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의 병세가 깊어지고 있다. 2023년 유럽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0.4%에 그쳤다. 코로나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던 2022년에는 3.4%를 기록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4년 유로존을 포함한 유럽 지역의 경제성장률을 0.6%로 제시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역시 0.8% 정도다. 2년 연속 1% 이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셈이다.
‘제로’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은 유럽 경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의 경제가 4% 성장에 그칠 동안 미국의 성장률은 8%를 기록했다. 현재 유럽 내 가장 큰 두 국가인 영국과 독일 모두 ‘경기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폭스바겐, 노키아, UBS 등 유럽 내 대표적인 기업들은 수만 명의 감원을 발표하고 있으며 성난 농민들은 파리를 포함한 유럽 곳곳의 거리를 봉쇄하고 나선 상황이다. ‘생활비’ 위기가 유럽 시민들을 옥죄이며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 또한 급증하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유럽 경제에 더욱 큰 ‘불운’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이 마주하고 있는 트리플 쇼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유럽 경제의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그 시작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장기집권을 확정 지었다. 지정학적 갈등이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최근에는 유럽 내 중국산 저가 수입품이 급증하며 제조업체들의 피해는 물론 산업 분쟁 사례 또한 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동산 침체를 상쇄하기 위해 최근 제조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결과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만약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게 될 경우 유럽 수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집권 5기 시대 연 러시아 푸틴…유럽 경제에 ‘장기적인 위협’
투표율 77.4%, 득표율 87.3%.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다. 러시아 대선 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이다. 푸틴 대통령의 승리는 모두가 예상하던 바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이 억압당하는 등 ‘불공정 투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며 ‘가짜 선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푸틴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더욱 큰 힘이 실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전 세계에 ‘에너지 위기’를 불러왔다. 러시아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던 유럽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고 오랫동안 멈춰 섰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겨우 최대 고비를 넘겼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마주한 ‘푸틴의 장기집권 소식’이 유럽 국가들에는 달가울 리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장기화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더 강력한 러시아’를 앞세우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안보 불안을 정권의 토대로 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5선을 확정 지은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적인 충돌은 세계 3차 대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위협도 내비쳤다. 푸틴 대통령의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이 거세지는 만큼 국방비에 더욱 많은 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의 위기를 벗어나 ‘강력한 성장 모멘텀’이 필요한 상황임을 고려하자면 이와 같은 막대한 국방비는 유럽 경제 회복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효과가 기대보다 적은 것도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무역 금지 등 다양한 경제·금융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무역 파트너를 찾아 나서고 있으며 오히려 중동,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금융시스템을 포기하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 2023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3.5%, IMF는 올해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하지만 유럽 내 경제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상황이 미래에 더 큰 위협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핀란드 은행의 로라 솔란코 선임 고문은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물가안정, 비군사적 지출 등 경제 펀더멘털 부문을 포기하고 군수 부문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등 ‘경제의 군사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며 “지금 러시아의 성장은 이로 인해 ‘엔진이 과열된 상태’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한다. 전쟁이 끝나고 불균형한 시스템의 엔진이 갑작스럽게 꺼질 때 러시아 경제 또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경제학자 에브게니 미하일렌코는 “팬데믹 동안 러시아를 떠난 이주민들은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전쟁에 징집돼 보내질 위험이 없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을 선호한다”며 “노동자가 없으면 곧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지역 경제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콜얀드르는 “러시아 경제는 표류하고 있지만 붕괴하기에는 그 속도가 매우 느리게 전개되고 있다”며 “러시아가 ‘군사적 스테로이드’에 중독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러시아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이 미래에 치르게 될 경제적 대가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승부수’ 꺼내든 중국 시진핑…최악의 타이밍에 찾아온 ‘차이나 쇼크’
“글로벌 무역을 위협하는 중국의 시진핑.” 지난 1월 9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이 세계시장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경고를 내보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에 승부수를 두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신품질 생산력(new productive forces)’이다.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소비 부양책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와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대신 중국의 국가 권력은 첨단 제조업을 가속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고도 경제의 황금 시대’로 도약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전 세계 상품 생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제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며 힘을 주고 있다”며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수 소비를 회복하는 정책 대신 해외 소비자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신제조업 공습’은 제조업 과잉 생산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을 교란시키며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요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럽 지역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랫동안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유럽 국가들의 성장 모델을 고려했을 때 중국의 제조업 공습은 특히 유럽 내 국가들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IMF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은 세계에서 무역과 투자에 가장 개방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EU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은 GDP의 44%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은 현재 친환경 제품, 특히 전기자동차에 집중하고 있다.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두 배로 늘려 3분의 1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폭스바겐과 같은 유럽 대표 기업들은 이와 같은 중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제조업 공략’이 시작된 지금 시점 또한 유럽의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유럽 내 국가들이 ‘녹색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며 친환경 산업이 확대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풍력 터빈에서부터 철도 장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풍력에너지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풍력 터빈 분야에서 2022년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차이나 쇼크’는 이미 유럽 내에서 상당한 반발에 맞닥뜨려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1월 현지 업체인 JCB가 중국 경쟁업체들이 저가 장비를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 굴착기 업체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EU는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와 중국산 바이오디젤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독일 빌레펠트대의 율리안 힌츠 교수는 “유럽은 탈중국화를 위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는 상당한 비용이 요구된다”며 “특히 중국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독일의 경우 향후 중국과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GDP의 1.2%가량이 손실될 수 있고 다른 주요 유럽 국가들 역시 GDP의 약 0.5%를 잃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재선 후 ‘보호무역주의 강화’ 가능성
그러나 유럽 경제가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위협 요소는 11월 이후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여론조사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 집권 2기’에 대한 공포감 또한 커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첫 임기 동안 알루미늄과 철강 등의 수입이 자국 경제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2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며 유럽 제조업체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EU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또한 오토바이를 포함한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보복 도미노가 이어졌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노믹스 2.0은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자문을 맡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와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라이트하이저는 “더 잔인한 관세가 필요할 수 있다”며 트럼프의 현재 제안보다 관세 전쟁이 한층 더 격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독일경제연구소는 “현재 EU 27개국 중 20개국이 미국과의 상품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미국의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향후 유럽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경우 2028년까지 누적 1200억 유로 정도의 손실이 계산된다.
오스트리아경제연구소의 클라우스 프리센비클러 연구원은 “현재 유럽의 위기는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등 외부 요인으로 촉발된 측면이 크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 지출 이후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긴축을 강화하며 상황이 악화된 측면이 크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푸틴과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의 조합이 완성될 경우 유럽 경제에 장기간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4년 유로존을 포함한 유럽 지역의 경제성장률을 0.6%로 제시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역시 0.8% 정도다. 2년 연속 1% 이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셈이다.
‘제로’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은 유럽 경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의 경제가 4% 성장에 그칠 동안 미국의 성장률은 8%를 기록했다. 현재 유럽 내 가장 큰 두 국가인 영국과 독일 모두 ‘경기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폭스바겐, 노키아, UBS 등 유럽 내 대표적인 기업들은 수만 명의 감원을 발표하고 있으며 성난 농민들은 파리를 포함한 유럽 곳곳의 거리를 봉쇄하고 나선 상황이다. ‘생활비’ 위기가 유럽 시민들을 옥죄이며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 또한 급증하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유럽 경제에 더욱 큰 ‘불운’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이 마주하고 있는 트리플 쇼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유럽 경제의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그 시작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장기집권을 확정 지었다. 지정학적 갈등이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최근에는 유럽 내 중국산 저가 수입품이 급증하며 제조업체들의 피해는 물론 산업 분쟁 사례 또한 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동산 침체를 상쇄하기 위해 최근 제조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결과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만약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게 될 경우 유럽 수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집권 5기 시대 연 러시아 푸틴…유럽 경제에 ‘장기적인 위협’
투표율 77.4%, 득표율 87.3%.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다. 러시아 대선 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이다. 푸틴 대통령의 승리는 모두가 예상하던 바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이 억압당하는 등 ‘불공정 투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며 ‘가짜 선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푸틴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더욱 큰 힘이 실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전 세계에 ‘에너지 위기’를 불러왔다. 러시아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던 유럽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고 오랫동안 멈춰 섰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겨우 최대 고비를 넘겼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마주한 ‘푸틴의 장기집권 소식’이 유럽 국가들에는 달가울 리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장기화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더 강력한 러시아’를 앞세우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안보 불안을 정권의 토대로 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5선을 확정 지은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적인 충돌은 세계 3차 대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위협도 내비쳤다. 푸틴 대통령의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이 거세지는 만큼 국방비에 더욱 많은 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의 위기를 벗어나 ‘강력한 성장 모멘텀’이 필요한 상황임을 고려하자면 이와 같은 막대한 국방비는 유럽 경제 회복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효과가 기대보다 적은 것도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무역 금지 등 다양한 경제·금융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무역 파트너를 찾아 나서고 있으며 오히려 중동,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금융시스템을 포기하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 2023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3.5%, IMF는 올해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하지만 유럽 내 경제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상황이 미래에 더 큰 위협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핀란드 은행의 로라 솔란코 선임 고문은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물가안정, 비군사적 지출 등 경제 펀더멘털 부문을 포기하고 군수 부문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등 ‘경제의 군사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며 “지금 러시아의 성장은 이로 인해 ‘엔진이 과열된 상태’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한다. 전쟁이 끝나고 불균형한 시스템의 엔진이 갑작스럽게 꺼질 때 러시아 경제 또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경제학자 에브게니 미하일렌코는 “팬데믹 동안 러시아를 떠난 이주민들은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전쟁에 징집돼 보내질 위험이 없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을 선호한다”며 “노동자가 없으면 곧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지역 경제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콜얀드르는 “러시아 경제는 표류하고 있지만 붕괴하기에는 그 속도가 매우 느리게 전개되고 있다”며 “러시아가 ‘군사적 스테로이드’에 중독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러시아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이 미래에 치르게 될 경제적 대가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승부수’ 꺼내든 중국 시진핑…최악의 타이밍에 찾아온 ‘차이나 쇼크’
“글로벌 무역을 위협하는 중국의 시진핑.” 지난 1월 9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이 세계시장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경고를 내보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에 승부수를 두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신품질 생산력(new productive forces)’이다.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소비 부양책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와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대신 중국의 국가 권력은 첨단 제조업을 가속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고도 경제의 황금 시대’로 도약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전 세계 상품 생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제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며 힘을 주고 있다”며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수 소비를 회복하는 정책 대신 해외 소비자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신제조업 공습’은 제조업 과잉 생산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을 교란시키며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요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럽 지역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랫동안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유럽 국가들의 성장 모델을 고려했을 때 중국의 제조업 공습은 특히 유럽 내 국가들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IMF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은 세계에서 무역과 투자에 가장 개방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EU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은 GDP의 44%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은 현재 친환경 제품, 특히 전기자동차에 집중하고 있다.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두 배로 늘려 3분의 1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폭스바겐과 같은 유럽 대표 기업들은 이와 같은 중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제조업 공략’이 시작된 지금 시점 또한 유럽의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유럽 내 국가들이 ‘녹색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며 친환경 산업이 확대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풍력 터빈에서부터 철도 장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풍력에너지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풍력 터빈 분야에서 2022년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차이나 쇼크’는 이미 유럽 내에서 상당한 반발에 맞닥뜨려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1월 현지 업체인 JCB가 중국 경쟁업체들이 저가 장비를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 굴착기 업체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EU는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와 중국산 바이오디젤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독일 빌레펠트대의 율리안 힌츠 교수는 “유럽은 탈중국화를 위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는 상당한 비용이 요구된다”며 “특히 중국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독일의 경우 향후 중국과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GDP의 1.2%가량이 손실될 수 있고 다른 주요 유럽 국가들 역시 GDP의 약 0.5%를 잃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재선 후 ‘보호무역주의 강화’ 가능성
그러나 유럽 경제가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위협 요소는 11월 이후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여론조사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 집권 2기’에 대한 공포감 또한 커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첫 임기 동안 알루미늄과 철강 등의 수입이 자국 경제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2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며 유럽 제조업체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EU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또한 오토바이를 포함한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보복 도미노가 이어졌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노믹스 2.0은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자문을 맡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와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라이트하이저는 “더 잔인한 관세가 필요할 수 있다”며 트럼프의 현재 제안보다 관세 전쟁이 한층 더 격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독일경제연구소는 “현재 EU 27개국 중 20개국이 미국과의 상품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미국의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향후 유럽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경우 2028년까지 누적 1200억 유로 정도의 손실이 계산된다.
오스트리아경제연구소의 클라우스 프리센비클러 연구원은 “현재 유럽의 위기는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등 외부 요인으로 촉발된 측면이 크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 지출 이후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긴축을 강화하며 상황이 악화된 측면이 크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푸틴과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의 조합이 완성될 경우 유럽 경제에 장기간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