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국에서 역사가 100년을 넘는 장수 기업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출발해 127년 역사를 가진 두산그룹을 비롯해 동화약품, 신한은행, 우리은행 정도다. 제조업 강국인 일본은 100년 기업이 3만3000여 곳, 독일은 1만 곳이 넘는다.
기업의 평균 수명도 줄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8년 기준 61년에서 2027년에는 12년 수준으로 대폭 단축될 것으로 예측됐다. 신기술로 촉발된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해 디지털 전환과 첨단기술 우위 확보 등 지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내 기업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만이 장수 기업을 만드는 지속 성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100년 기업을 만들어 갈 재계 뉴 리더들이 성장하고 있다. 빅 체인지를 통해 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리파운더 후보생들이다. 오너가 3~5세로 1980~90년대생인 이들은 최근 미래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병철(삼성)·정주영(현대)·구인회(LG)·최종건(SK)·신격호(롯데) 등 총수 1~2세대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 3세대는 기존의 틀을 깬 혁신을 통해 반도체·전기차·배터리·인공지능(AI)·로봇으로 퀀텀점프(대도약)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오너 자녀들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창업자보다 더 위대한 기업으로 ‘다음 100년’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리파운더 후보들을 살펴봤다.
젊은 리더십으로 총수 반열 오른 김동관·정기선
재계 뉴 리더 중 유력한 리파운더 후보로는 한화그룹 3세 김동관 부회장과 HD현대 오너가 3세 정기선 부회장이 거론된다. 다음 총수가 될 가능성이 큰 두 사람은 1980년대생 부회장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이미 이들은 그룹의 얼굴로 각종 대외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 부회장은 (주)한화·한화솔루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3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차기 총수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5월 출범한 한화오션의 기타비상무이사로 활동하며 빠른 경영정상화와 해외시장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핵심 사업인 우주항공·방산 부문을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서도 성과를 거두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부회장은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 HD한국조선해양 대표 등을 거치며 그룹의 체질 개선과 위기 극복에 힘써 왔다.
제조업 중심 이미지에서 탈피해 AI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며 HD현대그룹의 새로운 50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조선사업뿐 아니라 정유, 건설기계, 전력기기 등 주요 사업의 경쟁력 확보와 혁신을 이끈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23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미래 먹거리 ‘바이오’로 경영 시험대
최윤정·신유열·담서원
SK그룹과 롯데그룹은 3세들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사업에 투입했다. 재계에선 바이오사업이 후계자들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며 바이오 분야에서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임무를 맡게 됐다. 1989년생인 최 본부장은 2017년 SK바이오팜에 합류해 사업 개발과 글로벌 전략투자 등을 담당했다.
특히 2023년 인수한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의 PMI(인수 후 통합) 작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본부장은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시장 안착과 세노바메이트 뒤를 잇는 후속 파이프라인 확보에 집중할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도 최근 인사에서 바이오 계열사에 투입됐다. 롯데그룹은 미래성장의 핵심으로 바이오사업을 꼽고 있으며, 글로벌 CDMO 기업으로의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1986년생인 신 전무는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한 후 2022년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상무보로 합류했다. 이후 일본 롯데파이낸셜 최대주주인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 공동대표로 선임된 데 이어 2022년 12월 상무, 2023년 12월 전무로 승진했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임한다. 신 전무가 투자와 신사업 개발 전문가인 만큼 기업의 모태가 된 식품, 유통, 서비스사업을 넘어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 3세인 담서원 오리온그룹 상무도 바이오 분야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음료·간편대용식·바이오를 3대 신사업으로 선정하고 2022년 11월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이후 암 체외 진단키트, 결핵백신 개발에 이어 치과질환 치료제까지 바이오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89년생인 담 상무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다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관리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국내외 사업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아왔다. 오리온그룹은 최근 바이오사업을 위해 알테오젠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시장에서는 담 상무가 바이오사업 강화를 위한 M&A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신소재·배터리·반도체 신사업 도전장
이선호·박상수·박상우·구동휘·이규호·김건호
CJ그룹에선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경영리더),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이 각각 식품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생분해성 바이오 소재 PHA를 활용한 ‘퇴비화 종이 코팅 기술’을 개발하는 등 화이트바이오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2024년도 인사에서 이선호 경영리더의 역할이 바이오사업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산그룹에서는 1990년대생 오너가 5세들이 최근 그룹에 합류하며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 씨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 씨가 지주사인 (주)두산과 그룹 수소에너지 담당 계열사 두산퓨얼셀에 각각 입사했다.
박상수 (주)두산 CSO 신사업전략팀 수석은 그룹 전반의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을 기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룹 합류 전 한국투자증권 반도체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부문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상우 파트장은 두산퓨얼셀 미국법인 하이엑시엄의 2025년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은 최근 임원 인사에서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인 ‘비전 2030’ 추진의 핵심 축을 맡게 됐다.
LS그룹은 배터리·전기차·반도체를 포함한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해 2030년까지 자산 50조원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담아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LS그룹의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담당하는 LS MnM의 COO를 구 부사장이 맡게 되며 비전 달성 추진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코오롱가 4세인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사장은 최근 임원인사에서 지주회사 부회장에 올라 차기 총수 입지를 강화했다.
1984년생인 이 부회장은 지난 3년간 코오롱그룹의 자동차유통 부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올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독립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올초 사장 승진 1년 만에 (주)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기존 (주)코오롱 대표이사인 안병덕 부회장과 투톱 체제다. 안 부회장은 지원부문을 맡고 이 부회장은 전략 부문을 맡아 그룹의 미래가치 제고와 사업혁신을 이끌 예정이다.
삼양그룹의 임원 인사에서는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가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선임됐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전략총괄 직책을 맡아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지게 됐다.
경영에 앞서 투자 감각부터 익혀
김준영·허태홍·박하민·구형모·이연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투자 경험을 쌓는 오너가 자녀들도 다수다. 김홍국 하림 회장의 장남 김준영 JKL파트너스 수석운용역은 이번에 HMM 인수를 물밑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은 해운계열사인 팬오션과 사모펀드 운용사(PEF)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구성해 HMM 인수전에 나섰고 최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하림그룹의 재계 순위가 기존 32위에서 13위로 뛰어올라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며 오너 2세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S가에선 1985년생인 허태홍 GS퓨처스 대표가 친환경과 에너지, 디지털, 이커머스 등의 분야에서 유망 스타트업 발굴을 위해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벤처투자사인 GS퓨처스를 이끌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 씨는 미국계 VC인 GFT벤처스 파트너로 활약 중이다. 1989년생인 박 파트너는 미국 코넬대 역사학과와 스탠퍼드대 MBA(경영대학원 석사) 졸업 후 맥킨지앤컴퍼니·CBRE를 거쳐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법인, 블랙스톤에서 금융 투자 경력을 쌓았다. 이후 실리콘밸리 VC에서 활동하다 2021년 4월 GFT벤처스 창립멤버로 합류해 AI, 데이터사이언스 등 첨단기술 분야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는 LX홀딩스 산하에 설립된 싱크탱크의 초대 대표를 맡아 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 컨설팅, 정보기술(IT)·업무 인프라 혁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구 대표는 그간 초고속 승진을 통해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했으나 2023년 승진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서 투자 감각을 익히는 오너가 자녀도 있다.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의 장녀 이연수 씨는 벤처투자 계열사인 에코프로파트너스 투자심사역으로 근무 중이다. 1991년생인 그는 정기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에코프로파트너스는 국내외 유망 배터리, 친환경 기업 발굴 업무를 맡고 있다. 이 회장의 장남 이승환 상무는 1989년생으로 2023년 4월부터 에코프로 미래전략본부를 이끌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한국에서 역사가 100년을 넘는 장수 기업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출발해 127년 역사를 가진 두산그룹을 비롯해 동화약품, 신한은행, 우리은행 정도다. 제조업 강국인 일본은 100년 기업이 3만3000여 곳, 독일은 1만 곳이 넘는다.
기업의 평균 수명도 줄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8년 기준 61년에서 2027년에는 12년 수준으로 대폭 단축될 것으로 예측됐다. 신기술로 촉발된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해 디지털 전환과 첨단기술 우위 확보 등 지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내 기업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만이 장수 기업을 만드는 지속 성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100년 기업을 만들어 갈 재계 뉴 리더들이 성장하고 있다. 빅 체인지를 통해 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리파운더 후보생들이다. 오너가 3~5세로 1980~90년대생인 이들은 최근 미래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병철(삼성)·정주영(현대)·구인회(LG)·최종건(SK)·신격호(롯데) 등 총수 1~2세대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 3세대는 기존의 틀을 깬 혁신을 통해 반도체·전기차·배터리·인공지능(AI)·로봇으로 퀀텀점프(대도약)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오너 자녀들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창업자보다 더 위대한 기업으로 ‘다음 100년’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리파운더 후보들을 살펴봤다.
젊은 리더십으로 총수 반열 오른 김동관·정기선
재계 뉴 리더 중 유력한 리파운더 후보로는 한화그룹 3세 김동관 부회장과 HD현대 오너가 3세 정기선 부회장이 거론된다. 다음 총수가 될 가능성이 큰 두 사람은 1980년대생 부회장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이미 이들은 그룹의 얼굴로 각종 대외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 부회장은 (주)한화·한화솔루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3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차기 총수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5월 출범한 한화오션의 기타비상무이사로 활동하며 빠른 경영정상화와 해외시장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핵심 사업인 우주항공·방산 부문을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서도 성과를 거두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부회장은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 HD한국조선해양 대표 등을 거치며 그룹의 체질 개선과 위기 극복에 힘써 왔다.
제조업 중심 이미지에서 탈피해 AI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며 HD현대그룹의 새로운 50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조선사업뿐 아니라 정유, 건설기계, 전력기기 등 주요 사업의 경쟁력 확보와 혁신을 이끈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23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미래 먹거리 ‘바이오’로 경영 시험대
최윤정·신유열·담서원
SK그룹과 롯데그룹은 3세들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사업에 투입했다. 재계에선 바이오사업이 후계자들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며 바이오 분야에서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임무를 맡게 됐다. 1989년생인 최 본부장은 2017년 SK바이오팜에 합류해 사업 개발과 글로벌 전략투자 등을 담당했다.
특히 2023년 인수한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의 PMI(인수 후 통합) 작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본부장은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시장 안착과 세노바메이트 뒤를 잇는 후속 파이프라인 확보에 집중할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도 최근 인사에서 바이오 계열사에 투입됐다. 롯데그룹은 미래성장의 핵심으로 바이오사업을 꼽고 있으며, 글로벌 CDMO 기업으로의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1986년생인 신 전무는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한 후 2022년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상무보로 합류했다. 이후 일본 롯데파이낸셜 최대주주인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 공동대표로 선임된 데 이어 2022년 12월 상무, 2023년 12월 전무로 승진했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임한다. 신 전무가 투자와 신사업 개발 전문가인 만큼 기업의 모태가 된 식품, 유통, 서비스사업을 넘어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 3세인 담서원 오리온그룹 상무도 바이오 분야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음료·간편대용식·바이오를 3대 신사업으로 선정하고 2022년 11월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이후 암 체외 진단키트, 결핵백신 개발에 이어 치과질환 치료제까지 바이오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89년생인 담 상무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다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관리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국내외 사업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아왔다. 오리온그룹은 최근 바이오사업을 위해 알테오젠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시장에서는 담 상무가 바이오사업 강화를 위한 M&A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신소재·배터리·반도체 신사업 도전장
이선호·박상수·박상우·구동휘·이규호·김건호
CJ그룹에선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경영리더),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이 각각 식품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생분해성 바이오 소재 PHA를 활용한 ‘퇴비화 종이 코팅 기술’을 개발하는 등 화이트바이오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2024년도 인사에서 이선호 경영리더의 역할이 바이오사업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산그룹에서는 1990년대생 오너가 5세들이 최근 그룹에 합류하며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 씨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 씨가 지주사인 (주)두산과 그룹 수소에너지 담당 계열사 두산퓨얼셀에 각각 입사했다.
박상수 (주)두산 CSO 신사업전략팀 수석은 그룹 전반의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을 기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룹 합류 전 한국투자증권 반도체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부문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상우 파트장은 두산퓨얼셀 미국법인 하이엑시엄의 2025년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은 최근 임원 인사에서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인 ‘비전 2030’ 추진의 핵심 축을 맡게 됐다.
LS그룹은 배터리·전기차·반도체를 포함한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해 2030년까지 자산 50조원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담아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LS그룹의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담당하는 LS MnM의 COO를 구 부사장이 맡게 되며 비전 달성 추진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코오롱가 4세인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사장은 최근 임원인사에서 지주회사 부회장에 올라 차기 총수 입지를 강화했다.
1984년생인 이 부회장은 지난 3년간 코오롱그룹의 자동차유통 부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올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독립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올초 사장 승진 1년 만에 (주)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기존 (주)코오롱 대표이사인 안병덕 부회장과 투톱 체제다. 안 부회장은 지원부문을 맡고 이 부회장은 전략 부문을 맡아 그룹의 미래가치 제고와 사업혁신을 이끌 예정이다.
삼양그룹의 임원 인사에서는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가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선임됐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전략총괄 직책을 맡아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지게 됐다.
경영에 앞서 투자 감각부터 익혀
김준영·허태홍·박하민·구형모·이연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투자 경험을 쌓는 오너가 자녀들도 다수다. 김홍국 하림 회장의 장남 김준영 JKL파트너스 수석운용역은 이번에 HMM 인수를 물밑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은 해운계열사인 팬오션과 사모펀드 운용사(PEF)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구성해 HMM 인수전에 나섰고 최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하림그룹의 재계 순위가 기존 32위에서 13위로 뛰어올라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며 오너 2세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S가에선 1985년생인 허태홍 GS퓨처스 대표가 친환경과 에너지, 디지털, 이커머스 등의 분야에서 유망 스타트업 발굴을 위해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벤처투자사인 GS퓨처스를 이끌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 씨는 미국계 VC인 GFT벤처스 파트너로 활약 중이다. 1989년생인 박 파트너는 미국 코넬대 역사학과와 스탠퍼드대 MBA(경영대학원 석사) 졸업 후 맥킨지앤컴퍼니·CBRE를 거쳐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법인, 블랙스톤에서 금융 투자 경력을 쌓았다. 이후 실리콘밸리 VC에서 활동하다 2021년 4월 GFT벤처스 창립멤버로 합류해 AI, 데이터사이언스 등 첨단기술 분야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는 LX홀딩스 산하에 설립된 싱크탱크의 초대 대표를 맡아 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 컨설팅, 정보기술(IT)·업무 인프라 혁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구 대표는 그간 초고속 승진을 통해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했으나 2023년 승진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서 투자 감각을 익히는 오너가 자녀도 있다.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의 장녀 이연수 씨는 벤처투자 계열사인 에코프로파트너스 투자심사역으로 근무 중이다. 1991년생인 그는 정기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에코프로파트너스는 국내외 유망 배터리, 친환경 기업 발굴 업무를 맡고 있다. 이 회장의 장남 이승환 상무는 1989년생으로 2023년 4월부터 에코프로 미래전략본부를 이끌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