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빌딩도 ‘휘청’…내년 강남 땅값 떨어진다[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3-12-13 06:00:01
수정 2023-12-13 06:00:01
건물·분양가에 토지 시세 본격 반영, ‘줍줍’ 노리는 세력도 있어
부동산 자산시장을 떠받쳐 왔던 토지가격이 내년부터 본격 하락할 전망이다. 특히 주택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땅값이 떨어지지 않아 호가가 유지됐던 강남 빌딩 시장도 서서히 불황의 여파에 노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토지가격이 상당 부분 반영되는 건물과 단독, 다가구주택 시세가 가파르게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경매시장에선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의 낙찰률이 떨어지며 투자자들에게 외면받는 추세다.
지지옥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단독주택 매각률(낙찰률)은 25%, 매각가율(낙찰가율)은 81.36%를 기록했으나 11월엔 매각률과 매각가율이 각각 18.92%, 72.46%로 하락했다. 해당 기간 경매에 나온 단독주택 5채 중 1채도 채 낙찰이 안 됐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토지비는 건축비와 함께 주택 공급가격에도 반영되므로 강남지역 아파트 분양가 역시 점차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외 지역에선 한번 올린 분양가를 다시 내리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나온다. 꺾인 ‘땅값 불패론’, 청담동도 매물 쌓여
상승을 거듭하던 땅값은 여타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이후 소폭 하락했다가 올해 다시 반등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전국 지가변동률은 2022년 11월 0.005%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달 –0.032%로 하락폭을 키운 뒤 올해 1월 –0.036%, 2월 –0.021%를 기록했다. 서울의 하락세는 조금 더 가팔랐다. 2022년 11월 0.088% 떨어진 서울 땅값 변동률은 12월 –0.094%, 올해 1월 –0.072%, 2월 –0.058%, 3월 –0.004%로 나타났다.
잠깐의 조정을 거친 땅값은 다시 상승했다. 그중 서울 땅값은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금방 회복했다. 서울 지가변동률은 올해 5월 0.052%를 기록하며 상승 전환한 뒤 10월까지 꾸준히 상승폭을 키워왔다.
서울에서도 강남 땅값은 조정기를 거치지 않은 ‘불패론’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그중 업무용, 상업용 시설이 즐비한 번화가 토지가격은 부동산시장을 덮친 불황에도 빌딩 시세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교통 인프라와 업무지구 조성 등 각종 개발 호재가 집중되며 강남지역 토지의 미래 가치를 뒷받침했다. 2014년 현대차그룹이 당시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감정가(3조3346억원)보다 3배 비싼 10조5500억원(3.3㎡당 4억4000만원)에 사들여 고가 매입이 논란이 됐으나, 해당 부지 공시지가가 2022년까지 4배 오르면서 땅값이 매수금액보다 더 올랐다고 화제가 됐다. 때마침 불어온 엔데믹 바람에 사무실 공급이 부족해 강남 오피스 공실률이 낮았던 것도 원인이었다.
특히 강남에서도 명품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청담동은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고급주거와 상가, 오피스 등 다양한 수요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대지면적 935㎡ 규모 청담동 소재 건물이 경매에서 감정가 976억원의 128%인 1250억원에 낙찰됐다. 대지면적 3.3㎡당 4억4000만원 수준이다. 낙찰자를 포함한 경매 응찰자는 4명이었다.
당시 강남 소재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신사동 등 인근 건물은 높은 호가에 비해 매수가 붙지 않아 거래가 없는 상황인데 청담동은 여전히 비싼데도 거래가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믿음은 점차 흔들리는 분위기다. 프롭테크 업체 벨류맵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12월부터 전반적인 서울 내 상업·업무시설 거래가격이 떨어지는 가운데 강남에서도 소폭 시세가 하락하고 있다. 그동안은 거래량이 감소했어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결국 줄어든 매수세가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지역 상업·업무시설 거래량은 부동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4325건을 기록한 뒤 감소하고 있다. 거래량은 2022년 2387건, 2023년(12월 6일 집계 기준) 1319건으로 매년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었다.
이 같은 거래량 감소에도 지난해까지는 시세가 오히려 올랐다. 서울 상업·업무시설 부지의 3.3㎡당 평균가격은 2019년 6023만원에서 2020년 6551만원으로 올랐고 2021년에는 8066만원으로 8000만원을 넘겼다. 2022년에는 이보다 높은 3.3㎡당 8886만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땅값은 떨어지고 있다. 서울 평균이 3.3㎡당 8542만원으로 전년 대비 약 3.9% 하락한 가운데 강남 땅값 역시 하락한 것이다. 2019년 3.3㎡당 1억원을 넘긴 강남 땅값은 2021년 1억5000만원을 돌파한 뒤 2022년에도 1억6521만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년 1억6097만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하락폭은 –2.6%로 서울 전체 평균보다 완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하락세가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떨어질 가능성 또한 높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신고건수를 보면 강남3구의 월별 거래 건수는 상반기보다 줄었다. 특히 서초구 거래량은 올해 10월 3건, 11월 2건에 그쳤고 강남구 거래량은 10월 14건, 11월 15건으로 이보다 선방했지만 여전히 지난해는 물론 상반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고가의 자산일수록 높은 금리에 더욱 타격을 받는다. 건물 가격 하락이 더 본격화하면 결국 땅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벨류맵 관계자는 “아직 강남 빌딩 호가가 높은 편이지만 실제 거래는 호가보다 10% 정도 낮은 수준에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며 “건물은 위치나 컨디션에 따라 개별적인 차이가 커서 평균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매물이 쌓인 상태에서 거래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아파트 분양가도 떨어지나
최근 고가에 청담동 일대 토지를 매입해 추진하던 개발사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안감은 가중되는 분위기다. 옛 프리마호텔 부지를 인수해 추진하던 ‘르피에드 청담’ 등 일부 사업은 시행사와 대주단 사이 협의를 통해 브리지론 만기를 연장했지만, 강남 일대 알려지지 않은 많은 개발사업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청담동 일대에 펜스만 친 상태에서 계속 공사를 못하고 있는 땅들이 많은데 모두 고급 오피스텔을 지으려다 자금조달을 못 하고 있는 곳”이라며 “경기가 한창 좋을 때 땅을 비싸게 샀는데 분양시장이 확 가라앉으면서 높은 가격에 분양하려는 계획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개발업체가 버티지 못하고 이 같은 땅을 헐값에 내놓으면 전반적인 토지 시세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상황을 눈치채고 토지를 저렴하게 매수하려는 세력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토지가격이 떨어지면 아파트 분양가 역시 하락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특히 분양가상한제하에서는 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해 주택 공급가격을 산정한다. 이 때문에 토지가격이 한창 상승하던 시기에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오히려 분양가격이 더 오르는 경우도 발생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초구 반포동 소재 ‘래미안 원베일리’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시행 전인 2020년 7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3.3㎡당 4891만원의 분양가로 분양보증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조합이 과감하게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선택하면서 역대 최고가격인 3.3㎡당 5668만원에 일반분양을 하게 됐다.
토지가격이 떨어지면서 비슷한 사례는 몇 년간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현재 분양가상한제는 강남3구와 용산, 그리고 공공택지에 적용된다. 한 분양업체 관계자는 “당장 공사비가 떨어지기 어렵지만 땅값이 곧 떨어지는 분위기라 오르기만 하던 분양가가 조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번 오른 분양가가 떨어지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을 제외하면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특히 강남 아파트 분양가는 땅값 하락 영향으로 조금 떨어지더라도 실수요자가 체감할 만큼 대폭 조정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