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독박육아·가사·비싼 집값 부담에 출산 기피"

BBC 한국 저출산 배경 집중 조명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는 등 2023년 출생아가 최저를 기록한 2월 28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 백화점 아동복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의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추락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두고 해외에선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유럽의 상황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영국 공영 방송 BBC는 2월 28일(현지 시간) 한국 통계청의 출산율 발표에 맞춰 '한국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필요는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지난 1년간 전국을 다니며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고 취재 경위를 설명했다.

30세 TV 프로듀서 예진씨는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혼자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외곽에 사는 예진씨는 "저녁 8시에 퇴근하니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기혼자인 어린이 영어학원 강사 39세 스텔라씨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일하고 즐기다 보니 너무 바빴고 이젠 자신들의 생활 방식으론 출산·육아가 불가능함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며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두 명이 퇴사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느냐'는 말에 그는 눈빛으로 답을 대신하며 "설거지를 시키면 항상 조금씩 빠뜨린다.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집값이 너무 비싸 감당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서울에서 점점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했다.

BBC는 주거비는 세계 공통 문제이지만 사교육비는 한국의 독특한 점이라고 평가했다.

대전에 사는 웹툰 작가 천정연 씨는 출산 후에 곧 사회,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됐고 남편은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척 화가 났다"며 주변을 보니 다들 우울해서 사회적 현상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BBC는 이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간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을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BBC는 평가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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