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증시, 中 제치고 3년 반 만에 亞 1위 탈환
엔저·주주환원책에 외국인 투자자 '바이 재팬'
주식투자 안 하는 日국민 변심할까
일본 증시가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 1위로 올라섰다. 11일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전체 시가총액(달러화 기준)이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도쿄가 상하이를 제친 건 3년 반 만이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주가 부양책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몰렸고, 저축에만 몰두하던 일본 국민의 자산도 증시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증시는 연일 새로운 숫자를 갈아치우고 있다. 11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은 917조엔(약 8307조원)으로 전일대비 1.5% 늘었다. 달러화 환산 시 6조 달러를 훌쩍 넘는 수치다.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12일 닷새 연속 상승하며 버블경제 붕괴 이후 최고치를 다시 썼다.
반면 11일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은 8200조원에 그쳤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리막을 걷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2일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인 2881.98 로 떨어진 상태다. 다만 상하이와 홍콩·선전거래소를 더한 전체 중국 증시 규모는 아직 일본을 앞선다.
일본과 중국 증시 희비를 가른 건 해외 투자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국 상장 기업에 자본 효율 개선과 주주 친화 정책을 요구해왔다.
도쿄 증권 거래소는 지난해 두 차례나 상장 기업들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돌 경우 주가를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하라”고 주문했다. 거래소가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라”고 기업에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증시 개혁에 나서자 지난해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 3조1215억엔어치를 순매수했다. 중국 떠난 자금 일본에 몰려
이는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다. 주주 환원 정책만 호재는 아니었다. 역대급 엔저로 일본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열렸고, 엔화 약세로 일본 기업의 실적이 개선됐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자 워렌 버핏까지 일본 주식 투자를 늘리자 매수세가 강하게 늘었다.
중국 증시에 먹구름이 끼자, 이에 대한 반사이익도 얻었다. 중국 정부가 2022년부터 플랫폼 기업 등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지난해 비구이위안(에버그란데) 등 부동산 기업이 잇달아 무너지면서 중국 경제는 난항에 빠졌다. 외국 자금은 중국 시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290억달러(약 38조원)에 가까운 중국 주식을 매도했다. 이는 일본 증시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 '1조 8000경' 저축액 움직일까일본 증시를 움직일 더 큰 힘은 아직 남아있다. 2000조엔(1경8000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가계금융이다. ‘저축’에 쏠려있는 일본의 가계금융이 증시로 유입되면, 버블을 능가할 만큼의 일본 증시 전성기가 찾아올 수 있다.
현재 일본의 가계금융은 현금 예금이 55%를 차지한다. 6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가 현금을 가장 많이 들고 있는데, 버블을 경험한 세대라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현금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식'보다 5배 많았다. 국가별로 보면 일본의 ‘저축액’은 독일과 인도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가계저축을 투자로 유도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수년간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례 없는 유인책을 마련했다. 소액투자자가 주식 거래로 얻는 이익에 ‘평생’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1월부터 일본 정부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대폭 확대했다. 올해부터 비과세 연간 투자 상한액이 인상되고 기간도 무기한으로 늘어났다. 연간 납입한도는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누적 납입한도를 600만엔에서 1800만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이 같은 유인책으로 일본의 가계금융자금 중 2%만 움직이더라도 1500억달러(약 197조원)의 자금이 주식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즈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입으로도 도쿄의 토픽스 지수는 25% 이상 상승했다”며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1980년대 주식 거품 붕괴 이후 (일본 국민에게) 굳어진 ‘주식 혐오감’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