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이 쓴 계획적 혼돈이라는 전략에 대하여[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K팝은 어떻게 세계적으로 성공한 상품이 됐을까. 오랜 기간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책도 보고 강의도 들으며 최근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주관적인 결론은 ‘레거시로부터의 자유와 조합의 힘’이었습니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됐습니다. 남아 있는 대중문화라고 해야 이후 트로트로 발전한 일본 엔카를 본딴 유행가 정도였습니다. 이외에 K팝 발전의 발목을 잡을 만한 거추장스러운 전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웠습니다. 돌아볼까요. 1970년대 대중가요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포크와 록이 확산됐습니다. 이어 1980년대에는 조용필이 가요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하드록, 펑크, 판소리, 오페라까지 필요한 것은 다 가져다 쓰며 왕국을 이뤘습니다.

또 K팝의 원초적 모습을 갖춘 부활, 들국화, 송골매 등 밴드도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K팝의 아버지 서태지가 등장합니다. 그는 댄스 뮤직, 팝과 힙합, 국악, 가요 등 모든 장르를 흡수하며 새 시대를 알렸습니다. 1990년대 말 H.O.T.의 등장과 함께 아이돌 시대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후 아이돌 육성도 한국적 스타일로 진행됐습니다. 오랜 연습생 생활, 멤버 간 역할 분담을 통한 약점 보완, 짧고 압축적인 활동, 격한 안무 등은 이후 K팝의 포뮬러가 됐습니다. 2010년대 K팝은 유튜브와 만나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됐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 문을 열었고, BTS와 블랙핑크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K팝은 한국을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로 만든 1등 공신이었습니다. 나아가 한글, 한식 등을 알리며 국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 빛나는 시간이 저물고 있는 것일까요. 요즘 K팝 업계에는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작년 하이브의 에스엠 인수 실패와 이 과정에서 벌어진 카카오의 주가조작 사건, 피프티피프티의 전속계약 분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진흙탕 싸움까지 터졌습니다.

과거 K팝 업계의 사고는 개인적 일탈이나 멤버 간 분쟁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릅니다. K팝이 매출 11조원이 넘는 산업으로 성장하자 자본 권력이 등장하며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으로 화제가 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만 해도 개인이 받는 돈이 1000억원이냐 3000억원이냐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사건을 이해하려면 풋백옵션, 콜옵션 등도 알아야 합니다. K팝 산업이 자본시장의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자본에 의한 시스템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자산이 된 K팝 산업이 이런 사건들로 인해 금방 시들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K팝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이들의 방식이 레거시가 되어 ‘레거시로부터의 자유’라는 K팝의 성공 공식을 깨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 말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민희진과 방시혁의 분쟁을 계기로 K팝 산업의 현재를 들여다봤습니다. 물론 그 분쟁의 과정도 되짚어봤습니다. 기자회견의 파장이 커진 이유도 다뤘습니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보며 몇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는 “날것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막말을 쏟아내며 각본 없는 것 같은 격정적 톤의 호소에 대중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교훈은 따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아이돌을 성공시킨 최고의 기획자입니다. 미국 노동자가 일하러 갈 때 쓸 것 같은 모자를 쓰고 나와 직장인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또 변호사를 배석시켜 신뢰도를 높이면서 욕설을 쏟아내는 등 철저히 준비한 ‘계획적 혼돈(controled chaos)’ 전략을 썼습니다.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으면 따라 해도 됩니다.

다음은 “바보야 문제는 문화야”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하이브는 짧은 기간 수많은 레이블을 설립하고 사들였습니다. 이 레이블을 관통하는 하이브의 문화는 없었습니다. 그냥 각자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갔고, 이 중 하나가 너무 잘나가다 방시혁과 부딪쳤습니다. 많은 M&A(인수합병)가 문화 충돌로 실패합니다. 이를 간과한 결과입니다. JYP를 이끌고 있는 박진영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은 새겨들을 만합니다. “JYP는 20년 넘도록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드는 고민을 했다.”

마지막 교훈은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어젠다를 통째로 세팅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점입니다. 하이브는 언론을 활용해 민희진을 코너로 몰고 갔고, 기자회견 직전 무속과 관련된 보도자료를 돌리는 천박한 작전까지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여론은 하이브에 싸늘하게 돌아섰습니다. 물론 법적인 문제와 계약은 차원이 다르지만 이로 인해 하이브란 기업의 이미지에 큰 상처가 난 것은 분명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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