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감독기능 강화하는 한국부동산원, 또 다른 '갑' 될까 [비즈니스 포커스]

정부 정책 발 맞춰 공사비 검증·정비사업 컨설팅 등 업무 늘어

한국부동산원 본원 전경. 사진=한국부동산원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이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에선 1969년 감정평가 법인으로 출발해 최근 몇 년 새 이름을 바꾸며 부동산 감독기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평가다.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요즘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최대 갈등 요인으로 부상한 ‘공사비 검증’이다. 한국부동산원은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 사태’를 계기로 이 시장에서 이름값을 높이며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2019년 2건에 그쳤던 검증 건수는 지난해 30건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공공기관이 나서 혼탁한 주택시장에 만연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반면, 통상 공사비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공기업이 민간사업을 검증하게 되면 오히려 사업자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이 틈에 권한과 몸집을 키운 한국부동산원이 새로운 ‘갑’으로 부상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정부가 한국부동산을 통해 정책방향대로 주택시장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업무만큼 커진 몸집

한국부동산원은 지금까지 공공기관 중 공사비 검증 업무를 사실상 독점해왔다. 2019년 10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에 따라 LH 및 각 지방공사와 함께 공사비 검증기관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한국부동산원만이 전담 부서(도시정비처 공사비 검증부)를 구성하고 해당 업무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신설된 도정법 제29조 2(공사비 검증 요청 등)에서는 조합원(5분의 1 이상)의 의뢰가 있거나 조합원 의뢰 없이도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경우에는 공사비 증액 비율이 100분의 5 이상이면 공사비를 검증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행정규칙)’에 따른 검증 수수료는 기본 500만원(전체 공사비 100억원 이하 기준)에서 ‘조 단위’ 사업은 수억원대로 높아 질 수 있다.

올해부터는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전국 9곳에 ‘미래도시 지원센터’를 열고 아예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이 컨설팅 업무 중에는 ‘공사비 계약 사전 컨설팅’도 포함된다. 컨설팅 대상은 아직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곳에 한한다.

이는 일명 ‘1·10 대책’이라 불리는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1월 10일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에는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개발, 재건축 추진 요건을 완화하고 공사비 갈등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오는 4월 ‘노후계획도시 정비 특별법’ 시행에 따라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도 재건축 시장에 대거 진입할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은 2018년 정비사업지원기구 업무대행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재건축, 재개발 업무를 늘려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2년부터는 조합의 관리처분계획 타당성 사전검증도 맡고 있다.

업무가 느는 만큼 규모도 커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에 게시된 한국부동산원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8년 약 1500억원이었던 예산 규모는 지난해 2450억원까지 5년 만에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공시가격, 부동산 통계 등 정부 위탁사업뿐 아니라 주택청약과 녹색인증, 재건축·재개발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수수료 수입 등도 동반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 리츠 관리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예산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정부·시장 니즈에 ‘반사효과’ 누려

이를 두고 민간 감정평가업체에 본연의 업무를 뺏긴 한국부동산원이 정부의 필요에 따라 부동산 관련 업무를 확대하면서 생긴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한국감정원법이 개정되면서 당시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 업무를 할 수 없게 됐고 부동산 가격공시와 통계생산 등 부동산정책 지원을 위한 조사 및 관리 기관으로 바뀌게 됐다.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마침 민생과 직결되는 부동산 시장 관련 단속 업무를 맡을 곳이 필요했고 한국부동산원이 적임자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기관과 갈등도 생겼다. 금융결제원이 20년간 담당하던 주택청약 시스템 업무를 국토부가 “그간 청약 부적격자에 대한 점검이 부족했다”는 점을 이유로 한국부동산원에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2018년 국토부가 금융결제원에 청약정보 일체를 넘기라고 요청하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금융결제원지부는 ‘일방적인 조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김학규 당시 한국감정원장은 “금융결제원은 정부가 자료를 요청하면 제때 제공을 안 한다”며 “주택청약업무 이관은 금융결제원이 자초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부동산원은 2020년 청약홈을 열며 금융결제원이 담당하던 주택청약 업무를 넘겨 받았다. 이외에도 주택 실거래 신고 내용 조사,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행위 신고센터 운영 등을 맡으며 그해 사명을 ‘한국감정원’에서 ‘한국부동산원’으로 변경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양 공기업의 주무부처인 기재부와 국토부 간 알력도 작용했던 것으로 안다”며 “국토부 입장에선 타 부처나 총리실 산하 연구기관보다 자기네 말을 잘 듣는 한국부동산원이 부동산 조사, 단속 업무를 맡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통한 주택공급에 힘을 싣고 있는 현 정부 방향대로 공사비 검증 등 해당 분야에 대한 한국부동산원 업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전문가는 “공사비 검증은 세부 내역서에 자재비와 인건비가 타당한지, 쓰인 대로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기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공무원 인력을 함부로 늘릴 수 없는 국토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업무를 부동산원에 넘긴 것이며 아마 부동산원에서도 외주를 맡기지 않으면 일처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공공기관 검증은 실제 건설사나 조합에 공사비를 강제할 만한 법적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급등한 공사비를 둘러싸고 “올릴 수밖에 없다”는 건설사와 “못 믿겠다”는 조합 간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립적인 제3자의 검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수십 년간 많이 개선됐다고 하더라도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이 완전히 없어졌던 것은 아니다”며 “그동안은 조합과 시공사가 소송하면 늘 시공사가 승소했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괜한 의심을 받느니 차라리 비용을 우리가 대서라도 검증받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효성이나 전문성에 의문을 품는 의견도 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건설 표준단가 역시 건설사에 강제되지는 않지만 거기 표기된 자재별 단가만 보더라도 실제 시장 원가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LH 등 공기업도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고 있는 상황이라 건설 현장을 잘 모르는 한국부동산원이 민간 시장의 자재, 인건비 단가나 금융비용 등을 검증에 충분히 반영할지 지켜볼 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둔촌주공 재건축 사례에선 한국부동산원이 공사비 검증 시 공사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 등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에는 세종시 집현동 공동 캠퍼스 건설공사가 발주처인 LH와 시공사인 대보건설 사이 공사비 갈등으로 두 번이나 중단됐다 재개되기도 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현재 공사비 검증부에 기술사, 건축사를 포함한 전문인력 10여 명이 소속돼 의뢰받은 공사비 검증 업무를 하고 있으며 외부업체에도 검토를 의뢰해 교차검증을 하고 있다”며 “둔촌주공의 경우에는 조합과 시공사 간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양측이 명확한 금융비용 관련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 적정 공사비를 책정할 때 해당 부분이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도 올해부터 공사비 검증을 시작한다. 2월에는 신반포22차 재건축과 행당7구역 재개발을 시범사업지로 선정했다. 일각에선 더 이상 서울에서 택지를 개발할 곳이 없는 현실에서 SH가 ‘신사업’을 적극 늘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 김헌동 SH 사장은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을 만큼 아파트 공사비와 분양가격 책정에 민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물가를 잡아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분양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당연히 불편할 것”이라며 “공사비 검증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삐를 당기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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