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생성형 AI 시장에 유럽 스타트업 도전장…AI 주권 논쟁 촉발
생성형 AI는 현재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합군, 구글, 그리고 메타 등 거대기술기업(Big Tech)들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현재까지는 MS로부터 무려 130억 달러(18조 1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투자에다 향후 1000억 달러(139조원)에 달하는 데이터센터 구축계획까지 함께 발표한 오픈AI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구글, 메타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하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 오픈AI와 MS 연합군의 선점 효과가 점차 줄어들면서 기존 빅테크 기반의 생성형 AI 질서에 반기를 들거나 생성형 AI 시장의 판을 재편하려는 신생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경쟁자로 거론되는 스타트업은 앤스로픽(Anthropic)이다. 앤스로픽은 오픈AI의 상업화 경향에 반기를 들고 2021년 오픈AI에서 일하던 직원 7명이 나와 설립한 회사이다. 최근 아마존으로부터 27억5000만 달러(3조8000억원), 구글로부터 20억 달러(2조77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오픈AI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AI 챗봇 ‘클로드2’에 이어 얼마 전 출시한 ‘앤스로픽 3’은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다른 경쟁자 코히어(Cohere)는 오픈AI, 앤스로픽과 함께 북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캐나다 AI 스타트업이다. 전직 구글 연구원인 아이단 고메즈가 설립했으며 엔비디아,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으로부터 5억 달러(69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고 기업용 AI 솔루션을 개발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는 비영어권 국가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101개 언어를 지원하는 대형언어모델(LLM) ‘아야(Aya)’를 출시한 바 있다. 소버린 AI 주창한 유럽 스타트업 부상북미 지역 이외에도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생성형 AI 스타트업들도 있다. 특히 이들은 미국 주도의 빅테크 기업에 반기를 들고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체 AI 기술 역량을 키우려는 소위 소버린 AI(Sovereign AI)로 상징되는 기업들이다. 소버린 AI란 “국가 주권, 안보, 경제 경쟁력 및 사회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 정부가 AI 기술을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소버린 AI가 부상한다는 것은 AI 기술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I가 정치, 경제, 군사, 사회적으로 중요해짐에 따라 이러한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과 안보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AI국가주의(AI Nationalism)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AI 주권에 대한 중요성은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의 최근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최근 AI에 불고 있는 새로운 물결을 언급하며 기술 산업 전반에 걸친 민간 주도의 물결이 첫 번째 물결이라면 국가가 AI에 대한 주권적 역량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을 두 번째 물결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유럽 AI 기술의 자존심 ‘미스트랄 AI’이러한 두 번째 물결을 견인하고 있는 기업들은 특히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AI 스타트업이 척박한 유럽 기반 회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유럽 기반 생성형 AI 기업은 프랑스의 미스트랄AI(Mistral AI)와 독일의 알레프 알파(Aleph Alpha)와 딥엘(DeepL)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 중 하나는 프랑스의 미스트랄AI이다.
미스트랄AI는 2023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생성형 AI 스타트업이다.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에서 일했던 연구원들인 아서 멘시, 티모시 라크루아 및 기욤 램플이 창업했다. 직원은 30여 명에 불과해 규모 면에서 보면 1000명인 오픈AI와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미스트랄AI는 설립된 지 4주 만에 LLM 출시 계획만으로 유럽 AI 스타트업 사상 최고액인 1억1300만 달러(약 1531억원)의 시드 자금을 확보할 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현재는 기업가치가 20억 유로(2조9500억원)로 평가받는 유니콘 기업으로 날로 치열해지는 AI 경쟁에서 유럽의 희망이자 자존심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창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미스트랄AI가 어떻게 프랑스, 아니 유럽 AI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걸까.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스트랄AI의 LLM 모델은 기존 LLM 대비 뛰어난 성능과 효율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사의 대표 LLM 모델로 꼽히는 미스트랄 라지(Mistral Large)는 LLM 글로벌 평가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특정 항목과 정확도에서는 오픈AI의 챗GPT-4보다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쟁사 대비 언어모델의 가중치인 파라미터 수는 적지만 최고 수준의 추론 능력과 다양한 언어를 지원한다. 소형 LLM(sLLM)임에도 불구하고 성능뿐만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사인 오픈AI의 최신 GPT-4 터보보다 20% 저렴하다고 한다.
둘째, 미스트랄AI는 오픈소스 모델이다. 오픈소스라는 것이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사용 가능하고 미세조정이 쉬우며 빠르고 유연하고 비용 효율적인 특성을 갖는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 의하면 오픈소스 모델이 프라이빗 모델(폐쇄성 모델)보다 빠른 성능을 보였다. 미스트랄AI는 기업에 챗봇 및 검색엔진과 같은 AI 제품을 출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언어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미스트랄AI의 또 다른 강점은 다국어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에 특화되어 있는 GPT-4와는 달리 미스트랄AI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에 대해 뛰어난 성능을 나타낸다.
넷째, 미스트랄AI는 유수한 다국적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스트랄AI의 투자기업으로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인 앤드레센 호로위츠와 제너럴 카탈리스트, 프랑스 억만장자 자비에 니엘, 세일즈포스, 엔비디아 등이 있다. 파트너십은 데이터브릭스, 스노플레이크, IBM 등이 있는데, 특히 지난 2월에는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는 MS와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소버린 AI를 주창하며 AI 기술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기업에 투자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2018년부터 AI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전략과 2019년 딥테크 계획(Deep Tech Plan)을 통해 AI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으며 이는 미스트랄AI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일조했다.
특히 최근 합의된 유럽연합(EU) AI 법안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더라도 얼마나 프랑스 정부가 AI 주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번 EU AI 법안 최종 결정에서 FM 규제 대상 중 오픈소스 모델 면제 결정은 EU 역내 기업 보호라는 측면이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험대에 오른 미스트랄AI이처럼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미스트랄AI는 자체 기술 역량과 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장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윗(미스트랄AI)이 골리앗(오픈AI)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섞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유럽의 AI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미스트랄AI에 대한 기대가 최근 MS와 미스트랄AI 간의 전략적 투자 파트너십으로 인해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월 발표된 양사 간의 파트너십 체결이 EU 역외국가에 기반한 외국 기업의 데이터센터 이용으로 인한 데이터 주권 침해에 대한 우려와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에 대한 EU집행위원회의 조사로 이루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가 유럽 챔피언(European Champion)을 육성하려는 EU 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될지, 아니면 EU의 자존심 미스트랄AI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으로 끝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