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그룹은 임기 만료된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9명을 지난 12월 19일 전원 연임시켰다. 아주 이례적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예측 불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게 신한금융의 설명이다. 진옥동 회장은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CEO 전원을 연임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금 전쟁 중이라는 얘기가 된다. 맞는 말일까.
따져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계열사인 은행, 증권사, 저축은행, 캐피탈 등 곳곳에 전선이 형성돼 있다. 상대는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일임형 랩어카운트(랩), 해외대체투자,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등이다. 한 가지도 버거운데 상대가 여럿이니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비단 신한금융만이 아니다. 4대 금융그룹 모두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의 만기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2021년 홍콩H지수가 1만2000을 넘나들 때 팔았던 ELS 만기가 내년 초부터 돌아온다. 홍콩H지수는 6000을 밑돌고 있어 3조원 이상 손실이 불가피하다. 내년 상반기 만기물량(9조2000억원) 중에선 KB국민은행이 4조7730억원으로 가장 많다. NH농협은행(1조4830억원)과 신한은행(1조3770억원)도 1조원이 넘는다.
은행들은 “불완전 판매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투자자들은 펄쩍 뛴다. “원금손실은 없다”는 은행들에 속았다고 주장한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콩 ELS에 투자한 사람 중 48%가 60세 이상이다. 90대 이상에게도 91억원어치를 팔았다. 투자자들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하나, KB, 미래에셋, NH투자, 한국투자, 키움 등 9개 증권사들은 채권형 랩과 신탁을 통해 서로 짜고 채권 ‘돌려막기’를 하다가 적발됐다. 증권사들은 법인이나 기관 자금을 단기로 유치하기 위해 확정수익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웬걸. 작년 ‘레고사태’ 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오히려 손실이 커졌다. 증권사들은 회삿돈으로 수익을 보전해 주거나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손실을 다른 계좌로 떠넘겼다. 한 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와 6000여 회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총 5000억원의 손실을 돌려막기하기도 했다.
증권사들은 관행이었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엄연한 불법이라는 게 감독당국의 설명이다. 관행이건 아니건 증권사당 1000억원 안팎의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부동산 PF대출로 휘청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금융권 전체 부동산 PF대출잔액은 134조3000억원에 이른다. 연체율은 2.42%로 작년 말(1.19%)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연체채권의 3분의 1만 떼여도 1조원을 떠안아야 한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회사의 연체율은 각각 5.56%와 4.44%로 평균을 훨씬 웃돈다.
해외대체투자도 문제다. 은행과 증권사는 해외부동산펀드를 팔아 해외부동산에 투자했다. 은행이 9조8000억원, 증권사가 8조3000억원이다. 하지만 부동산값이 떨어져 원금손실마저 우려된다. 홍콩H ELS 같은 대란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맞닥뜨린 금융그룹으로선 가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전쟁이다. 이자장사로 떼돈을 번 금융그룹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결과다. 자신들의 ‘탐욕과의 전쟁’일 뿐이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