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대신 ‘곤멍’하는 곤충학자[서평]

세상에 사라져야 할 곤충은 없어
김태우 지음 |한국경제신문│1만8000원곤충에 대한 인간의 시선은 부정적이거나 무관심에 가깝다. 이는 곤충 특유의 기괴한 생김새 혹은 낯선 생태적 습성에 대한 편견이거나 곤충의 종류를 해충에 한해서만 생각한 탓에 생긴 선입견이다.

곤충이 주는 인상의 차이는 우리와는 근본적인 체계가 너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곤충의 이미지는 겉을 둘러싼 단단한 외골격에서 비롯된다. 외골격은 수분의 증발을 막고 외부 충격을 막을 때 가볍고 튼튼한 소재지만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람은 부드러운 피부와 털이 있는 동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곤충은 쓰다듬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는 부적합하기에 포유류는 로드킬, 조류는 윈도 스트라이크란 말로 억울한 죽음을 표현하지만 곤충에겐 당연한 압사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곤충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곤충은 동식물을 먹고 사체를 분해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나 개구리 등 더 큰 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꽃가루받이를 도와 생물다양성 증진에 이바지한다. 생태 전환의 시대에 우리 인식 가까이 곤충을 두고 공존과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은 앞으로 다 같이 고민해야 할 숙제다.

‘메뚜기 선생님’으로 유명한 저자 김태우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 최초로 대규모 생물표본 수장시설을 갖춘 국립연구기관인 국립생물자원관 소속으로, 한국 곤충 연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곤충의 매력에 빠진 이후 지금까지 오직 곤충 연구에만 매진해온 열혈 곤충학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외된 곤충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어린 시절 만난 곤충 이야기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곤충에 대한 정보, 곤충 이름의 유래 및 우리가 궁금했던 곤충학자의 일상과 해외 곤충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곤충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자신의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친절하고 유쾌하게 전달한다.

곤충을 좋아하는 곤충 동호인들은 야간 등화 채집, 즉 어두운 밤에 인공조명을 밝혀 곤충을 유인해 설치한 흰색 천막에 내려온 곤충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데, 이를 ‘곤멍’이라 한다고 한다. 불을 바라보며 힐링하는 ‘불멍’을 변형한 재밌는 신조어다. 저자는 여럿이 곤멍을 하면서 세상에 이 많은 곤충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어쩌다 불빛에 날아왔는지, 불빛이 꺼지면 어디로 날아갈지 등을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야산에서 풀무치를 처음 마주한 후 ‘세상에 저렇게 큰 메뚜기가 있다니’ 하며 놀랐고, 풀무치가 코앞에서 땅을 박차고 도망가는 모습이 마치 새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아 이후 ‘최애’가 되면서 곤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곤충 연구를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거 연구해서 어디다 쓰냐’는 말도 들었지만 곤충의 다양한 매력이 저자를 곤충학자의 길로 인도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를 곤충학자의 길로 이끈 다양한 곤충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 첫 반려곤충이었던 집게벌레는 보통 인가의 어둡고 습한 장소에서 쉽게 발견되는 곤충이다. 이들은 낮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와 여러 가지 동식물을 섭취한다. 물론 야외에 사는 종류도 있지만 민집게벌레나 끝마디통통집게벌레, 애흰수염집게벌레 등은 집 안에 서식하는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가주성 집게벌레로 흔히 집에서 발견된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병에 넣어 키우며 관찰하게 된 집게벌레는 강한 생명력으로 인공적 공간에서 알도 낳고 애벌레까지 길러 내 곤충의 뜨거운 모성애를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

봄에 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길앞잡이는 사람이 갈 길을 앞장서 안내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해가 잘 드는 흙길 등산로에 주로 서식한다. 길앞잡이가 사는 곳은 인위적인 훼손이 적고 토양 환경이 잘 갖추어진 곳이어야 한다. 흙 위를 돌아다니는 곤충들이 있어야 길앞잡이 애벌레나 성충이 먹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곁에 다양한 종류의 곤충이 살고 있다. 어느 샌가 우리는 그들의 작은 속삭임을 소홀히 대하고 있진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작은 발걸음을 내디뎌보는 것, 이 책이 그 작은 씨앗이 되길 저자는 소망한다.

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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