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家 VS 장家, 고려아연 주총서 표싸움…흔들리는 '75년 동업'

영풍 "배당금 낮춰 주주가치 훼손"
고려아연 "주주환원 96% 내놓으라니" 발끈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고려아연·영풍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이 고려아연을 놓고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3월 19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영풍이 고려아연 주총 안건으로 상정된 배당결의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표 대결을 예고한 가운데 고려아연이 영풍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한 지붕 두 가족' 사상 첫 표 대결…주총 앞두고 신경전 가열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의 결산 배당을 결정했다. 중간배당 1만원을 합하면 1만5000원으로, 전년(2만원)과 비교하면 5000원 줄어든다.

이와 관련해 영풍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이익잉여금이 약 7조3000억원으로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배당금을 줄인다면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회사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돼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풍은 "작년(2022년)과 같은 수준의 이익배당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통주 1주당 1만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수정동의 안건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배당결의안에 대해 "2023년 기말배당 5000원에 더해 중간배당 1만원과 1000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율은 76.3%로 지난해(50.9%)에 비해서도 훨씬 높아진 상황"이라며 "환원액만 보더라도 2022년 3979억원에서 2023년 4027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대로 배당금을 높이면 주주환원율이 96%에 육박하는데, 기업이 모든 이익금을 투자나 기업환경 개선에 할애하지 않고 주주 환원에 쓰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영풍이 자사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매년 약 172억 수준이며, 영풍이 자사주 소각을 한적이 없기에 영풍의 총주주환원율은 5년 평균 약 10%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특히 가장 최근인 2022년 주주환원율은 4.68%에 불과하다"며 "결국 주주환원율이 5%도 안 되는 영풍이 고려아연에게는 주주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96%에 육박하는 주주환원율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 25.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영풍이 최근 5년간 고려아연으로부터 수령한 배당금 누적액은 3576억원이다. 장 고문 측은 고려아연이 배당금을 늘려야 매년 1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려아연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최윤범 회장, 현대차·한화 등 우군 끌어들여 지분율 역전

75년 동업 관계를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이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이게 된 배경에는 두 집안의 지분 경쟁이 있다.

고려아연은 재계 30위 영풍그룹의 주력사다. 영풍그룹은 재계에서 유일한 ‘한 지붕 두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자가 공동 창업해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3대째 공동 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장 씨 일가는 (주)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을, 최 씨 일가는 세계 1위 아연 제련업체 고려아연을 포함한 비전자 계열을 맡고 있다.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는 3세 경영인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사업 등 신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이견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2022년부터 공격적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늘리면서 장 고문 측도 지분 희석에 대응해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며 대주주 간 지분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지분율은 장 씨 일가가 더 높았지만 매출은 최 씨 일가가 맡은 고려아연이 압도적으로 높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영업이익의 80%이상을 내는 알짜 계열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고려아연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매출 9조7045억원, 영업이익을 6591억원을 올렸다.

최 회장이 지난해 현대차, 한화의 외국법인 등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지분율을 높이면서 최근 양측의 지분율이 역전됐다. 지난해 말 기준 최 씨 일가가 약 33%, 장 씨 일가가 32% 수준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양측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약 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