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등 수많은 연예인들 주류 시장에 출사표
일각에선 음주 문화 조장 우려도 나와
걸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 츄(CHUU)는 지난해 말 미니 앨범 ‘하울’을 발매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의 앨범은 빌보드가 선정한 ‘2023년 최고의 K팝’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국내외에서 히트를 쳤다. 이런 츄의 급성장한 인기 때문일까. 조만간 주류 시장에도 그의 이름을 딴 ‘술’이 등장할 예정이다.
한경비즈니스 취재에 따르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츄와 협력해 만든 하이볼을 1월 말에 선보인다. 오직 CU 편의점에서만 판매하는 이 하이볼의 이름은 ‘하이츄’로 확정됐다. 디자인과 광고 등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제품을 판매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주류업계에 ‘연예인 술’ 열풍이 불고 있다. 술의 맛과 제품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거나 아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품을 선보이며 주류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유명 스타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를 반긴다. 이른바 ‘연예인 술’이 출시될 때마다 화제를 불러오는 만큼 침체된 주류 시장에 전반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가수 박재범이 론칭한 ‘원소주’의 대박으로 오랜 기간 침체됐던 전통주 시장이 지난해 모처럼 활기를 띠기도 했다.
원소주를 맛본 뒤 다른 전통주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는 소비자들이 나타나며 시장 자체가 성장한 것이다. 참고로 원소주는 100% 원주쌀로 만든 전통주다.
다만 술 자체가 건강에 해를 끼치는 만큼 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연예인들의 유명세를 앞세운 주류 제품 출시가 술에 대한 경각심을 낮추고 음주 문화를 조장한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CU가 연예인과 함께 주류 제품을 출시한 것은 츄가 처음이 아니다. 2022년부터 활발하게 ‘연예인표 소주’를 발매하며 화제를 모았다.
출시 때마다 화제 일으켜배우 김보성과 증류식 소주 ‘의리남’을 시작으로 래퍼 윤미래의 이름을 딴 ‘미래 소주’, 가수 겸 배우 김민종의 히트곡을 모티브로 만든 ‘하늘아래서’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층 사이에서 하이볼이 유행인 추세를 반영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츄와 힘을 합쳐 하이볼을 내놓게 됐다는 설명이다.
CU가 만든 ‘연예인표 소주’는 매번 제품 출시 때마다 위트 넘치는 제품명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맛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며 별다른 광고 없이도 큰 화제를 모았다. CU도 이 부분을 노렸다.
CU 관계자는 “주류 광고의 경우 보통 스타를 모델로 내세워야 해 큰돈이 들어가는데 직접 스타와 함께 주류를 만드니 광고 및 마케팅에 드는 큰돈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주류 제품 출시를 앞둔 스타는 츄뿐만이 아니다. 가수 성시경도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직접 개발한 막걸리를 통해서다.
그는 지난해 말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내년에 내 이름을 건 술을 내놓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농담 삼아 던진 말이 아니었다. 올해 들어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 성시경이 만들었다는 막걸리 시제품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제품 출시가 임박했음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부터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과 함께 막걸리 개발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신평양조장은 1933년부터 문을 연 이래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양조장이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이곳에서 만든 막걸리를 만찬주로 사용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2014년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일 만찬 자리에도 이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져 화제를 모았다. 이건희 회장 생일 만찬에 와인 이외에 술이 등장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00만 이상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하며 소비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성시경과 제품력을 인정받은 양조장이 힘을 합쳐 제품을 내놓는 만큼 벌써부터 많은 애주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 제품의 수량을 확보해놓기 위해 성시경 측과 접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예인이면 자제해야” 비판도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원소주로 인해 전통주 시장이 활기를 찾은 것처럼 막걸리 업계에서는 이번 제품을 통해 ‘제2의 막걸리 붐’이 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 주류 시장에 출사표를 던져 올해 서서히 성과가 나길 기다리고 있는 연예인들도 있다. 수제맥주 업체 ‘부루구루’는 작년 12월 배우 이엘, 그리고 걸그룹 ‘티아라’ 출신 배우 효민과 함께 주류 제품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이 제품들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초반 흥행에는 성공한 모습이다. 이엘과 선보인 ‘이엘코냑하이볼’과 ‘이엘프렌치커넥션’ 등 하이볼 2종은 출시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40만 캔을 돌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효민과 함께 출시한 일본식 칵테일 ‘효민사와’도 현재까지 30만 캔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 중이기도 하다. 두 제품 모두 단순히 연예인 이름을 빌리는 것을 넘어서 기획·제조 단계부터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이엘코냑하이볼’의 경우 이엘이 평소 집에서 즐겨 마시던 하이볼 레시피를 고스란히 반영했으며 효민 또한 ‘효민사와’의 레시피 개발 전 과정에 참여했다.
영화 ‘신세계’로 유명한 배우 박성웅은 위스키 사업에 뛰어들었다. 싱글몰트 위스키인 버지니아 C&C를 지난해 말 론칭했다. 위스키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이번에 론칭한 위스키를 생산하는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증류소에 직접 투자까지 했다. 그만큼 위스키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연예인들의 술 사업은 초반 화제성은 높지만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진단이다. 여태까지 주류 출시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사례를 꼽자면 원소주를 출시한 박재범 정도에 불과하다.
예컨대 CU가 연이어 내놓은 ‘연예인표 소주’의 흥행도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김보성·윤미래·김민종과 함께 만든 소주 제품들은 ‘반짝 인기’에 그치며 현재는 생산이 중단됐다.
혼성 그룹 ‘어반자카파’ 멤버인 가수 박용인도 버추어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맥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자신의 이미지만 깎였다. 그는 일명 ‘버터맥주’라고 불리는 ‘뵈르(BEURRE·버터)’ 맥주를 기획해 판매했다.
역시나 출발은 좋았다. 출시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 20만 캔이 모두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맥주에 버터를 넣지 않았으면서 프랑스어로 버터를 의미하는 ‘뵈르’를 제품명에 사용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비난이 일었다.
연예인들이 직접 나서서 술을 내놓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동경을 느끼는 대상을 따라 하려고 하는 ‘모방 심리’를 갖고 있다”며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예인들이 직접 나서 술을 만들고 광고하는 것은 자칫 술에 대한 경각심 완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주류 출시뿐 아니라 최근 연예인들의 ‘술방’도 인기인데 이 부분 또한 보는 사람들에게 음주를 조장할 수 있어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최근 주류 제품 출시와 함께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트렌드가 술방 개설이다. 개그맨 신동엽, 가수 성시경, 이영지 등의 술방은 새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조회수가 수십만을 거뜬히 넘길 만큼 인기다.
스타들이 술을 마시는 방송을 보는 많은 시청자들 역시 자연히 음주 욕구가 커지게 된다. 굳이 안 마셔도 될 술을 마시도록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