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은 난리가 났어요. 대입에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학부모 상담이 끊이질 않습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10년째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 주미영 씨가 말했다.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이 발표된 이후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0월 현재 중학교 2학년생부터 적용되는 수능과 내신제도를 내놨다. 바뀐 수능의 첫 주자인 중2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3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재수를 하면 1년 만에 확 바뀐 제도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입시현장에서는 2027년까지 수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의대, 치대, 한의대 등을 준비하려 다시 수능을 보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의 수요가 대입개편 전까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 쏠림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8년부터 문·이과 상관없이 수능에서 모두가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보기 때문에 그동안 이과생만 몰렸던 의·약학계열에 문과생들도 도전할 수 있다. 1등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8 대입 개편 시안은 파장이 컸다. 내신제도와 수능제도가 모두 바뀌기 때문이다. 우선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뀐다.
전체에 4%에 불과했던 1등급 비율은 10%까지 늘어난다. 수능의 변화는 더 파격적이다. 탐구영역에서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모든 학생이 사회공통, 과학공통을 봐야 한다. 올해 수능은 사회탐구 9과목, 과학탐구 8과목 중 2개 과목 선택이 가능했다.
내신제도를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꾼 것에 대해 교육부는 “9등급제는 교실 내 소모적 경쟁과 과잉 사교육을 유발하는 교실 황폐화의 주범”이라고 설명했다. 전체의 4%만 1등급을 받는 지금의 경쟁 구도를 느슨하게 바꿔서 상위 10% 정도까지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00명 중 4명이었던 1등급이 100명 중 10명까지 늘어난다. 이유는 또 있다. 교육부는 내신 5등급제 전환을 두고 ‘선진화’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일찍부터 내신 5~6등급 체제를 지속해온 미국·영국·일본·프랑스·홍콩·호주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9등급제를 시행해왔다는 이유다.
두 번째 변화인 ‘수능 선택과목 폐지’는 ‘불공정’을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수능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표준점수 유불리가 발생해 선택과목 쏠림현상이 나타났던 문제를 없앤다는 취지다.
기존에 학생들은 윤리, 경제, 한국지리, 물리, 생물 등 17개 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봤다. 하지만 교육부는 수능시험 날 모든 응시생이 동일한 문제지를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2028년 사회·과학탐구 영역에서 선택과목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1999년 이후 30년 만에 선택과목이 다시 폐지되는 것이다.
교과 영역 전반에 대한 통합적·융합적 사고를 함양하겠다며, 선택과목들의 조합을 없애고 통합사회·통합과학을 탐구영역 공통과목으로 지정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도 대입제도 개편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더욱 세분화된 과목을 배우는 현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현 수능 체계대로 시험을 볼 경우 과목 간 유불리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되면 선호도 차이나 과목 간 편차가 수능 과목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 데 따른 대책인 셈이다. 다만 변별력 우려를 고려해 교육부는 미적분Ⅱ와 기하를 묶어 ‘심화수학’을 선택 영역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변별력 사라진 내신, 대학은 고민 커진다교육 현장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1등급이 4%에서 10% 늘면 내신 변별력이 사라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대학별 고사가 강화되고,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 쏠림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수능마저 ‘공통사회’, ‘공통과학’으로 특정 과목의 심화 학습이 불가한 체제다. 이 경우 대학이 면접이나 논술 등 자체적인 평가도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내신 변별력이 사라지면 수시 제도 자체의 비중이 축소될 수 있다”며 “정시의 난이도가 확 높아지거나 수시에서 논술이 됐든 면접이 됐든 어떤 서류심사가 됐든 대학별로 보완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는 2008년 대입 당시 논란이 됐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떠올린다. 2008년 대입 정시모집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수능, 내신, 논술 등 3가지를 합산하는 대학이 대폭 증가했다.
2008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학생부 성적을 50% 이상 반영하는 대학은 무려 150곳(65.8%)이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정시전형을 거의 수능 100%로 만들며 완화됐다.
강남구 현직 교사는 “1등급을 받는 학생이 늘면 이제 인서울을 노리는 학생들은 무조건 내신 1등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또한 수능에서 공통사회, 공통과학만 반영되는 만큼 고등학생들의 자퇴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고등학교 자퇴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듣는 시간에 학원에 다니며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에만 고등학생 2만3981명이 자퇴했다. 비율로 치면 1.9%인데, 이는 지난 1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다.
임 대표는 “이제 학교는 대학별 변화에 맞는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을 공급해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수능에 대한 대비를 못했기 때문에 자퇴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벌어진 만큼 이제 달라진 대입제도에 맞게 공교육 강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2028 대입 개편안의 최종안은 올해 안에 발표된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20일 공청회를 끝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마무리했다. 대입개편안 확정까지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논의만 남게 되는데, 각종 부정적 여론은 전혀 불식되지 않은 상태다.
고교학점제 시행과 함께 내신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로 할지, 절대평가로 할지에 대한 의견도 팽팽하게 맞섰다.
심화 수학 도입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뉜다. 조상훈 서울·경기·인천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 회장은 공청회에서 “심화수학이 수능의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대학은 적성과 진로에 따라 깊이 있는 학습을 한 학생들의 교과과정에 대해 학생부 정성평가를 통해 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2, 고3 학부모 신상숙 씨는 “(대입개편안에 따르면) 이공계 학생들은 미적분 과목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며 “심화수학을 수능과목으로 선정해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뭐가 됐든 빨리 결정이 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3(예비 고1)인 이정민 양은 “국제고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재수를 하게 되면 내신에서 불리할까봐 일반고 진학을 선택했다”며 “재수를 하면 이과생도 사회를 공부해야 되고 바뀐 첫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수능을 보게 되는 2027년에 재수생, 삼수생까지 다 몰릴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