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포항지진 집단소송 본격 시작…최대 45만명 추가접수 [민경진의 판례 읽기]

“최대 300만원 받는다”
1심 선고 이후 39만여 명 추가 동참

[법알못 판례 읽기]

2019년 4월 경북 포항시 북구 덕산동 육거리에서 열린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항지진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가운데 소송 참여 누적 인원이 45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포항 시민의 약 90%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에 따라 정부와 포스코 등이 배상해야 할 총금액이 1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23년 11월 1차 소송에서 법원이 판결한 시민 1인당 배상금 300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다만 1차 소송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거나 배상금이 축소될 경우 2차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재판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항 시민 90% 소송 참여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포항지진 관련 손해배상청구 1차 소송의 1심 선고 다음 날인 2023년 11월 17일부터 2024년 3월 19일까지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33만 명, 서울중앙지법 6만4000명 등 총 39만4000명이 포항지진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추가 참여했다고 최근 밝혔다.

앞서 1차 소송에는 포항 시민 5만5900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이번 2차 소송 참여 인원을 더하면 포항지진 관련 소송 참여 인원은 총 44만9900명에 이르게 된다. 포항 인구는 지난 2월 기준 49만2663명으로 지진 발생 이후 태어나거나 전입한 인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포항지진을 겪은 시민 대부분이 소송에 합류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가 발표한 참여 인원은 소송 소멸시효일(2024년 3월 20일) 전날까지 집계한 숫자다.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포항지진특별법’은 소송 소멸시효를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포항시 및 지역 변호사 업계는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이 사실상 인위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촉발지진’임을 발표한 날인 2019년 3월 20일을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 잠정 규정했다. 이에 따라 이로부터 5년 후인 2024년 3월 20일을 소멸시효 완성일로 정했다.

포항지진 집단소송의 발단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 일대에 국내 지진 관측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듬해 2월 11일에도 규모 4.6의 여진이 관측됐다. 이로 인해 총 135명의 인명 피해와 약 850억200만원의 재산 피해, 17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한 정부조사연구단은 1년여간 조사를 마치고 2019년 3월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포항시민 4만7850명은 정부와 포스코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포항지열발전부지에서 2017년 11월 포항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소의 시추기가 철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추공에서 진흙 누출

이 사건을 심리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해 11월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들에게 “지진 발생 당시 포항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에게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총배상금은 약 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판결문에 따르면 포항지열발전소를 운영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인공지열 저류층 생성기술(ESG)’ 공법이 포항지진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ESG는 지하 3㎞ 이상 땅을 판 후 그 구멍으로 강한 압력으로 물을 주입하고, 또 다른 구멍 1~2개를 더 뚫어 지열을 끌어올리는 공법이다.

하지만 지반에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진흙이 누출됐고, 물 주입 시 높은 압력 때문에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이 발생하는 등 지진 징후가 발생했다. 이후 일대 지반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포항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피고들은 판결에 불복해 대구고법에 항소했다. 원고 측 역시 손해배상 금액으로 1인당 1000만원을 청구했지만 300만원밖에 인정받지 못하자 항소장을 냈다.

“사상 최대 규모 집단소송”

포항지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낸 소송인과 소송 소멸시효일까지 추가 신청한 소송인에게 1차 소송 1심 판결의 배상액 기준을 적용할 경우 총배상금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는 등 재판 기간이 길어질 경우 매년 수천억원의 가산금도 붙게 된다. 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의장은 “대한민국 역대 최대의 시민소송을 계기로 21세기 시민사회를 열어 가는 건전한 국민 캠페인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며 “기간 내에 소송에 동참하지 못한 시민들을 구제하는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1차 소송의 항소심 결과에 따라 집단소송의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소심에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이 바뀔 수 있고, 1심 판결의 취지가 유지되더라도 배상액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들은 법무법인 태평양, 대륙아주, 지평 등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모 의장은 “포항지진 시민소송에 동참한 서울, 부산, 대구 등 타지 변호사와 포항지역 변호사가 협력하는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 운영함으로써 항소심에서도 승소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멸시효가 공식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항지진특별법에서 말하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안 날’을 두고 2020년 4월 1일 감사원의 지열발전 사업 대상 감사 결과 발표일, 2021년 7월 29일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의 촉발지진 결론 발표일 등 다양한 의견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돋보기]
검찰, 11월 공소시효 만료 앞두고 수사 본격화

포항지진과 관련해 검찰도 최근 피해 사실에 대한 추가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 이후 6년 4개월 만에 형사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항지진 관련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는 오는 11월까지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는 최근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포항지진 피해 사실 등에 대한 수사 촉탁을 의뢰했다. 이 수사는 2019년 3월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의 고소로 시작됐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상해 혐의로 지열발전 사업 주관 업체인 넥스지오의 윤운상 대표, 넥스지오 자회사 포항지열발전 박정훈 대표 등을 고소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넥스지오와 포항지열발전 등 4곳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지열발전소 설립 과정에 참여했던 서울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했다. 이후 수사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해 1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지진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는 지난 2월 정기 인사를 통해 검사 수를 기존 4명에서 총 6명으로 늘렸다.

이어 포항지진의 피해자 수를 2019년 12월 1차 수사 때보다 7배가량 늘어난 170여 명으로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사건에서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피해자를 먼저 특정해야 한다. 검찰이 포항지진 사건의 피해자 범위를 넓힌 것을 두고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편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올해 1월 16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살인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은 정권의 최정점에서 포항지진 발생에 대한 전문가들 경고를 무시하고 지열발전 물 주입을 승인하거나 묵인했다”며 “백 전 장관은 잘못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포항지진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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