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입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지난해 11월 그의 개인 블로그인 ‘게이츠 노트’에 남긴 글의 제목이다. 그는 “5년 내 AI 에이전트로 인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인류에게 열릴 것이다”고 썼다. AI가 사람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업무를 대신해주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 진정한 AI 시대의 출발점
AI 에이전트란 ‘AI 개인 비서’를 일컫는다. 개인의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설명 어딘가 익숙하다. 지금껏 수많은 빅테크 업체들이 ‘시리’나 ‘알렉사’ 같은 AI 음성인식 서비스나 AI 챗봇 등을 출시할 때마다 써왔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가 말한 ‘AI 에이전트’는 기존의 AI 비서들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빌 게이츠는 그의 블로그에 이렇게 설명한다.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 작업할 때마다 다른 앱을 불러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용자는 그저 컴퓨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 모든 작업은 컴퓨터가 알아서 한다. 컴퓨터는 사용자의 삶의 패턴이나 기호 등 이미 많은 것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사용자에 대한 학습 정보를 참고해 사용자의 선호도나 필요에 맞춰 자신이 알아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사용자에게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기억하고 맞춰주는 친한 친구나 개인 비서를 두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이 컴퓨터를 활용해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AI 에이전트는 컴퓨터가 인간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여행지’와 같은 특정 정보를 AI에 입력하고 요청하기 전에 AI가 먼저 ‘능동적’으로 사용자에게 여행과 관련한 다양한 제안을 건네는 것이 가능하다.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해 예산에 맞는 호텔을 찾아 추천하고 과거 여행 패턴 등을 기억해 맞춤화된 여행 계획을 짜주기도 한다. 어떤 호텔에 묵을지 결정한 다음 AI 에이전트에게 알려주면 그 이후는 AI 에이전트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준다. 호텔을 예약하고 결제하는 것은 물론 알레르기 등을 감안해 특별한 식단을 부탁해 놓는 등의 세심한 관리를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불붙은 빅테크들의 AI 에이전트 경쟁
이미 빅테크들의 AI 에이전트 경쟁은 시작됐다. 미국 테크 전문 매체인 디인포메이션은 지난 2월 7일 챗GPT의 주역인 오픈AI가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오픈AI는 현재 업무 자동화에 초점을 둔 AI 에이전트와 여행 일정 짜기 등 웹 기반 작업들을 다루는 AI 에이전트 2개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 중심 AI 에이전트의 경우 문서에 있는 데이터를 엑셀로 이동하거나 자동으로 비용 보고서를 채워 회계 소프트웨어에 입력하는 등 복잡한 작업들을 ‘자동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픈AI는 2월 19일 블로그를 통해 “챗GPT가 대화 속 특정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의 챗GPT는 한 대화 안에서의 맥락에 대해서만 기억했다. 이와 비교해 오픈AI가 밝힌 ‘챗GPT의 기억력’ 기능이 높아진다면 AI가 특정 사용자와 나눴던 대화 정보를 장기간 기억하고 학습한 뒤 이를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AI가 사용자의 취향과 정보를 반영하고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작용하는 ‘진정한 의미의 AI 에이전트’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구글과 메타도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다. 구글은 지난해 12월 제미나이 앱을 스마트폰에 탑재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제미나이’를 호출해 명령하면 이를 듣고 바로 실행해준다. CNBC 등 외신은 구글의 생성형 AI 모델인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개인화된 AI 에이전트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구글이 ‘프로젝트 엘만(Project Ellmann)’이라는 이름이 붙은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사용자의 과거 사진, 검색 이력 등을 학습해 그에 맞는 ‘답변’을 찾아준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도시를 알려달라고 하면 AI가 그 답을 찾아 요약해준다.
사용자가 찍은 사진을 본 뒤 사용자의 식습관을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외에 사용자의 검색 이력, 사진 등을 기반으로 취미나 관심사, 즐겨찾는 웹사이트, 레스토랑 등을 반영해 맞춤화된 정보를 추천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또한 새로운 AI 에이전트 모델을 개발 중임을 알렸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어뎁트, 루다 등 점점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AI 에이전트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바꿔놓을 사무실&교실 풍경
빌 게이츠는 “건강관리, 교육, 업무 등 생산성,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AI 에이전트로 인해 가장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이는 공간은 ‘사무실’이다. 미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생성형 AI를 접목한 ‘코파일럿’을 선보였다. 구글도 지난해 기존의 AI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에 생성형 AI 바드를 결합한 ‘어시스턴트 위드 바드를 선보였다.
비즈니스 제안서 작성이 필요할 경우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자료조사는 물론 ‘서론-본론-결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초안을 작성해 준다. 이미 작성한 문서를 검토할 때도 유용하다. 불필요한 내용의 삭제는 물론 부족한 내용을 알아서 추가해 주기도 한다.
엑셀 등의 작업에서 필요한 데이터분석은 물론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래프 작업 등도 척척이다. 기존의 이메일 내용들을 간단히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은 물론 대상자에 맞게 초안을 작성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비즈니스와 관련한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 AI 에이전트가 사업계획서 작성은 물론 프레젠테이션 작성과 준비, 제품의 이미지 생성까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와 같은 미래를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AI는 칸 아카데미에서 제작한 생성형 AI 교육 서비스인 ‘칸미고’다. 사용자의 질문에 즉답을 내놓는 챗GPT와 비교해 칸미고는 사용자의 ‘학습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마치 교사나 가이드의 역할을 하는 데 집중한다.
보다 정교한 대화를 통해 사용자가 그 내용을 익히고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학생에게 “스스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제 풀이 과정을 생각해 볼 것”을 먼저 제안하는 식이다.
사용자가 문제풀이에 막히는 부분에서는 ‘문제풀이 공식과 관련된 힌트’를 제공하고 학습의욕을 북돋는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분야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마인크래프트와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AI 에이전트라면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도형의 부피와 면적을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가사를 통해 스토리텔링에 대해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픽과 사운드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텍스트 기반의 학습보다 훨씬 풍부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봐야 할 TV 프로그램이나 책을 고르고, 게임을 즐기는 데도 AI 에이전트가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지금도 이미 넷플릭스 등은 AI를 활용해 시청자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을 추천해준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추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행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까지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구매하려고 한다면 AI 에이전트가 관련 제품들의 모든 리뷰를 읽고 확인한 뒤 이를 요약해 추천해주는 것이다.
건강관리 분야 또한 AI 에이전트로 인해 가장 큰 혁신이 기대되는 분야다. 이미 이 분야에서 AI의 활약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아브릿지 뉘앙스와 같은 AI 서비스 등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중요한 부분을 오디오로 캡처한 뒤 메모로 작성해 남겨준다. 의사는 다음 진료를 위해 이 메모를 참고할 수 있다.
글래스 헬스와 같은 AI 서비스는 환자의 증상과 상태를 요약 분석하고 의사에게 고려할 만한 진단을 추천해주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활성화된다면 환자를 진료하는 데 AI 에이전트가 환자 진료를 돕는 것은 물론 환자에게 건강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건네고 치료가 필요할지 등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AI 에이전트 시대를 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가 중요할 수 있다. AI 규제와 관련한 논의도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AI가 ‘만능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AI가 바꿔놓을 미래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워지고 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