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각국 정부 국채 발행 늘려
과도한 채무, 금리·물가 올려 경기회복에 복병 될 것
올해는 전 세계 76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실시되는 ‘슈퍼 선거의 해’가 될 전망이다. 각국이 앞다투어 선심성 지출에 매몰되면서 재정적자와 금융시장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9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국제금융협회(IIF) 자료를 인용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코로나19 초기였던 2021년을 제외하면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도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적극적인 국채 발행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3조 달러를 발행했던 전년 대비 30%나 증가한 약 4조 달러(약 5260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 중 미 연준의 매입량과 기존 부채 상환액을 제외한 순발행액이 1조6000억 달러(약 2106조원)로 역대 두 번째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주자 모두 감세를 비롯한 경기부양책을 내세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
영국의 경우 순발행액 기준 지난 10년간 평균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로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재무장관 출신 리시 수낵 총리마저 선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최근 감세정책을 내세워 지지층을 넓히려 하고 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20개국(유로존)의 국채 순발행량도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신흥국들도 미 연준의 금리인하 기조에 편승해 달러화나 유로화 채권 발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지방정부와 비영리 공공기관을 더한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3.5%로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 통화국 13개 국가 중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2017년 부채 비율은 40.1%였으나 2019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해 2028년에는 독보적 1위인 싱가포르에 이어 2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측된다. 비금융공기업 부채까지 고려한 공공부문 부채(D3)는 GDP 대비 73.5%까지 육박하고 있다. 공무원·군인연금 관련 부채까지 포함한 국가부채(D4) 비율은 2018년에 106%를 넘어섰고 올해에 130%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과 영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각각 126.9%, 105.9%이지만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의 국가채무비율이 갖는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비기축통화국은 재정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국채를 매입해 줄 기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로 복지 관련 지출이 꾸준히 늘어날 것이므로, 단기간에 정부부채 관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국가가 부채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에 비해 한국은 재정건전화 타이밍을 놓친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절실하게 부채관리 계획을 강구해야 한다.
과도한 국채 발행은 채권 가격을 낮춰 금리인상을 유발한다. 풀려나온 돈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고 경기 회복에 복병이 될지도 모른다. 경기대응력이 약해지면 이는 결국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가계도 이자 비용 부담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게 된다. 한국은 2023년 3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과 기업부채비율이 각각 101.4%, 125.6%로 이미 빚에 허덕이는 상태이다. 추가적인 이자 부담으로 인해 부채 상환능력이 악화돼 경기침체로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저성장 현상이 고착화할 수 있다. 모든 경제 주체가 부채관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실천하는 고통 분담이 시작돼야 한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