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명품 판매는 실패한 비즈니스인데…쿠팡이 망한 파페치를 인수한 까닭 [안재광의 대기만성’s]

[안재광의 대기만성’s]


‘적자의 대명사’로 불렸던 쿠팡이 드디어 지난해 연간 기준 흑자를 낸 것 같습니다. 지난해 1~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인데요. 쿠팡이 연간 기준 흑자를 낸다면 2010년 설립 이후 처음이죠. 이제 안정적으로 돈 좀 버나 싶었는데, 쿠팡 경영진은 이 상황을 마냥 즐기고 싶진 않았나 봅니다. 작년 말 돌연 한 영국 기업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회사, 완전히 부실 덩어리입니다.

파페치란 회사인데요. 온라인으로 명품을 팝니다. 연간 수천억원씩 적자를 내다가 부도 직전에 쿠팡에 넘어갔습니다. 쿠팡이 파페치를 제대로 살려 놓지 못하면, 파페치도 망하고 쿠팡도 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쿠팡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쿠팡의 최대 고민 성장 둔화쿠팡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국내 온라인 유통의 매출 성장률은 2020년까지만 해도 분기당 20%를 웃돌았는데, 2022년에는 10%대 수준으로 떨어졌고, 2023년에는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월별 기준 2023년 10월 처음 20조원을 넘었는데요. 이렇게 시장이 커지니 성장률이 둔화된 것이죠. 온라인 쇼핑에서 폭발적 성장, 이런 건 없다는 얘깁니다. 시장 자체가 팍팍 안 늘면, 쿠팡 쓰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사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아요. 쿠팡을 쓰는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지출한 돈이 분기당 300달러 정도 하는데요. 월간으론 100달러 안팎, 13만원쯤 하죠. 이게 어느 시점에선가 늘지 않습니다.



뉴욕증시에 상장 된 쿠팡 주식이 지난해 내내 별 재미를 못 본 것도 성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기 때문일 겁니다. 주가 상승률이 연간 약 5%에 불과했어요.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가 45%나 올랐으니까, 쿠팡 주식 산 분들은 속이 상할 만도 했어요. 투자자들은 ‘흑자 따윈 관심 없다. 더 큰 성장 스토리를 가져와’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걸 무시할 수 없는 게 쿠팡은 투자자 돈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비롯해 베일리 길포드, 모간스탠리 등의 금융사들이 쿠팡 주식을 많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펀드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쿠팡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죠. 미개척 분야 공략에 나섰습니다. 음식 배달이 대표적이에요. 쿠팡이츠로 시장 장악을 꾀합니다. 하지만 3개 앱 중에 꼴찌죠. 배달의민족, 요기요에 비해 후발주자라 시장을 확 뺏어 오기 힘듭니다.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11번가, 지마켓 등과 차별화한 게 로켓배송인데요. 음식 배달 시장에선 차별화할 게 별로 없어요.

이 세 군데 주문하면 다 비슷한 라이더 분들이 오잖아요.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요. 배민, 쿠팡은 주문만 받아주고요. 음식점에서 생각대로, 바로고 같은 배달 대행 업체를 통해 라이더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구조거든요. 온라인 미개척 분야 명품에 주목
그다음으로 의복을 보시죠. 이 지점에서 파페치를 인수한 이유가 나옵니다. 의복 시장은 한국만 봤을 때 월 2조원 시장이에요. 단순 계산으로 12 곱하면, 대략 연간 24조원이나 합니다.

쿠팡이 이 시장을 공략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2020년에 C.에비뉴란 카테고리를 열고 빈폴, 라코스테, 뉴발란스 같은 이름 있는 브랜드를 많이 들여와서 팔았습니다. 하지만 잘 안 됐죠. 패션 시장은 또 다른 리그여서 음식 배달처럼 나름 강자들이 있어요. 무신사, 에이블리 등등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쿠팡이 2~3년간 해법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데, 별안간 파페치란 회사가 매물로 나타난 겁니다.

파페치는 2021년 한때 시가총액이 30조원에 육박했습니다. 까르띠에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 중국의 알리바바가 투자를 하기도 했고요. 쿠팡 이상의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죠. 명품이야 말로 온라인이 미개척한 분야잖아요.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 비중, 이걸 침투율이라고 하는데요. 10%대에 불과합니다. 한 시장에서 침투율이 10% 정도 되면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는 임계점입니다. 전기차 시장이 그랬고, 스마트폰 시장도 그랬어요. 주식시장에선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사실 명품을 온라인으로 사는 게 좀 꺼림칙하죠. 1000만원짜리 에르메스 백을 온라인으로 산다면. 구매 버튼 누르기 망설여집니다. 짝퉁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고, 또 명품은 매장 가서 사야 맛도 나고요.

그런데 파페치가 공략을 잘했습니다. 우선 짝퉁 우려가 덜해요. 이 회사가 물건을 받는 곳은 명품 도매상인데요. 샤넬, 루이비통 이런 명품 회사가 직접 물건을 주는 게 아니라, 이런 브랜드와 거래하는 도매상의 물건을 팔아줘요.이런 명품 도매상 네트워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축했습니다. 무려 1400여 개 명품 브랜드가 입점했고요. 한국을 비롯한 190개국에서 온라인으로 팔고 있어요. 판매 수수료로 30%가량을 받는 게 사업 모델입니다.

단순히 중개만 하는 게 아니라 오프화이트, 팜엔젤스, 엠부시 같은 브랜드를 보유한 뉴가즈그룹 같은 회사를 직접 인수해서 팔기도 하고요. ‘파페치는 가품 없다, 그리고 들어가면 웬만한 브랜드 다 있다’ 이런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 줍니다. 그래서 매출이 급증했는데, 2019년 처음 10억 달러를 넘겼고, 2년 만인 2021년 20억 달러도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이익이었습니다. 파페치가 명품 브랜드를 직접 인수하고, 심지어 미국 백화점 니먼마커스 지분까지 인수하고요. 너무 공격적으로 나선 탓에 장사 해서 번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어요. 영업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2022년 8억4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습니다.
높은 객단가·해외 네트워크에 군침이렇게 보면 쿠팡 입장에선 우선 군침 흘릴 만한 것 같습니다. 세계 명품 시장 규모가 4000억 달러, 520조원이나 하는데 여기서 10%만 먹어도 52조원이나 하니까. 현재 쿠팡의 매출보다 많죠. 더구나 쿠팡은 아무리 잘해도 한국 이외에 시장이 사실상 없잖아요. 일본에 갔다가 2년 만에 철수했고, 요즘은 대만에서 좀 해본다고 하는데 이것도 좀 지켜봐야 합니다. 그런데 파페치는 190개국에 진출했다고 하니 단번에 190개국을 진출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잖아요.

명품은 객단가도 높습니다. 쿠팡 사용자 한 명의 분기당 평균 매출이 40만원쯤 한다고 했는데요. 명품은 하나만 팔아도 100만원은 우습지 않습니까. 수수료로 30%인 30만원만 매출로 잡는다고 해도 매출 증대 효과가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파페치 인수는 쿠팡이 그토록 원했던 객단가 증대, P(Price)를 증대하는 것과 시장 확대, Q(Quantity)를 높이는 효과가 동시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파페치의 적자를 막는 게 관건인데요. 쿠팡이 요즘 분기당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고 있어서 이걸로 당분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쿠팡이 또 12년간 적자를 냈다가 흑자로 돌려 세운 노하우가 있잖아요. 비용 통제, 생산성 향상 이런 분야에선 달인이 됐습니다.

이보다 걱정은 중국 시장의 부진입니다. 중국은 명품 업계 큰손이죠. 그런데 중국 경제가 예상보다 잘 안 살아나고 있어요. 한때 10%는 우습게 넘겼는데, 지금은 5% 달성도 허덕허덕 합니다. 근데 반대로 말하면 중국에서 온라인 명품 소비가 많았으면 파페치가 매물로 나오지도 않았겠죠.

쿠팡이 기존 생활용품 팔던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명품 시장에 뛰어든 것은 굉장히 큰 도전이지만요. 기존에 보여줬던 혁신을 이어간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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