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세계관의 확장…한류의 정의를 바꿔라[CJ여, K-콘텐츠를 구원하소서②]

CJ ENM, 일회성 성공에 그치지 않기 위해 현지화 주력
글로벌 시장에 K-DNA 성공 모델 이식하고 유통 플랫폼 확대
미드 제작에도 관여…탈(脫)넷플릭스로 로컬OTT 협업 시도

K-콘텐츠의 위기를 돌파할 CJ의 전략은 ‘K’ 세계관의 확장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어도, 아이돌그룹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어도 CJ의 손을 거치면 ‘K-콘텐츠’가 된다. 콘텐츠의 현지화를 통해 한류를 재정의하고 제2, 제3의 ‘K-웨이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특명 ‘새로운 방법’을 찾아라CJ 내부에서도 K-콘텐츠 수요 둔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J팝, 홍콩 영화처럼 한류 역시 일시적 성공담에 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에서 적극적인 M&A, 제3국 진출,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업 등에 나서는 까닭이다.

CJ ENM도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콘텐츠 형태의 변화다. 그간 K-콘텐츠는 ‘한국 중심의 완제품’을 의미했다. 영화, 콘텐츠, K팝 등 모든 분야에서 완성된 콘텐츠를 해외에 진출시켰다. 쉽게 말해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 감독이 만들고 한국인 주인공이 나오는 게 ‘K-영화’였다.

CJ ENM은 콘텐츠의 틀을 깨기로 결정했다. CJ ENM 관계자는 “어떻게 하면 K를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며 “전 세계 어떤 기업도 가보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새로운 영토를 개간하며 한류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지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글로벌 시장에 K-DNA의 성공 모델을 이식시키는 것도 새로운 전략이다. CJ ENM은 한국영화를 글로벌 무대에 선보인 기존 사례와 달리 미국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등 본토에서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는 CJ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K-DNA’ 성공 방정식을 수출하는 것도 핵심 모델로 꼽힌다. 신인 아이돌그룹 ‘제로베이스원’(제베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베원은 지난해 2월부터 엠넷에서 방영한 글로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플래닛’을 통해 탄생한 신인 아이돌그룹으로, 데뷔 한 달 만에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첫 팬콘서트를 개최해 약 1만8000석을 전석 매진시켰다. 3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일본에서 개최한 첫 팬콘서트 역시 약 5만 석이 전석 매진됐다.

제베원은 CJ 수출 사업의 ‘초안’이다. CJ ENM은 IP(지식재산권)를 기획하고 플랫폼-매니지먼트 밸류체인을 통해 음악 사업을 진행하는 ‘MCS(음악 기반 IP 생태계 확장 시스템)’를 통해 글로벌 세계 음악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시장이 일본이다. 일본은 K팝 수출 대상국 순위 부동의 1위다.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일본에 수출된 음반 총 수출액은 1억3293만 달러(약 1685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규모 음반 시장이자 한국보다 5배 이상 크다. 일본에서 성공하면 국내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글로벌 시장 확장도 가능하다.

CJ ENM은 일본에 단순히 프로그램의 판권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CJ ENM의 음악 사업 DNA를 일본에 이식함으로써 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CJ ENM은 이를 ‘KJ팝’(K팝과 J팝을 하나로 합친 단어)으로 설정하고 KJ팝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적극적인 사업 확대를 위해 2019년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요시모토흥업과 합작해 일본에 라포네 엔터테인먼트(LAPONE)를 설립했다.

보이그룹 JO1(제이오원)이 CJ ENM이 만든 첫 번째 KJ팝 아티스트다. 제이오원은 전원 일본인 멤버로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하지만 K팝의 매력요소와 DNA를 탑재했다. JO1의 기획과 제작, 트레이닝, 유통에 K팝 재원과 밸류체인이 동원되는 형태다.

CJ ENM 관계자는 “과감한 투자와 경계를 뛰어넘는 협업, 틀을 깨는 시도를 통해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한국 문화를 공유하고 즐기는 시대를 앞당기겠다”고 강조했다.
콘텐츠는 ‘로컬 OTT 전략’ 테스트또 하나 중요한 것은 탈(脫)넷플릭스다. 최근 국내 콘텐츠 산업은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K-콘텐츠 산업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CJ ENM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OTT 전략을 변경했다. 국내에서는 티빙 우선 전략을 내세우고 해외에서는 다양한 OTT와 계약을 맺고 있다. 유통 채널을 다양화해서 수익 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판단이다. 최근 선보인 ‘웨딩 임파서블’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은 티빙에만 단독 공급된 콘텐츠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웨딩 임파서블’ 모두 CJ ENM의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콘텐츠다.

동시에 해외에서는 다양한 로컬 OTT와 만나고 있다. K-콘텐츠의 인기를 이용해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OTT 플랫폼 라쿠텐 비키, 일본 내 최대 로컬 OTT 플랫폼인 유넥스트, 대만 OTT 플랫폼 프라이데이 비디오 등 로컬 OTT와 제휴를 늘리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웨딩 임파서블’은 공개 첫주 만에 103개 국에서 시청 1위를 차지했다. ‘웨딩 임파서블’은 라쿠텐 비키(미국), 유넥스트(일본), 프라이데이 비디오(대만), 아마존프라임비디오(동남아시아) 등에 제공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티빙에만 단독 공급한다. 넷플릭스에서는 볼 수 없다.

최근 방영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역대 tvN 월화드라마 평균시청률 1위(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수도권, 전국 가구 기준), 티빙에서 서비스된 역대 tvN의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 글로벌 일간 TV쇼 순위에서 K-드라마 최초로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를 기록했다.

또 넷플릭스가 아닌 ‘글로벌 OTT’를 적극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파라마운트플러스(+)와 협업하고 최근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피라미드 게임’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같은 이유다. 티빙과 파라마운트는 ‘욘더’, ‘몸값’, ‘운수오진날’ 등 콘텐츠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는 티빙, 글로벌은 파라마운트+를 통해 유통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제작과 홍보, 마케팅 등 전방위 협력을 펼치고 있다. 콘텐츠 현지화로 수익성 높이는 전략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이는 전략은 ‘콘텐츠 현지화’다. 콘텐츠 현지화가 중요한 이유는 수익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제작비가 높은 미국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미국 방송 시장은 한국의 12배 이상(2021년 기준 한국 19조4000억원, 미국 1896억 달러)이고 드라마 제작비 역시 10배 넘게 많다. 제작비 규모가 월등히 큰 ‘미드’로 성공하면 진정한 의미의 ‘하이 리턴’을 실현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내 성공은 글로벌 엔터산업에서 ‘메이저 제작사’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다. 미드에 단순 제작비를 투자하거나, 제작 스태프가 개인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미국 제작사에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판권만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현지 제작 노하우를 얻게 되고 콘텐츠가 성공할 경우 유명 배우 또는 유명 작가 확보도 쉬워진다.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 유통망을 통해 우리 콘텐츠들을 전 세계에 유통할 수 있다는 점도 현지화의 장점이다.

CJ ENM은 해외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현지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 각본상 부문 노미네이트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 할리우드 내 유망 스튜디오로 입지를 확립한 A24와 CJ ENM의 협업 작품이다. CJ ENM에는 ‘기생충’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작품이다.

한국영화를 글로벌 무대에 선보인 기존 사례와 달리 미국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해 본토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다. CJ ENM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CJ ENM은 감독 발굴도 성공했다. 작은 극장가를 위주로 활동하는 극작가였던 셀린 송 감독을 아카데미의 후보로 만들었다. CJ ENM은 ‘외화’로서 완성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각지의 역량 있는 크리에이터를 직접 발굴하고 이를 통해 할리우드에 함께 진출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미국 콘텐츠 제작사 피프스시즌을 인수한 것도 현지화를 위한 결정이었다. CJ ENM은 2022년 1월 글로벌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고 멀티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 ‘엔데버그룹 홀딩스’ 산하의 피프스시즌을 인수했다. 피프스시즌은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자체 시스템과 폭넓은 크리에이터 네트워크 및 유통망을 확보한 프리미엄 스튜디오다.

CJ ENM은 피프스시즌을 CJ ENM 글로벌 베이스캠프로 삼아 멀티 스튜디오 체제를 완성하고 자체 제작 IP 생태계를 완성하려고 한다.

피프스시즌은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콘텐츠 유통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LA 본사를 비롯해 뉴욕,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롬, 홍콩, 중국 베이징, 콜롬비아 등에 글로벌 거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유럽 일부 지역과 중동, 아프리카까지 영역을 확대 중이다.

CJ ENM 관계자는 “TV시리즈를 비롯해 콘텐츠 유통, 영화·다큐멘터리까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수익성을 강화, 지속적인 성장 구조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베트남에서 개봉한 영화 ‘마이’도 그렇다. 개봉 21일 만에 베트남 역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이 영화는 CJ ENM의 베트남 법인 CJ HK 엔터테인먼트와 베트남 국민 감독이자 배우인 쩐탄이 기획, 투자, 제작까지 협업한 작품이다.

좋은 감독을 발굴하고 함께 윈윈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주효했다. CJ ENM은 2017년 인도네시아 호러 영화의 대가 조코 안와르 감독과 함께 영화 ‘사탄의 숭배자’를 합작, 당해 인도네시아 박스오피스 1위(당시 역대 흥행 5위)의 기록을 달성했다. ‘사탄의 숭배자’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고 해당 제작 역시 조코 안와르 감독이 맡았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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