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2023년] 불확실의 해이자 거꾸로의 해…“어떤 일 있었나”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성탄트리가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다./2023.11.20 최혁 기자
어느덧 2023년의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2023년은 불확실의 해이자 거꾸로의 해였습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경제 전망은 수정되기 일쑤였고, 역성장이 예상된 미국 경제는 오히려 성장을 거듭하며 정반대로 질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출산, 지구온난화와 같은 교과서 속 낡은 단어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와 우리 삶을 습격했습니다. 마치 ‘이제 더는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2023년은 어떤 해로 기록될까요. 2024년에도 영향을 미칠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했습니다. ① 부동산 PF
2023 금융위기의 뇌관 12월 28일, 3조원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가 발발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한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이날 오전 이사회 결의를 마치고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워크아웃은 금융기관 등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하면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있는 기업의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추가 자금을 지급해주는 제도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는 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시장은 금융권 중 부동산 PF 연체율이 가장 높은 증권업계의 위기 발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증권업계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3%로 금융권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이 이달까지 갚아야 하는 대출 규모는 3956억원에 이른다. 내년 4분기까지 1년 사이에 만기가 도래하는 PF 보증 채무는 3조6027억 원에 육박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 20231228 임대철 기자

위기 징후는 일찌감치 예견된 바였다. 앞서 지난 12월 8일을 기준으로 국내 신용평가회사 3곳이 최근 한 달간 채권의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을 낮춘 기업 수는 모두 12개사에 달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5곳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확대를 하향 조정 사유로 반영했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 그리고 건설사들이 등급전망에 타격을 입었다.

올해 초부터 한국 경제를 쥐고 흔든 부동산 PF가 연말까지 말썽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부동산 PF’가 한국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PF란 기업의 신용과 담보에 기초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존의 기업금융과 달리 기업과 법적으로 독립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상환재원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을 의미한다. 건설사들은 PF 대출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 뒤 발주처에서 분양수익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정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예상기대수익이 높은 만큼 많은 금융사들이 참가하다 보니 자금을 끌어모으기 좋지만, 불황일 땐 자금흐름이 경색되면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동산 PF로 돈을 빌린 건설사들의 파산위험이 증가하면, 이는 곧 금융사들의 부실로 이어진다. 특히 부동산 PF는 캐피탈, 저축은행, 금융투자회사와 같은 2금융권에서 중점적으로 실행됐는데, 이들은 시중은행보다 자본 규모가 작다 보니 부실이 발생할 경우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2금융권을 시작으로 ‘연쇄 도산’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또한 ‘부실한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해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장의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 말쯤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의미 있는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2024년에도 부동산 PF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②챗GPT
2023년판 新종교전쟁
올 한 해 가장 핫한 미국 주식이 무엇이었을까. 여러 기업을 떠올리겠지만, 엔비디아에 이견을 나타낼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5월 반도체 기업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더니 11월엔 종가 기준 500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약 1조1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00조원이 넘는다.

엔비디아 주가를 밀어올린 건 인공지능(AI) 열풍이다. 지난해 11월 오픈AI가 선보인 챗GPT는 출시 이후 불과 두 달 만인 올해 1월 MAU 1억 명을 돌파하며, 인터넷 등장 이후 가장 빠르게 이용자 수가 증가한 서비스로 거듭났다. 시장은 ‘AI 열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구글이 GPT-4를 견제하기 위한 ‘제미나이’를 공개하면서 초거대 AI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AI가 고도의 발전을 이루면서 2023년판 종교전쟁에 버금 가는 심각한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머(boomer·개발론자)’와 AI가 인류에게 위험이 된다고 보는 ‘두머(doomer·파멸론자)’ 간 싸움이다. 이제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오픈AI의 샘 올트먼 축출 사건도 이러한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 5일간의 소동 끝에 올트먼이 복귀에 성공하며 당장은 AI 개발론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아 있다. 챗GPT는 인류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1년 만에 챗GPT가 다시 논란을 몰고 돌아왔다.
③카카오의 위기
‘더 나은 세상’ 아니, 배신의 경영국민 캐릭터 ‘라이언’을 닮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10월 23일 피의자 신분으로 금융감독원에 공개 소환됐다. 검찰이 아닌 금감원 수사 단계에서 대기업 총수급 피의자가 공개 소환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2010년 3월 “기술과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카카오의 등장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국민적 관심이었다. 남녀노소 카카오프렌즈를 사용했고, 주주들은 카카오란 성장주에 미래를 걸었고, 개미들의 염원 속에 2021년 카카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년여가 지난 카카오의 오늘은 참혹하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지난 10월 26일 “금융, 법률 전문가 그룹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건으로 자본시장의 근간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라며 카카오를 정조준했다. 국민연금공단은 나락에 빠진 주가에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로 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부도덕적인 기업’이라며 카카오를 공개 저격했다.

쓰나미가 몰고 간 카카오는 현재 분골쇄신 중이다. 창업주 김범수 센터장은 12월 11일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며 카카오의 재탄생을 예고했다. 그리고 “새로운 배, 새로운 카카오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가 세운 뉴 리더십은 40대 여성 CEO인 카카오벤처스의 정신아 대표다. 카카오 측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IT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고,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른 갈등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신아 내정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위기의 구원투수가 될지, 유리절벽의 사례가 될지 경영의 주사위는 다시 던져졌다. ④신생아 역대 최저
“1호 인구소멸 국가?”“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지난 7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듣고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올해 1∼3분기 누적 출생아 수는 17만7000명. 이는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올 4분기에는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까지 떨어지며 저출산 위기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저출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 들어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면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전망했다. 그러나 당시 합계출산율은 1.13명으로 올해 4분기 0.6명대와 비교하면 저출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콜먼 교수는 “인구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다”며 “이대로라면 한국은 2750년 국가가 소멸할 위험이 있고, 일본은 3000년까지 일본인이 모두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출산율이 낮은 이유로 과거에서 비롯된 전근대적인 사회·문화와 빠른 경제 발전의 괴리, 과도한 업무 부담과 교육 환경 등을 꼽았다.
⑤세계의 분열
세계화? 갈라진 세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3년 경제를 뒤흔든 커다란 변수였다. 사진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잠정 휴전 사흘째인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시티를 지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규모의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약 1만8000여 명. 지난해 세계경제를 격동에 빠뜨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최악의 전쟁 참사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안보 불안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전 세계 국가들마다 계산이 달라지고 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팍스 아메리카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결합된 ‘세계화’는 평화와 번영의 황금기이자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는 징후가 2022~2023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여기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달러 패권’의 위협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중국과 원유·천연가스(LNG)를 거래하는 데 달러 대신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 미디어 조직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는 지난 3월 ‘분열된 세계화’라는 칼럼을 통해 “세계경제는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블록화되고 있고 몇몇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줄타기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칼럼은 이로 인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할 것이고 세계경제의 성장 잠재력 또한 현저히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탈세계화가 지금의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자 세계경제를 송두리째 바꾼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⑥고물가
“손님도 사장도 아프다”“요즘 호떡 하나에 얼마인가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에 댓글이 주루룩 달렸다. “1700원이요”, “1500원이요”, “2000원도 봤어요”…. ‘국민 간식’ 호떡 가격이 이젠 달갑지 않은 지 오래다. 수도권에서 대부분의 호떡 값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조금 더 목 좋은 곳에 차린 가게에선 2000원까지 값이 올랐다.

호떡 친구 붕어빵은 더 심하다. ‘2개당 1000원’과 ‘3개당 2000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어느새 ‘3개당 2000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제 1000원으로는 겨울 간식은 구경만 해야 하는 수준이다.

원인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식자재 가격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지구온난화로 작황 부진 등을 동시에 겪으면서 식자재 값이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간식류의 가격을 끌어올린 설탕값은 지난 5월까지 최근 12년 상승률이 87%로 치솟았다. 설탕과 인플레이션을 합쳐 ‘슈거플레이션’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도 3%대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3.6%보다는 안정되긴하지만 올해에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는 물가상승률이 3%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잡히지 않는 물가에 지갑도 굳게 닫혔다. 지난 3분기 물가를 발영한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비지출은 △의류·신발(-11.6%) △가정용품·가사서비스(-10.9%) △기타상품·서비스(-4.7%) △음식·숙박(-3.1%) △주류·담배(-1.9%)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지난해 3분기보다 뒷걸음질쳤다.

이는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타를 입혔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위기 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폐업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자영업자 비율은 지난 2분기에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자영업자 대출도 역대 최대였다. 자영업자 대출 지표로 활용되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대출 중 예금은행의 비법인기업 대출 잔액은 119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7000억원 증가했다. 고물가에 원재료 구매 부담은 커지고 소비는 위축되면서 운영자금을 빚으로 충당한 결과다. ⑦ 미국으로 간 기업들
미국의 부흥, 한국 제조업의 위기? “토니, 당신을 비롯해 CS윈드에 근무하는 수백 명의 일꾼들 덕분에 미국이 바뀌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월 4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한국의 풍력업체인 CS윈드 방문 당시 만난 근로자를 거명하며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CS윈드는 풍력 타워와 터빈을 만드는 한국 기업으로,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 공장을 짓고 투자 중이다.

바이든의 감사는 CS윈드뿐이 아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556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이 밝힌 아시아·태평양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민간 투자 총액인 2000억 달러의 4분 1이 넘는 수준이다. 백악관 측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과학법, 초당적인 인프라법과 같은 역사적인 입법 등의 바이드노믹스와 바이든 대통령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가 전 세계,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들이)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하도록 촉진했다”고 부연했다.

백악관은 구체적으로 삼성이 텍사스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해 17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에 전기자동차 베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함께 1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며 이를 통해 일자리 수천 개를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화큐셀이 조지아주의 공장 확장을 위해 25억 달러, CS윈드가 콜로라도 풍력 타워 제조 시설에 2억여 달러를 투자했다고 언급했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32억 달러를, LG에너지솔루션도 애리조나주 퀸 크릭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에 56억 달러, 미시간주 홀란드 공장에 30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이 밖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산업에 15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한국의 당뇨병 치료 전문 제약사 유엔바이오가 웨스트버지니아주 모건타운에 인슐린 생산 제조 시설 마련을 위해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는 동안 국내에서는 투자 한파가 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10월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9.7% 줄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KDI는 “반도체 경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관련 설비투자 수요가 제한됐다”며 “여타 기계류도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부진이 지속됐다”고 진단했다.

20년 전 보스턴컨설팅은 ‘글로벌 대기업 숫자가 한 나라의 경제력을 결정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 한국은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다. 공교롭게도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118곳(52%)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3월보다 5곳이 증가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 2곳 가운데 1곳은 소멸위험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⑧ 성장주의 실종
같은 고금리, 다른 주가
The logo of NVIDIA as seen at its corporate headquarters in Santa Clara, California, in May of 2022. Courtesy NVIDIA/Handout via REUTERS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MANDATORY CREDIT/File Photo/2023-10-24 04:03:44/
미국과 한국이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투자 규모만이 아니다. 고금리 상황은 동일했지만 ‘성장주’의 운명은 각기 달랐다.

12월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구글 모회사 알파벳, 애플,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 아마존, 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이 AI 잠재력에 힘입어 S&P500지수 상승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이들 기업은 올해 3분기에만 990억 달러(약 130조원)의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특히 빅테크 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엔비디아는 AI 수요에 힘입어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 애플 또한 ‘꿈의 시총’이라 불리는 3조 달러를 세계 최초로 넘어서며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 7위인 프랑스의 GDP보다도 높고 한국 GDP로 따지면 1.7배 수준이다. 이 뒤를 현재 시총 2위인 MS가 오픈AI와의 협업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바짝 쫓고 있다. 그야말로 빅테크, 성장주의 시대다.

이론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장면이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책금리를 525bp나 인상하면서 미국 경기 후퇴가 당연시됐다. 하지만 올 한 해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2022년에 비해 더욱 강해졌다. AI 열풍은 물론, 반도체와 2차전지 기업 중심의 미국 리쇼어링 가속화와 제조업 투자 확대로 재정 자극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코스피지수는 올 한 해 확실한 주도주 없이 박스피를 횡보하고 있다. 성장주가 없는 곳에 개인 투자자들은 2차전지, 초전도체, 맥신, 양자컴퓨터, 후쿠시마 오염수, 정치 등 테마주와 종목을 중심으로 한 당일 매매에 몰두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1월 유가증권시장 전체 거래 대금에서 당일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41.5%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엔 32.3%로, 올 들어서만 9.2%포인트 급증한 셈이다. ⑨ 지구온난화
GDP 두 자릿수 하락의 범인 뜨거운 겨울.

‘뜨거운 아아메 한 잔’ 같은 소리가 올겨울을 설명하고 있다. 경험해본 적 없는 따뜻한 겨울 날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남부 지역에는 지난 12월 12일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찾아왔다. 절기상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겨울로, 이 기간 남부 지역 기온은 통상 8도에서 18도를 기록하는데 이를 훌쩍 웃도는 깜짝 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란 전망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12월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 1∼11월 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기온보다 1.46도 높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1∼11월) 기준 역대 가장 더웠던 해인 2016년과 비교해서도 0.13도 높다.

지구온난화는 세계의 경제 지도도 바꾸고 있다. 살인적인 폭염에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농산물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농업과 같은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은 물론 반도체와 관광산업에도 영향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고온은 공장 기계를 더 빨리 마모시키고 강철을 더욱 쉽게 휘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30년 폭염으로 3000조원 이상 경제적 손실이 전 세계에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엔 원자재뿐 아니라 노동력의 손실도 담겼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폭염으로 인한 만성적 신체 위험이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을 2100년까지 최대 17.6% 위축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학술지 랜싯 등 다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영상 32도에 도달하면 생산성이 25% 떨어지고 영상 38도를 넘으면 70%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⑩ 자동차의 질주
“꼼짝 마, 반도체”한국 수출액 1위 품목은 반도체다?

2025년이면 이 공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반전의 주인공은 자동차다. 자동차가 반도체를 제치고 2025년 수출액 1위 품목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평균 가격이 높은 전기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의 판매가 증가하며 수출 금액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금액은 838억 달러(110조59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인 774억 달러를 이미 넘어선 수치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853억 달러)와의 차이는 15억 달러에 불과하다.

자동차 수출 금액 확대는 평균 판매단가 상승이 이끌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와 SUV는 동급의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가격이 1000만~2000만원가량 비싸기 때문에 이러한 고부가가치 상품이 많이 팔리면서 수출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자동차 수출 금액은 2025년 또 한 번 변곡점을 그릴 전망이다. 현대차의 울산 전기차 신공장과 기아의 화성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 공장 등이 가동을 앞두고 있다. 울산 신공장의 연간 전기차 생산능력은 20만 대, 화성 PBV는 연간 15만 대 수준이다.

업계에선 완성차 수출단가와 수출 물량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자동차와 부품 수출액은 반도체를 제치고 1위에 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완성차 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추세지만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공장 가동률이 거의 100%에 이르러 양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2025년부터 새로운 공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수출 금액 확대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반도체 업황이다. 올해 부진에 시달렸던 반도체 업황이 내년 반등에 성공한다면 자동차의 1위 탈환 가능성은 낮아질 전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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