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째 오르는 서울 아파트 전세, 외곽까지 상승 불씨 옮아[비즈니스 포커스]

강남3구는 숨 고르기…노도강·금관구 오름세
실수요 매매로 전환 안 돼, 전세사기·청약대기 등 원인도 다양

흑석동 아파트 단지 및 주택가 전경. 사진=동작구청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4월 18일 발표한 ‘4월 셋째 주 전국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48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 5월 넷째 주 이후 1년이 가까워지도록 한 주도 하락이나 보합이 없이 오름세를 유지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는 지난 부동산 상승기에 매매가격과 더불어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다 2022년 하반기 금리인상 여파로 매매시세와 함께 한동안 조정을 거쳤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쯤부터 다시 상승을 거듭하며 전고점과 가격 격차를 줄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022년 1월 6억3424만원에 다다르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금리인상 시점과 맞물려 지난해 5월 5억1071만원까지 떨어졌던 것이 최근 들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3월 서울 평균 전세가격은 5억3703만원으로 아직 전고점보다 1억원 가량 낮은 수준이지만 추가 상승이 유력하다. 매매수요가 정체된 가운데 실거주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 전세 수요자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상승의 불씨가 강남 등 핵심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민 거주지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주택공급이 부족했던 일부 지역에선 매물도 귀한 상황이다. 상위권서 자취 감춘 강남

KB부동산이 집계한 올해 3월 자치구별 ㎡당 전세가격을 전년 동월과 비교한 결과 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지역 10위권에는 송파, 강남, 서초 등 일명 ‘강남3구’가 모두 포함됐다. 특히 송파구는 전세금액과 변동률 모두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같은 수치를 지난해 말과 비교하자 강남3구는 상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올해 들어 강남권보다 다른 지역 전세가격이 더 올랐다는 의미다. 동작, 서대문, 마포 등 주요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은 비(非)강남지역 순위가 높아진 한편 관악, 구로, 강북 등 서울 외곽지역이 10위권에 신규 진입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최근 강남권에 주택공급이 많았던 데다 고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높은 전세가격이 수요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강남구에선 3월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 11월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 등 개포동을 중심으로 대단지 입주가 많았다. 그럼에도 개포동 소재 새 아파트 전용면적 84㎡ 타입 전세 시세는 15억원 선이다. 2021년 당시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세가 17억~18억원까지 급등했던 점을 고려하면 2억~3억원 떨어졌지만 일부 대기수요가 기대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강남권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전세 문의가 왔을 때 ‘생각보다 가격이 별로 안 떨어졌다’는 고객이 많았다”며 “예전과 달리 금리가 높다 보니 세입자들이 고가의 보증금에 더 부담을 느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반면 동작구 흑석동 역세권 인근에선 중소형 아파트 전세매물이 귀하다. 서울 한강변 중심에 위치한 동작구는 여의도와 강남, 도심 등 일명 3대 업무지구 접근성이 고루 좋은 편이라 젊은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소형 아파트 수요가 많은 편이다.

흑석동 대표 신축 아파트인 ‘아크로리버하임’ 전용면적 59㎡ 타입은 남아 있는 전세매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맞은편 구축인 ‘명수대 현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2~3년 전 전세가 급등기에 접어들던 상황과 비슷하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흑석동과 사당동, 상도동 일대 전세 시세가 가파르게 올랐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중 하나는 인접한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서초구에서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이주 수요가 동작구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입주한 이들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통해 계약을 2년 연장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집계에 따르면 4월 24일 기준 올해 동작구 아파트 전세 계약 1344건 중 35.9%가 갱신계약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공급은 적었다. 지난해 ‘흑석 리버파크자이’(1772가구), 올해 ‘일원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771가구)가 입주하며 전세 매물을 제공하고 있지만 인근 반포1·2·4주구, 반포3주구, 방배동 주택재건축의 대규모 이주 수요와 신규 전세 수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아직 노량진은 본격적인 상승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반포에서 가깝고 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흑석동, 상도동에서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며 “그러다 보면 결국 흑석에서 시작된 흐름이 서쪽으로 점차 이동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복도식 구축이라도…저렴한 전세 수요↑

비슷한 현상은 서울 곳곳에서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서대문구 전세가격은 홍제동, 냉천동 위주로 상승하면서 0.23% 올랐다. 홍제동은 지하철 3호선이 정차해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업무지구가 가까우면서 서대문 내에서 주택시세가 저렴한 곳이다.

전세가 변동률 상위권에 속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국지적으로 전세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남뉴타운 3구역 이주가 본격화하고 이촌동 현대아파트(현대맨션) 리모델링 공사가 장기화하면서 용산구 동부지역 전세매물은 씨가 마르고 있다. 반면 집주인이 매도하기 위해 나온 매물은 쌓이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이 지속되면서 집을 살 사람은 없지만 실거주를 위해 임차할 집을 알아보는 수요는 많다.

이들 지역 외에 서울 평균보다 부동산 시세가 저렴한 일명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에 속하는 관악구, 구로구, 강북구도 전세가 변동률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한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 등 지역 내 선호단지뿐 아니라 비교적 선호도가 떨어지는 낡은 아파트 전세가격도 움직이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역세권인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 전용면적 59㎡ 전세는 올해 3월 6억7000만원에 실거래됐다. 2021년 7월 기록한 8억4000만원보다는 여전히 낮은 가격이지만 지난해 상반기 5억원 대까지 떨어졌던 시세에 비해 반등한 것이다. 명문 사립학교인 영훈초등학교, 4호선 미아사거리역을 끼고 있는 강북구 미아동 ‘송천센트레빌’ 전용면적 59㎡도 올해 2월 5억3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해 2월 한 신규 전세계약은 3억2000만원에 이뤄지기도 했다.

한편 1982년 준공돼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관악구 신림동 ‘라이프미성아파트’ 전용면적 91㎡ 전세는 지난해 말 3억8000만원에 신규로 거래됐다. 전고점인 4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관악구와 구로구 간 경계에 위치한 ‘라이프미성아파트’는 주변 직장인 수요가 많은 구로디지털단지역 역세권이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전세사기 피해가 급속히 확산하던 시점에서 예견된 부분이었다. 부동산 전문가 다수는 지난해부터 비싼 새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기 힘든 빌라, 오피스텔 임차수요가 저렴한 낡은 소형아파트 전세로 집중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빌라에 집중된 전세사기를 피해 보증금이 비싸지 않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 같은 실수요에 아직 시세에 비해 분양가가 저렴한 서울 아파트 청약을 노리는 임차인들까지 가세해 전세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서울 접근성이 좋은 경기도 전세가격은 아직 좋은 편이므로 실수요자에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이 개통되며 교통 편의가 개선되는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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