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을 흔드는 명품’ 더 비싸지는 프리미엄 육아용품 시장[비즈니스 포커스]

수입 유아차 제품 천차만별, 명품 브랜드까지 가세해
저소득층 아기 안 낳아…프리미엄 경쟁 가속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내 명품 키즈매장 모습.

스토케(Stoke)의 디럭스 유모차 ‘익스플로리’가 ‘강남 유모차’라는 명성을 얻으며 육아용품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지 어느새 20여 년. 익스플로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8년 1.2명에 가까웠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까지 떨어졌다. 아가방컴퍼니, 대교, 매일유업 등 육아산업을 대표하던 기업들은 저출산 관련주로 묶여 오르고 내림을 반복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육아용품 시장은 줄곧 성장해왔고, 성장하는 중이다. 신세계백화점의 아동 분야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가 제품군이 많은 수입아동 매출은 더 가파르게 성장했다. 고급을 지향하는 유아차 모델도 다양해졌고 브랜드 간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명품 브랜드도 유아차와 영유아 의류를 내놓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이들 제품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온 가족의 자원이 집중되는 ‘골든 키즈’가 주요 타깃이다. 부모는 물론 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까지 골든 키즈를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그 배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나마 부족한 출생아 수가 중산층, 부유층에 쏠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가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제공하는 지원금도 고가 제품 구입에 대한 망설임을 줄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세 잡은 부가부, 진화한 스토케
부가부 폭스5 제품 모습. 사진=부가부 코리아

스토케의 가격 인하 이후 주춤했던 프리미엄 유아차 가격의 기준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디럭스 모델 200만원’ 전후를 회복했다. 그중 대세로 자리 잡은 브랜드는 네덜란드 ‘부가부(Bugaboo)’다. 부가부의 디럭스 모델인 폭스5의 정가는 211만8500원(그래파이트 섀시 기준)이다. 부가부 유아차는 기능과 디자인에서 두루 국내 소비자들 취향을 충족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중 핸들링 기능과 화사한 캐노피 색감이 강점으로 꼽힌다.

한국이 부가부 아시아 매출 1위를 차지할 만큼 국내 소비자들의 부가부 사랑은 유별나다. 부가부 코리아 매출은 2023년에도 전년 대비 10% 성장했다. 여기에 영국 왕실 유아차로 유명한 ‘실버크로스(Silver Cross)’와 ‘에그(egg)’, 독일 ‘사이벡스(Cybex)’, 네덜란드 ‘줄즈(Joolz)’, 스페인 ‘미마(mima)’ 등이 도전하는 형국이다. 2003년 출시돼 유아차 시장에 양대면, 하이포지션 흐름을 불러온 스토케 익스플로리 역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다.

각 브랜드는 디럭스를 주력으로 밀고 있지만 실제 판매량이 높은 모델은 저렴하고 사용기간도 긴 휴대용 및 절충형 유아차다. 이들 모델은 크기가 큰 디럭스보다 접기와 펴기, 이동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부가부에서도 폭스보다 휴대용 모델인 정가 87만원인 버터플라이 판매량이 더 많다. 올해 2월 진행된 부가부 베이비페어에서 폭스5 매출은 전년 대비 30%, 버터플라이는 100% 증가했다.

이 분야의 전통 강자는 프랑스 브랜드인 ‘베이비젠(BABYZEN)’ 요요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요요는 부가부와 마찬가지로 거친 노면에서도 핸들링이 좋고 접었을 때 기내 반입이 가능할 정도로 가볍고 콤팩트한 유아차로 알려져 있다. 요요는 2021년 스토케에 인수됐다.

2013년 넥슨 지주사 NXC에 인수된 스토케는 기존에 보유한 다양한 제품군에 새로 인수한 기업 모델을 더해 종합 유아용품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1930년대 노르웨이 고급 가구회사로 출발한 스토케의 대표 모델은 유아용 원목 아기의자(하이체어) 트립트랩과 아기침대 슬리피 등이다. 스토케는 2021년 베이비젠뿐 아니라 독일 유명 아기띠 브랜드 ‘리마스(LIMAS)’, 이탈리아 어린이 테이블 브랜드 ‘무카코(MUKAKO)’를 인수했고 2022년에는 덴마크 하이체어 브랜드 ‘에보무브(Evomove)’도 사들였다.

트립트랩은 성인까지 앉을 수 있는 견고함과 높은 사용성으로 ‘돌고 돌아 트립트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의자에 추가로 설치해야 하는 베이비 세트와 트레이(테이블)까지 본사에서 판매하는 정가는 62만원이다. 트립트랩의 명성을 바탕으로 스토케는 지난해 5월 아기의자 노미(에보무브 제품)와 7월 어린이 가구 뮤테이블(무카코 제품)을 출시했다. 입식생활이 보편화된 지금, 하이체어 등 영유아용 가구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경쟁사들도 앞다퉈 아기의자, 침대 등을 내놓고 있다. 부가부 역시 지난해 6월 지라프를 출시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나마 돈 있어야 아기 낳아
트립트랩 글래시어 그린. 사진=스토케

이처럼 각종 제품이 쏟아지지만 몇몇 인기 모델은 당장 살 수 없다. 3월 19일 서울 주요 백화점 매장에 문의한 결과 코로나19 격리 당시 6개월까지 걸렸던 트립트랩 인기 색상은 현재 2~3개월, 부가부 지라프 역시 비슷한 기간이 걸린다. 부가부 유아차 역시 제품 인도에 두 달 정도가 소요된다. 신세계 강남점 내 부가부 직영매장 관계자는 “얼마 전 베이비페어에서 제품이 많이 팔려 대기 기간이 더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가격대가 더 높은 명품 브랜드 영유아 제품도 인기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에 문을 연 ‘베이비 디올’ 매장에선 680만원짜리 유아차를 팔고 있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 ‘잉글레시나(Inglesina)’와 협업해 나온 모델로 국내 정가 133만원 앱티카 모델과 프레임이 같다. ‘펜디 키즈’에서도 잉글레시나와 협업한 유아차 제품을 35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의류 역시 수백만원대에 달한다. 같은 디자인의 성인 제품보다 저렴하지만 한 철 입는 아기 옷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비싸다. 베이비 디올과 펜디 키즈 등 명품 아동 브랜드 원피스는 100만원대, 신발은 70만~80만원대였고 외투로 인기 있는 ‘몽클레르 앙팡’에선 일명 ‘바람막이’가 연령대에 따라 50만~150만원 선이었다. 구매자는 대부분 30대 초중반 아기 부모나 조부모들이다.

영유아용품 시장은 인구구조에 따라 고급화로 나아가는 분위기다. 2022년 계명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이 적은 가구일수록 출산율의 하락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출산한 100가구 중 저소득층 가구가 자치하는 비율은 2011년 11.2%에서 2019년 8.5%로 낮아졌다. 아가방컴퍼니 사업보고서에서도 “태어나는 아이 중 열에 아홉은 중산층 이상에서, 열에 한 명만 저소득층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2020년까지 적자에 시달리던 아가방은 백화점 입점 브랜드 ‘에뜨와’를 중심으로 고급화에 나서는 한편, 온라인 판매를 강화해 2021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일각에선 2022년부터 출생아당 200만원씩 지원되는 ‘첫만남이용권’이 수입 유아차, 카시트 등 고가 육아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올해 첫만남이용권은 둘째 아이에게 300만원이 지급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첫만남이용권이 나오면서 유아용품 브랜드가 가격을 높였다는 소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가 육아용품 전성기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백화점 아동 관련 매출과 고급 브랜드 실적 성장폭은 점차 줄고 있다. 2021년 28.7%에 달했던 신세계백화점 수입아동용품 신장률은 2022년 24.0%, 2023년 15.0%로 감소했다. 한 명품매장 판매 담당자는 “매년 잘나가는 제품이 비슷한데 올해는 불경기 때문인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덜하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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