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선수의 만성 부상에서 시작된 '발 편한 운동화' 고민
충격 흡수 가능한 기술로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의 후원 계약 성사
온 러닝화, '구름 신발'로 입소문 타며 매출 수직 상승
스위스의 러닝화 브랜드 ‘온’도 마찬가지다. 은퇴한 트라이애슬론 선수인 올리비에 베른하르트가 ‘부상당하지 않고 뛸 수 있는 러닝화’를 고민한 게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운동화 밑창에 고무호스 조각을 붙여본 게 온의 초기 모델이다. 그 결과 온은 ‘발 편한 운동화’, ‘구름 신발’ 등으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온이 나이키를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내 질문’에서 시작한 러닝화“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러닝화는 이 세상에 없는 걸까?”
최근 ‘나이키 대체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위스 브랜드 온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창업자인 올리비에 베른하르트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선수 시절 세계챔피언 3회, 아이언맨(장거리 트라이애슬론) 금메달 6회 등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동시에 부상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운동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만성 아킬레스건 염증으로 은퇴를 결정했고 이후 ‘발이 편한 러닝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원에서 사용하는 고무호스 조각을 잘라 밑창에 붙여보는 등 다양한 실험을 시작했고 나이키와 선수 계약을 맺고 있던 베른하르트는 이때 만든 테스트용 제품을 나이키에 들고 갔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제품을 위해 친구였던 스위스 공과대학 엔지니어 출신의 카스파 코페티, 데이비드 알레만 등과 손잡고 2010년 회사 ‘온홀딩’을 설립, 첫 번째 러닝화를 완성했다. 이렇게 나온 게 ‘클라우드 레이서’다.
밑창에 달린 여러 개의 공기 주머니에는 ‘클라우드 텍’이 적용됐는데, 온이 특허를 가진 쿠셔닝 기술이다.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을 줄 정도로 푹신하다는 의미로, 밑창에 뚫린 구멍이 충격을 흡수해 부드러운 착지가 가능하고 동시에 반발력도 강해 러닝에 도움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또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밑창이 수평 또는 수직으로 압축돼 필요한 곳에 쿠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온은 미션그립(산악용), 스피드보드(일반 러닝용), 헬리온(도시용) 등의 고유 기술을 보유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베른하르트는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온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운동선수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며 “내가 누구인지는 바꿀 수 없다. 온은 승리했지만 패배했고 부상을 입으며 완벽한 달리기 감각을 추구한 운동선수로부터 탄생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온을 신는다”며 “출퇴근하는 직장인,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 동네에서 유모차를 끄는 부모님들 모두 온을 신는다. 부드러운 컬러와 혁신적이면서도 튀지 않는 디자인 덕분에 온은 기존의 라이프스타일 러닝화들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은 다수의 프로 운동선수와 계약을 통해 스포츠업계에서 영향력을 높였다. 일부 마라톤 선수들은 ‘추종자’가 될 정도로 온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폴란드 테니스 선수 이가 시비텍, 미국 육상 선수 야레드 너구세, 스페인 육상 선수 마리오 가르시아 로모, 노르웨이 트라이애슬론 선수 크리스티안 블룸멘펠드 등 다양한 운동선수와 계약을 맺고 있다. 베른하르트는 “전 세계 운동선수를 위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선수들의 재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다. 그들이 성공하는 게 곧 우리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온은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인정받았다. 2015/16년 세계 최대 스포츠 박람회인 ‘ISPO 뮌헨’에서 최고의 성능 신발 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2017/18년에도 ISPO에서 ‘클라우드 플래시’로 디자인과 최고 기능을 인정받았고 ‘클라우드 플로우’로 금상을 수상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온에 대해 ‘획기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나이키 대체할까…질주하는 러닝화‘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러닝 브랜드’.
온에 붙는 수식어다. 온은 ‘발 편한 러닝화’로 입소문이 나면서 설립 3년 만에 직원 수가 3명에서 30여 명으로 늘었고 유통망도 20개국 이상, 700개 매장으로 확대됐다. 2016년에는 유럽, 북미, 남미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50개국에 있는 2200개 이상의 매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9년에는 전 세계 55개국 8700여 개 매장에 입점할 정도로 사업 규모가 커졌다.
매년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9년 11월이다. 스위스의 천재 테니스 선수로 20회의 그랜드 슬램(4대 주요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경우)을 달성한 로저 페더러가 온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페더러는 2018년 나이키와의 후원 계약이 종료된 이후 수많은 브랜드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 온에도 투자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알아듣지 못할 수 있는 브랜드”라며 “운동선수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회사다. 로저 페더러가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가 있다. 온은 퍼포먼스 스포츠 신발 부문에서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거대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은 페더러의 투자를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 페더러의 이름을 따 약 250달러의 테니스화 ‘더 로저’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온은 ‘페더러의 선택을 받은 러닝화’로 알려지면서 성장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온이 나이키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인지도를 제고한 것은 2020년 12월 뉴욕에 154㎡(약 47평) 규모의 첫 번째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면서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온은 마치 전염병이 없다는 듯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며 “코로나19 여파로 오픈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6개월가량 지연됐지만 이들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은 2021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온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투자계획서에서 “설립 10여 년 만에 북미 고객의 매출 비중이 49%까지 늘었다”며 “유럽 비중은 44%, 아시아 5% 등으로 구성된다.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최종 공모가는 최초 공모가 대비 47.5% 높은 주당 24달러였다. 상장 첫날 온은 35달러까지 치솟으면서 한때 시가총액 123억 달러(약 17조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온은 ‘마니아’를 넘어 대중 인지도 확보도 성공했다. 미국 모델 지젤 번천, 할리우드 배우 밀라 쿠니스, 제니퍼 가너 등 유명인들의 파파라치 사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2022년과 지난해에는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와 협업한 운동화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로 실적은 상승세다. 2021년 온은 7억2460만 스위스프랑(약 1조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1억4110만 스위스프랑(약 21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러나 이듬해 매출 12억2210만 스위스프랑(약 1조8400억원)과 영업이익 8510만 스위스프랑(약 1300억원)을 기록하며 단숨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17억9210만 스위스프랑(약 2조7000억원)의 매출과 1억8020만 스위스프랑(약 2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마틴 호프만 온홀딩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비즈니스 모든 부분에서 더 큰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며 “온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 최소 30% 이상 매출 성장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까지 다중 채널 전략의 성공을 기반으로 전례 없는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