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서영의 명품이야기=몽블랑②
미국의 존 라우드가 1888년 최초로 볼펜을 발명했고, 헝가리의 라슬로 비로가 1938년 오늘날 모양의 볼펜 형태로 만들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군인들과 영국 군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에 가격이 싼 플라스틱 볼펜이 일반화되었다. 볼펜의 일반화로 만년필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많은 만년필 회사들이 사업을 접거나 전환했다. 1967년 독일의 만년필 제조사 소네컨이 사업을 그만뒀고, 1975년 독일 파버카스텔은 만년필보다 미술용품 사업에 더 집중했다. 프랑스 화이트만은 만년필 제조회사에서 볼펜 회사로 전환했고 회사 이름도 빅(BIG)으로 바꿨다.
1959년 프랑스에서 빅 크리스털 볼펜이 생산되면서 몽블랑뿐만 아니라 많은 만년필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빅 크리스털 볼펜의 가격이 당시 0.19달러였다. 빅 크리스털의 저렴하고 효율적이고 간편한 신기술을 만년필 회사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은 비단 몽블랑 만년필과 빅 크리스털 볼펜만의 운명만은 아니었다. 손목시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롤렉스와 파텍필립으로 대표되는 기계식 시계는 더 저렴하고 정확한 쿼츠 무브먼트에 밀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의 유명한 라이카 카메라는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일본산 카메라 브랜드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마이스터튁 149, 12세대 모델 생산
몽블랑은 신기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리하든 효율적이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더 나은 점이 있으면 시장은 받아들이고 널리 퍼지게 마련이다. 현재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를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시 펜 사업의 강자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볼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52년 몽블랑은 희대의 아이콘인 ‘마이스터튁 149’를 완성했다.
이 만년필은 시장에서 몽블랑이 명품 필기구임을 입증했다. ‘마이스터튁 149’ 만년필은 마이스터튁 시리즈의 표준 모델이며 지금까지 12세대 모델이 생산되었다. 제품에 사용된 숫자 ‘149’에서 1은 마이스터튁 시리즈를 의미하고, 4는 피스톤 필러 방식(충전이 가능한 잉크통)을 의미하며, 9는 닙(만년필 펜촉)의 크기를 의미한다. 몽블랑에서 사용하는 닙 중에서 가장 두꺼운 9호 닙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두툼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닙 컬러는 골드와 플래티넘의 두 가지 색상으로 아르누보풍의 장식과 몽블랑의 산 높이를 의미하는 4810 숫자를 각인했다(사진①).
몽블랑의 ‘마이스터튁 149’는 그 장르를 대표하는 리바이스 501, 포르쉐 911, 샤넬 N5°와 같은 아이콘이 되었다.
1957년 몽블랑은 저가 필기구 시장 진출을 위해 볼펜과 연필을 제조하는 스웨덴의 발로그라프를 인수했고, 1960년대에는 ‘몬테로사’라는 세컨드 브랜드(보급형 브랜드)를 만들어 다양한 저가 만년필을 출시했으나 시장을 헤쳐나갈 수 없었다. 몽블랑은 이 시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
1977년 담배 및 럭셔리 상품을 만드는 영국의 알프레드던힐이 몽블랑의 주주가 되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던힐은 경영 실적이 애매했던 상품군들을 정리해 나갔고 시대에 부응하는 만년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몽블랑의 상징적인 ‘마이스터튁 149’는 계속해서 만들었다. 1950~60년대는 만년필의 암흑기였고 미국의 큰 회사들도 만년필을 축소했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지면서 만년필 시장은 되살아났다. 1985년 몽블랑 심플로 GmbH는 알프레드던힐에 완전히 인수되었다. 알프레드던힐에 인수된 몽블랑 브랜드는 럭셔리 시장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1987년 노버트 플라트가 CEO로 취임한 이후 더욱 명품화에 집중했다. 그는 독일의 럭셔리용품 업체인 롤라이에서 일한 이력이 있었고 몽블랑 제품 중 저가 모델 상품은 생산을 중단시켰다. 1983년 마이스터튁 시리즈를 순금과 순은으로 장식한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컬렉션’을 발표했다. ‘솔리테어(Solitaire)’라는 말은 ‘보석이 박힌 장신구’를 의미한다.
순금으로 외형을 장식한 몽블랑의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149’ 만년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몽블랑이 1994년 출시한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로열’(사진②)은 몽블랑산 높이를 의미하는 4810개의 다이아몬드로 배럴을 장식했다. 이 제품 또한 약 1억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고가 작가 에디션 한정품 1호, 헤밍웨이
1992년 몽블랑은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기존 마이스터튁 시리즈 모델보다 고가의 한정판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정판인 ‘문화예술 후원자상 에디션(Patron of Art Edition)’과 ‘작가 에디션(Writer's Edition)’을 만들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삶과 작품을 기리기 위해 ‘작가 에디션’이 출시되었다. 작가 에디션의 첫 주인공이 된 작가는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을 쓴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작가 에디션 1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디션은 고전적인 149 본체에 보디의 색을 다르게 하고, 캡에는 헤밍웨이의 사인을 새겼으며, 2만 개가 제작되었다(사진③). 첫 작가 에디션이란 점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 펜의 주인공을 위해 특별한 요소를 더한다’는 몽블랑 한정판 펜의 언어가 여기에서 출발했다.
자료참고: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B MONT BLANC, 몽블랑 홈페이지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미국의 존 라우드가 1888년 최초로 볼펜을 발명했고, 헝가리의 라슬로 비로가 1938년 오늘날 모양의 볼펜 형태로 만들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군인들과 영국 군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에 가격이 싼 플라스틱 볼펜이 일반화되었다. 볼펜의 일반화로 만년필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많은 만년필 회사들이 사업을 접거나 전환했다. 1967년 독일의 만년필 제조사 소네컨이 사업을 그만뒀고, 1975년 독일 파버카스텔은 만년필보다 미술용품 사업에 더 집중했다. 프랑스 화이트만은 만년필 제조회사에서 볼펜 회사로 전환했고 회사 이름도 빅(BIG)으로 바꿨다.
1959년 프랑스에서 빅 크리스털 볼펜이 생산되면서 몽블랑뿐만 아니라 많은 만년필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빅 크리스털 볼펜의 가격이 당시 0.19달러였다. 빅 크리스털의 저렴하고 효율적이고 간편한 신기술을 만년필 회사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은 비단 몽블랑 만년필과 빅 크리스털 볼펜만의 운명만은 아니었다. 손목시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롤렉스와 파텍필립으로 대표되는 기계식 시계는 더 저렴하고 정확한 쿼츠 무브먼트에 밀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의 유명한 라이카 카메라는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일본산 카메라 브랜드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마이스터튁 149, 12세대 모델 생산
몽블랑은 신기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리하든 효율적이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더 나은 점이 있으면 시장은 받아들이고 널리 퍼지게 마련이다. 현재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를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시 펜 사업의 강자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볼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52년 몽블랑은 희대의 아이콘인 ‘마이스터튁 149’를 완성했다.
이 만년필은 시장에서 몽블랑이 명품 필기구임을 입증했다. ‘마이스터튁 149’ 만년필은 마이스터튁 시리즈의 표준 모델이며 지금까지 12세대 모델이 생산되었다. 제품에 사용된 숫자 ‘149’에서 1은 마이스터튁 시리즈를 의미하고, 4는 피스톤 필러 방식(충전이 가능한 잉크통)을 의미하며, 9는 닙(만년필 펜촉)의 크기를 의미한다. 몽블랑에서 사용하는 닙 중에서 가장 두꺼운 9호 닙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두툼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닙 컬러는 골드와 플래티넘의 두 가지 색상으로 아르누보풍의 장식과 몽블랑의 산 높이를 의미하는 4810 숫자를 각인했다(사진①).
몽블랑의 ‘마이스터튁 149’는 그 장르를 대표하는 리바이스 501, 포르쉐 911, 샤넬 N5°와 같은 아이콘이 되었다.
1957년 몽블랑은 저가 필기구 시장 진출을 위해 볼펜과 연필을 제조하는 스웨덴의 발로그라프를 인수했고, 1960년대에는 ‘몬테로사’라는 세컨드 브랜드(보급형 브랜드)를 만들어 다양한 저가 만년필을 출시했으나 시장을 헤쳐나갈 수 없었다. 몽블랑은 이 시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
1977년 담배 및 럭셔리 상품을 만드는 영국의 알프레드던힐이 몽블랑의 주주가 되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던힐은 경영 실적이 애매했던 상품군들을 정리해 나갔고 시대에 부응하는 만년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몽블랑의 상징적인 ‘마이스터튁 149’는 계속해서 만들었다. 1950~60년대는 만년필의 암흑기였고 미국의 큰 회사들도 만년필을 축소했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지면서 만년필 시장은 되살아났다. 1985년 몽블랑 심플로 GmbH는 알프레드던힐에 완전히 인수되었다. 알프레드던힐에 인수된 몽블랑 브랜드는 럭셔리 시장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1987년 노버트 플라트가 CEO로 취임한 이후 더욱 명품화에 집중했다. 그는 독일의 럭셔리용품 업체인 롤라이에서 일한 이력이 있었고 몽블랑 제품 중 저가 모델 상품은 생산을 중단시켰다. 1983년 마이스터튁 시리즈를 순금과 순은으로 장식한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컬렉션’을 발표했다. ‘솔리테어(Solitaire)’라는 말은 ‘보석이 박힌 장신구’를 의미한다.
순금으로 외형을 장식한 몽블랑의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149’ 만년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몽블랑이 1994년 출시한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로열’(사진②)은 몽블랑산 높이를 의미하는 4810개의 다이아몬드로 배럴을 장식했다. 이 제품 또한 약 1억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가장 비싼 만년필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고가 작가 에디션 한정품 1호, 헤밍웨이
1992년 몽블랑은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기존 마이스터튁 시리즈 모델보다 고가의 한정판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정판인 ‘문화예술 후원자상 에디션(Patron of Art Edition)’과 ‘작가 에디션(Writer's Edition)’을 만들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삶과 작품을 기리기 위해 ‘작가 에디션’이 출시되었다. 작가 에디션의 첫 주인공이 된 작가는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을 쓴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작가 에디션 1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디션은 고전적인 149 본체에 보디의 색을 다르게 하고, 캡에는 헤밍웨이의 사인을 새겼으며, 2만 개가 제작되었다(사진③). 첫 작가 에디션이란 점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 펜의 주인공을 위해 특별한 요소를 더한다’는 몽블랑 한정판 펜의 언어가 여기에서 출발했다.
자료참고: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B MONT BLANC, 몽블랑 홈페이지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