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몇 년 해도 잘 안되는 사업은 매각하겠다.”
올초 신동빈 회장은 신성장 영역으로 사업 교체를 추진하고 부진한 사업은 매각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간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지만 방침을 바꿨다며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신 회장의 ‘폭탄 선언’ 이후 롯데그룹의 사업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롯데는 최근 글로벌 3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함께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사업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코리아세븐의 현금인출기(ATM) 사업부(옛 롯데피에스넷)의 분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LC타이탄(TITAN)도 매각설에 휩싸였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석유화학 기업과 대형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LC타이탄 인수 후보 물색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롯데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는 LC타이탄 보유지분 전량(74.7%)이다.
1.5조에 인수했는데…시총 반토막
LC타이탄은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생산해왔다. 중국의 기초화학소재 자급화와 수요 부진의 영향으로 2022년 2분기부터 적자에 빠져 지난해 61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7일 “종속회사인 LC타이탄에 대해 다양한 전략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 공시했다.
LC타이탄은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업체 타이탄케미컬 지분 100%를 1조5000억원에 인수한 곳으로 7년 만에 기업가치가 4조원대로 불어나며 신 회장의 대표적인 M&A 성공 사례로 꼽혀왔다.
말레이시아 증시에 상장된 LC타이탄은 2010년대 중후반까지 매년 3000억~5000억원가량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였지만 업황 침체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최근 시가총액이 7400억원대가 됐다. 인수가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사업 개편 작업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석유화학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원료의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수요 위축과 공급과잉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와 점유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이 석유화학제품 자급화를 추진하며 한때 50%에 달했던 국내 석유화학 업체의 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해 30%대로 급감했다.
中 물량 공세 못 버텨…범용제품 공장 매각
롯데케미칼은 중국에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모두 매각하고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지난해 6월 롯데삼강케미컬 지분을 협력사에 전부 매각한 데 이어 9월에는 롯데케미칼자싱의 지분도 현지 협력사에 모두 매각했다.
롯데케미칼은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분리막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플렌(PP) 및 태양광 에틸렌초산비닐(EVA)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올해는 파키스탄의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자회사까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시황 악화로 사겠다는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워 매각에 난항이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에 따른 범용 석유화학제품 수익성 하락으로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가 쌓이면서 국내 기초화학 업체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 1위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 역시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지분 매각에 나선 데 이어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M은 가전에 들어가는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에 쓰이는 원료다. 중국 기업들의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 맞물리면서 큰 폭의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SM은 중국 기업들의 증설로 가격이 폭락한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LG화학도 NCC 매각·SM공장 가동 중단 검토
올해도 석유화학 전망은 밝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4년 산업기상도 전망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석유화학은 중국 중심의 공급과잉 지속과 경제성장률 둔화 등 영향으로 ‘흐림’으로 예보됐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범용제품 위주 대중국 수출 중심 전략은 중국의 내재화로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에 기대 승승장구했던 석유화학업계는 중국의 자급률 확대와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변화로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청정경쟁법(CCA) 등 글로벌 환경규제까지 덮치며 한국의 유럽과 미국 내 수출은 2030년 30~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030년 한국의 석유화학 수출과 생산은 2023년 대비 30%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업계는 지금이 사업 재편의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미래경쟁력을 확보하고 환경규제 대응을 위해 고부가가치 기능성 수지 경쟁력 강화, 폐플라스틱 재활용 고도화, 분해 가능한 원료 전환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사업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인 스페셜티와 그린소재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고부가 제품을 확대하고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해 스페셜티 소재 매출 비중을 60%까지 확대하고, 2022년 55%인 범용 석유화학 매출 비중을 2030년 40%로 낮출 계획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이 낙점한 신성장사업들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실적 개선 시점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3월 자회사로 편입, 구원투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동박 생산 업체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 업황 부진과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 급감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현재 시가총액 1조8000억원 수준으로 인수대금 2조7000억원에서 1조원이나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도 신성장사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신사업이 수익을 내는 효자가 되기까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몇 년 해도 잘 안되는 사업은 매각하겠다.”
올초 신동빈 회장은 신성장 영역으로 사업 교체를 추진하고 부진한 사업은 매각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간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지만 방침을 바꿨다며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신 회장의 ‘폭탄 선언’ 이후 롯데그룹의 사업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롯데는 최근 글로벌 3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함께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사업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코리아세븐의 현금인출기(ATM) 사업부(옛 롯데피에스넷)의 분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LC타이탄(TITAN)도 매각설에 휩싸였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석유화학 기업과 대형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LC타이탄 인수 후보 물색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롯데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는 LC타이탄 보유지분 전량(74.7%)이다.
1.5조에 인수했는데…시총 반토막
LC타이탄은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생산해왔다. 중국의 기초화학소재 자급화와 수요 부진의 영향으로 2022년 2분기부터 적자에 빠져 지난해 61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7일 “종속회사인 LC타이탄에 대해 다양한 전략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 공시했다.
LC타이탄은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업체 타이탄케미컬 지분 100%를 1조5000억원에 인수한 곳으로 7년 만에 기업가치가 4조원대로 불어나며 신 회장의 대표적인 M&A 성공 사례로 꼽혀왔다.
말레이시아 증시에 상장된 LC타이탄은 2010년대 중후반까지 매년 3000억~5000억원가량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였지만 업황 침체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최근 시가총액이 7400억원대가 됐다. 인수가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사업 개편 작업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석유화학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원료의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수요 위축과 공급과잉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와 점유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이 석유화학제품 자급화를 추진하며 한때 50%에 달했던 국내 석유화학 업체의 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해 30%대로 급감했다.
中 물량 공세 못 버텨…범용제품 공장 매각
롯데케미칼은 중국에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모두 매각하고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지난해 6월 롯데삼강케미컬 지분을 협력사에 전부 매각한 데 이어 9월에는 롯데케미칼자싱의 지분도 현지 협력사에 모두 매각했다.
롯데케미칼은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분리막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플렌(PP) 및 태양광 에틸렌초산비닐(EVA)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올해는 파키스탄의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자회사까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시황 악화로 사겠다는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워 매각에 난항이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에 따른 범용 석유화학제품 수익성 하락으로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가 쌓이면서 국내 기초화학 업체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 1위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 역시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지분 매각에 나선 데 이어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M은 가전에 들어가는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에 쓰이는 원료다. 중국 기업들의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 맞물리면서 큰 폭의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SM은 중국 기업들의 증설로 가격이 폭락한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LG화학도 NCC 매각·SM공장 가동 중단 검토
올해도 석유화학 전망은 밝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4년 산업기상도 전망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석유화학은 중국 중심의 공급과잉 지속과 경제성장률 둔화 등 영향으로 ‘흐림’으로 예보됐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범용제품 위주 대중국 수출 중심 전략은 중국의 내재화로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에 기대 승승장구했던 석유화학업계는 중국의 자급률 확대와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변화로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청정경쟁법(CCA) 등 글로벌 환경규제까지 덮치며 한국의 유럽과 미국 내 수출은 2030년 30~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030년 한국의 석유화학 수출과 생산은 2023년 대비 30%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업계는 지금이 사업 재편의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미래경쟁력을 확보하고 환경규제 대응을 위해 고부가가치 기능성 수지 경쟁력 강화, 폐플라스틱 재활용 고도화, 분해 가능한 원료 전환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사업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인 스페셜티와 그린소재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고부가 제품을 확대하고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해 스페셜티 소재 매출 비중을 60%까지 확대하고, 2022년 55%인 범용 석유화학 매출 비중을 2030년 40%로 낮출 계획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이 낙점한 신성장사업들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실적 개선 시점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3월 자회사로 편입, 구원투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동박 생산 업체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 업황 부진과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 급감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현재 시가총액 1조8000억원 수준으로 인수대금 2조7000억원에서 1조원이나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도 신성장사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신사업이 수익을 내는 효자가 되기까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