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현대차에 남겨진 숙제들 [승계의 시간, 분쟁의 시간]

이재용 회장, 1.63%에 불과한 삼성전자 지분 여전히 문제
정의선 회장, 그룹 순환출자 구조 해결 시급

[커버스토리 : 승계의 시간, 분열의 시간]




경영권 분쟁의 역사는 길다. 창업주 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오던 시기, 이르게는 1980년대에 시작됐으며 늦게는 2000년대 들어 갈등이 심화된 곳도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경영 승계 과정은 특히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삼성은 이건희가, 현대차는 정몽구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다시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3세대 승계가 진행됐다. 형제들과 후계 경쟁을 벌인 2세대와 비교하면 이들의 승계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에는 여전히 숙제가 남아 있다.
삼성생명 지분 처리를 어찌할 것인가

이건희 선대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에게 60억8000만원(증여세 16억원)을 증여했고 이 돈으로 삼성엔지니어링과 에스원의 주식을 샀다. 이후 이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199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을 통해 그룹 장악력을 높여왔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룹의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기에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회장(18.13%)이다. 삼성생명 지분도 10.44%를 가지고 있다. 삼성물산에 이어 2대주주에 해당한다.

그런데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율은 1.63%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이 8.51%, 2대주주인 삼성물산이 5.01%를 가지고 있어 이들 지분을 모두 합쳐 계산할 수 있으나 개별로는 지배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 같은 구조는 외부 영향을 쉽게 받는다. 2020년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 역시 삼성을 겨냥한 법안이다. 보험사가 계열사 채권·주식을 총자산의 3% 넘게 소유하지 못하도록 함과 동시에 이 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자는 게 골자였다. 시가로 따질 경우 5% 이상의 지분을 내놓아야 하고 이 가치는 40조원에 달한다. 그만큼의 의결권이 사라지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도 흔들리게 된다.

문제는 일회성 논란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이상 금산분리 주장은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1대 국회에서는 폐기 수순을 밟고 있지만 다음 국회에서 또다시 비슷한 법안이 나올 수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축은 삼성전자”라며 “안정적인 삼성전자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삼성전자의 1대주주는 삼성생명이다. 금융사가 제조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잠재적인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는 이어지고, 특히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그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삼성물산은 합병으로 이재용 회장이 지분을 대거 확보를 했는데 생명은 그렇지 못한 상태”라며 “결국 삼성물산이 지분을 사들이든지 이재용 회장이 사든지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럴 자금이 없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자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밖에 없는데 그걸 파는 것은 그룹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결국 지금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삼성물산이 최근 자사주를 소각했다. 인적분할 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이다. 그러면 생명이 가진 전자 지분을 어떻게든 물산으로 가져가야 한다.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순환출자 구조와 미약한 정의선 영향력

현대차 역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순환출자 구조와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 등이 대표적이다.

순환출자 구조는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리는 지배구조를 의미하며 △특정 계열사의 문제가 다른 계열사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 △기업가치를 향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대주주의 과도한 지배력이 향상되는 점 등이 문제로 꼽힌다. 국내 10대 기업 가운데 현대차그룹만이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진다. 그룹의 가장 중요한 회사인 현대차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곳은 현대모비스(21.43%)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기아(17.54%)이며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7.24%로 2대주주다.






순환출자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한 기업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얽혀 있는 모든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를 도입했다. 당초 공정위는 순환출자 구조의 기존 기업들도 이 제도에 포함시키려고 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규제가 완화돼 현대차는 제외됐다.

그러나 승계 과정에서 남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의 지분이 적다는 점이다.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 현대차 지분은 2.62%에 불과하다. 기아는 1.76% 가지고 있다. 과거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하려 했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20% 갖고 있다. 정 회장이 계열사들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현대차 역시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박주근 대표는 “현대차의 난제는 정의선 회장의 모비스 지분 확보”라며 “명예회장 지분을 상속받으면 되긴 하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지분이 일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비스가 안정적으로 자동차를 지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합병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고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게 가장 좋은 시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순환출자 구조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과도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

결국 현재 현대차그룹이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가 꼽힌다. 11.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 회장이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거나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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