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역주행…한국 부채 ‘골든타임’ 코앞에(下)[2024 부채리포트③]
입력 2024-01-22 07:10:01
수정 2024-01-22 07:10:01
부채 Q&A(下)
[스페셜리포트 : 2024 부채 리포트③]K만 달면 자랑스러운 시대다. K팝을 시작으로 문화와 경제까지 K의 주가는 고공상승 중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에도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있다. 바로 ‘부채’다.
떴다 하면 사상 최대다. 국내 기록 경신은 예사가 됐고, 이제는 세계에서도 정상이다. 가계부채만 우뚝 선 게 아니라 최근에는 기업부채 증가 속도까지 1, 2등을 넘보고 있다. 가계와 기업을 떠받치는 정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르게 정부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며 부채 다이어트를 호소하고 있다. 빚의 그늘에 잠식되기 전, 바로 지금이 부채 영수증을 들여다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숫자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Q. ‘1049조 주담대’는 위험한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제도다. 집 담보로 큰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재테크 수단 역할을 한 지 오래다. ‘영끌’, ‘빚투’도 이 주담대에서 나왔다.
2023년 9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875조6000억원이다. 가계부채(가계신용)에서 주담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55.93%에 달하다 보니 주담대가 곧 가계부채의 뇌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담대의 한도를 정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집값 대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을 뜻하는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내 소득에서 매년 대출원리금을 갚는 비용의 상한선을 뜻하는 총부채상환 비율(DTI),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빚을 기준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 비율(DSR)이다.
DSR은 주담대 원리금뿐 아니라 학자금 대출, 마이너스 대출, 자동차 할부, 전세자금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의 원리금까지 다 합한 것을 기준으로 연봉 대비 일정 비율까지 대출을 해준다. 진짜 ‘영끌’이다. 고금리 기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대출 방식이다.
금리 상승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DSR 방식은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은 금리 상승에 따라 대출 증가율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DSR은 오히려 지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DSR은 2022년 3분기 기준으로 호주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LTV 규제로 주택구입에 모자라는 돈을 신용대출로 끌어 사용한 탓이다.
더 큰 문제는 대출 상환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고액에 비해 만기가 짧은 데다 대출금리가 시중금리에 연동되는 변동금리식 대출이 절반가량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취급액 기준 주담대의 43.3%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어 이자 부담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은 측은 지난 1월 11일 8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올 상반기 내 금리인하는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고금리 기조에선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한 대출자들이 집을 무더기로 내다 팔 가능성이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경매에 나온 아파트 등 부동산 건수가 연초(1월) 대비 60% 넘게 급증했다. 무려 1만688건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경매로 나온 것이다. 이는 2014년 10월(1만849건) 이후 9년 만에 역대 최대치다. 석 달 이상 원리금 상환을 연체한 주택매물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한 ‘영끌족’들이 경매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주담대는 내집 마련을 위한 자양분이다. 좋은 빚일 수 있지만 상환능력을 벗어난 주담대는 나쁜 빚이다. 경기침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그랬다. ‘주택가격 폭락 → 부동산 거품 붕괴 → 가계의 파산 → 경제의 전반적인 대침체’의 시작은 부동산 빚이었다.
전문가들은 대출을 포함한 부채의 적정성은 20% 이하일 경우 건전, 40% 이하는 보통, 40% 초과일 경우 위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신의 부채 적정성은 얼마인가.
물론 개인이 가계부채를 관리할 한계선은 이미 지났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서도 정부의 건전성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영일 서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30일 열린 한국금융학회 특별정책 심포지엄에 낸 논문을 통해 “LTV 규제로 인해 주택구입에 신용대출을 동원한 차주의 경우 이자부담이 더 크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LTV 규제보다는 DSR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해 대출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때 DSR은 차주의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가격 안정을 위해 필요에 따라 느슨하게 적용되는 사례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DSR 규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Q. 누가 가장 위험할까
2030세대와 자영업자다. 모두 상환능력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2030세대 가구주의 자산은 전년보다 줄었다. 그 와중에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한국은행의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지난해 3월 기준)에 따르면 3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보유액은 올해 3월 기준 평균 3억3615만원으로 1년 전(3억6333만원)보다 7.5% 감소했다. 2030 가구주의 자산 감소폭은 40대(-5.3%), 50대(-5.9%), 60세 이상(+0.9%) 등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자산이 줄어들자 부채비율은 높아졌다.
30대 이하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29.6%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올랐다. 자산의 30%가량이 빚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다른 연령대의 부채비율은 40대(22.3%), 50대(17.7%), 60대(11.3%) 순이었고, 모든 연령대 평균은 17.4%였다. 부채비율이 늘어나면 이자를 갚느라 소비가 줄고 부채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나이를 막론하고 빚으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자영업자대출 연체율은 1.24%로 집계됐다. 2015년 3분기(1.39%)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체율이 오르면서 대출 규모도 늘었다. 전체 3분기 말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2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 증가했다.
돌려막기도 버거울 정도다. 대출을 3개 이상 받은 다중채무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77만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규모다. 코로나가 터지고 대출로 버텨온 이들이 금리인상에 원 펀치를, 원금 상환 유예가 끝나며 어퍼컷을 맞은 셈이다.
정부도 자영업자의 위기를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금융권이 지난 1월 15일 발표한 신용사면 조치의 핵심은 저신용자가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번 신용사면 조치로 약 25만 명이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863점)를 넘게 돼 1금융권인 은행 대환대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의 자영업자 차주들의 숨통은 트이나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문제의 핵심을 간파한 대책도 아니다. 2021년에도 코로나 기간 발생한 연체에 대해 신용사면이 단행됐다. 약 230만 명이 수혜를 봤다. 그러나 당시 대출 수요는 더 늘었다. 2022년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이번 신용사면으로 자영업자의 한숨을 돌리는 대신 선의의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용 사면으로 은행권의 부담이 커지면 은행은 결국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한도 줄이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으로선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반 악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핵심을 신용 점수로 하는 접근 방식부터 문제”라며 “현행 신용회복제도 내에서 대출 만기 연장이나 폐업 지원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강구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윤소희·임나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