 자연스럽게 인터넷 종합증권사 키움에 빠져들었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종합증권사를 기치로 영업을 시작한 키움증권은 점포 없이 온라인만으로 영업하는 증권사였다. 임직원은 140여 명. 지점이나 오프라인 영업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모든 주식거래는 개인용컴퓨터(PC), 무선단말기, 콜센터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고객이 직접 접하는 창구는 콜센터가 유일했다. 혁신은 의구심을 가져왔다. 당시만 해도 점포 없이 온라인만으로 영업하는 증권사가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짙었다.

키움증권은 승부수를 걸었다. 2000년 5월 4일 회사 출범 후 2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증권사간 수수료 인하경쟁이 치열했지만, 수수료 ‘제로(0)’를 선언한 회사는 없었다. 당시 키움은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는 2개월 기간이 지난 후에도 거래수수료는 업계 최저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초이자 혁신이었다. 키움으로선 초기고객 확보가 영업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수수료 제로란 파격적인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키움의 공격적인 영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개인투자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단타매매를 하던 헤비 유저들을 끌어모았다. 영업 개시 2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05년부터 브로커리지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투자비용 회수에만 3~4년은 걸릴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깬 결과였다.

여기에는 파격적인 제로 수수료 정책과 함께 ‘영웅문’이란 키움증권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당시 기존 증권사의 HTS가 모두 영문으로 돼 있는 반면 키움닷컴은 과감히 영웅문이라는 한글명을 사용했다. 편리한 사용성과 안정성이 특징이었다. 키움증권은 개발 과정과 모니터링 과정에 고객들을 참여시키면서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HTS에 탑재했다.

키움증권은 그때만 해도 시장에서 소외 받았던 젊고 공격적인 데이트레이더(단기매매자)들을 주공략층으로 삼았다. 영웅문이란 이름도 증권 고수의 분위기를 풍기도록 차별화했다. 수수료 최저가 정책과 편리한 영웅문 시스템으로 데이트레이더들을 충성 고객층으로 삼으면서 “키움에 고수가 많다”는 입소문이 번질 정도였다.

파죽지세였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이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수익이 늘었다. 2005년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규모의 경제 효과에 기반을 둔 키움증권의 수익 모델은 한 번 완성되고 나면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며 호평했을 정도다.

당시 김봉수 키움증권 대표는 키움의 성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000년 키움증권 설립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고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지만 2001년 이후 흑자경영을 이뤘다. 운도 다소 따랐지만 실제로는 고객중심으로 경영한 것이 성공요인이었다.” 두 번의 리스크, 등 돌린 개미“2023년에만 두 번 터졌다. 개인들도 등을 들렸다.” 10월 25일 키움증권 종목토론방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 투자자의 글이다.

키움증권 주가는 이날 8만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며 52주신고가(11만1000원)를 기록한 게 불과 2주 전이었다. 이틀 전인 23일에는 종가 7만6300원으로 8만원 선도 깨졌다. 이날 주가가 급락한 배경은 지난 10월 20일 영풍제지 하한가로 인해 고객 위탁계좌에서 미수금 4943억원이 발생한다는 키움증권의 공시 때문이다. 이번 미수금은 키움증권의 상반기 순이익(4258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미수거래는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뒤 2거래일 안에 결제대금(미수금)을 채워넣는 방식이다. 투자자가 미수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는 주식을 강제 처분해(반대매매) 미수금을 충당한다.

키움증권은 즉각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예정이며 고객의 변제에 따라 최종 미수채권 금액은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풍제지가 10월 26일에나 매매거래가 재개되면서 반대매매를 통한 회수도 이날부터 시작한다. 증권가에선 거래재개 후 하한가 등을 감안한 회수금액은 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수금의 절반가량이다.

문제는 신뢰도에 대한 우려다. KB, 신한, NH, 삼성, 미래 등 대형 증권사의 경우 10월 7일부터 영풍제지에 대한 거래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해 증거금률을 100%까지 상향했다. 반면 키움증권은 10월 18일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19일에서야 100%로 높였다. 키움증권이 ‘주가조작 세력의 놀이터’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혜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타사와 비교해 키움증권의 리스크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반영해 주가는 20% 이상 급락했다”고 말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키움증권의 사업 안정성이 훼손되거나 리스크 관리 개선이 없으면 신용등급과 전망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10월 23일 각각 보고서를 내고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에 따른 미수금 발생으로 인해 고객 평판과 신뢰도, 시장 지위 훼손 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필요시 신용도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키움증권의 단기적 재무안정성이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리스크 관리 역량과 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에 이어 위탁매매 관련 대규모 비경상비용이 발생한 것이 올 들어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앞서 키움증권은 지난 4월 CFD 서비스를 활용한 ‘라덕연 주가조작 사건’으로 리스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다우데이타 등 8개 종목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면서 불거진 SG증권발 폭락사태를 둘러싸고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주가 폭락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다우키움그룹은 키움증권의 모회사다. 김 회장은 당시 보유 중이던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 주(3.65%)를 주당 4만3245원에 시간외매매로 처분, 605억4300만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매도 시점이 SG증권발 폭락 사태 불과 2거래일 전이라 ‘타이밍’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라덕연 주가조작 사건’ 이후 증권사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이상 거래를 감지하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왔다. 사건에 휘말린 키움증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풍제지 사건으로 키움증권의 리스크 관리 문제가 재차 불거졌다. 키움증권 측은 다시 한번 고삐를 당겼다. “투자자가 안전하고 신중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10월 25일엔 주주 가치 제고 일환으로 700억원어치 자기주식을 매입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며 관련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조직 개편 및 전문인력 확충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것을 다짐했다. 10월 10일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등 주주환원정책에 사용하겠다고 밝힌 뒤 또 한 차례의 다짐이다.

두 번의 다짐 뒤 두 번의 리스크에 개인투자자 점유율 1위 증권사로서 쌓은 이미지에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증권사들도 키움증권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삼성증권은 키움증권의 목표주가를 기존 12만5000원에서 10만원으로 낮췄고, KB증권은 기존 13만원에서 12만3000원으로 낮춰 잡았다.

전문가들은 키움증권이 규모는 대기업 수준으로 커졌지만, 시스템과 경영형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사주 매입이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해줄 수 있는 한 방안이지만, 이와 함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진단 및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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