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착지 아닌, 목적지로서의 호텔을 향하여[김은아의 여행 뉴스]
입력 2023-12-06 13:27:34
수정 2023-12-06 13:27:34
남기덕 메리어트인터내셔널 한국·필리핀 대표
한때 호텔은 기착지였다. 짐을 풀기 위해, 여러 날을 여행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 사람들이 호텔에 바라는 것은 안락한 침구가 전부였다. 이제는 다르다. 호캉스, 스테이케이션, 데스티네이션 호텔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호텔에서의 시간은 그 자체로 여행이 된다. 미식, 여가, 웰니스까지, 사람들이 호텔에서 충족하고자 하는 목적도 다채로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두드러졌다.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의 럭셔리 체인 JW메리어트가 최근 론칭한 ‘스테이 더 모먼트’ 캠페인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호텔에서의 오롯한 휴식으로 삶에 여유를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캠페인이다. 남기덕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한국·필리핀 대표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 ‘호텔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로나19는 여행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호텔업계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휴식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 같다. 두드러지는 변화는 가족 단위의 스테이케이션이 늘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을 하나의 여가로 여기게 된 것 같다. 우리 세대만 해도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을 민망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웃음). 요즘 젊은 세대가 좋은 공간에서 추억을 쌓고, SNS에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체감한다.
이러한 변화가 팬데믹을 기점으로 일어났나.
과거에는 매출의 대부분이 외국인 손님에서 일어나고, 내국인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지금은 40%에 달한다. 가장 낮은 마켓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내국인 비중이 증가세이긴 했으나 팬데믹을 지나며 드라마틱하게 성장했다.
호텔 시설의 이용에서도 변화가 있었나.
고객들의 욕구가 기본적인 식사와 수면을 넘어서 다양화하고 있다. 수영장과 스파 시설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었고, 이러한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JW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의 시설이 대표적이다. 25m 길이의 다섯개 레인을 갖춘 실내 수영장,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야외 인피니티풀, 둘레길과 연결된 산책로,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등을 갖췄다. 호텔에서 마음의 웰빙, 정신의 웰빙까지 얻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최근 론칭한 ‘스테이 더 모먼트’ 캠페인도 같은 맥락인가.
여러 체인 중에서도 JW메리어트는 특히 정신적인 웰빙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즐거웠던 순간과 그때의 감정 아닌가.
호텔에서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그때의 기억이 선물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시간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투숙 기간 중 전문 포토그래퍼가 가족의 스냅 사진을 촬영해주는 패키지 등을 마련했다.
호텔에서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공간이다. 호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로비다. 로비는 호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공간이다. 호텔에 막 도착한 고객이 ‘와우!’라고 할 만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들의 환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타이밍, 멋진 예술작품을 모두 포함한다. 업계에서는 ‘어라이벌 익스피어리언스’라고 하는데, 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총지배인 시절에는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로비에서 보냈다. 직원들이 불편했을 것이다(웃음). 그러나 로비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교차로이자, 가장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곳이기에 손님들의 반응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고, 벨맨이 짐을 받고, 프런트 직원들이 손님과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로비를 사랑하는 이유다.
요즘 대표로서 ‘고객의 소리’를 듣는 창구가 있나.
호텔에서 일정이 있을 때마다 일찍 도착해서 로비를 살펴본다. 고객 만족도 평가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손님이 체크아웃하면 이메일을 보내 투숙 경험에 대해 1~10까지 세세히 평점을 받는다. 주관식으로 코멘트를 남길 경우 꼭 연락을 드려서 피드백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여담이지만 MZ세대는 평가에 솔직하면서도 점수를 후하게 주는 반면, 베이비붐 세대는 점수가 짠 편이다. 평가 척도가 높은 편이다. 참고로 나라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데, 한국 고객은 특히 청결과 서비스에 민감하다.
호캉스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의 하이엔드 스테이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하이엔드 스테이 시장은 어느 나라든 로컬이 이끌어간다. 리츠 칼튼, 에디션, 불가리 등 럭셔리 호텔 브랜드가 대거 진출해 있는 일본에서는 내국인 수요가 60%에 달한다. 하이엔드 시장의 수요는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평소의 생활 공간과 수준이 맞는 럭셔리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VIP 고객, 사회적 지위에 맞는 소셜라이징 공간을 원하는 이들, 진정한 럭셔리가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진 고객. 한국은 SNS가 활성화되어 있고, 럭셔리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이 크다는 점에서 하이엔드 스테이 시장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단, 실제로 하이엔드 브랜드가 진출하기까지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현실적인 문제라면.
투자자들에게 수익성에서 매력이 부족한 것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은 인건비 수준은 비슷하지만, 호텔 단가가 한국의 두 배 정도다.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럭셔리 호텔 체인이 계속 진출하는 것이다. 한국 또한 코로나19를 거치며 수익 구조가 개선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도록 업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의 신규 럭셔리 브랜드의 진출 계획은.
수익성 개선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지역 개발도 고르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아직 지방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 많다. 특히 해남이나 섬 지역은 뛰어난 환경을 갖췄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다. 민간에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개발로 자연 그대로의 매력을 살리고, 정부에서는 편의성을 높이는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내국인에게 인기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도 많이 찾게 되어 있다. 홍대입구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나라도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김은아 기자 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