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대파였다. 4·10 총선 얘기다. 국민의힘은 대파 때문에 참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파 덕분에 압승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억울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나온 것은 총선을 20여 일 앞둔 3월 18일.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니에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분히 ‘대파값을 하나로마트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민주당과 일부 언론의 편집은 달랐다. 뒤의 발언은 싹둑 잘라냈다. ‘대파값이 5000원을 넘나드는데 대통령은 875원이라고 한다’며 ‘도통 물가에는 관심이 없는 대통령과 정부’라고 몰아세웠다. 선전·선동에 능한 이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준 격이었다. 대파 헬멧을 앞세운 요란한 ‘대파 챌린지’가 줄을 이었다. 열렬 지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대파 혁명’으로 귀결됐다.
‘악마의 편집’에 당한 국민의힘으로선 기가 찰 일이다. 하지만 그리 억울해할 것도 없다. 국민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천정부지처럼 오르는 물가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과 한 개는 1만원, 대파 한 단은 5000원을 넘나들었다. 장보기 겁난다는 비명이 쏟아지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선동이 먹혀들었을 뿐이다.
문제는 대파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확대재생산되는 형국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물가가 뜀박질하고 있다. 농산품, 공산품, 외식비, 배달료, 스트리밍서비스요금 등 오르지 않는 게 없다.
4월 19일 기준 배추(10kg) 도매가격은 2만180원이다. 평년(9321원)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다. 양파(15kg)값도 2만4120원으로 평년 수준(1만5852원)을 크게 웃돈다. 배와 사과값은 1년 새 2배가량 올랐다. 그런가 하면 평양냉면값은 1만6000원까지 뛰었다. ‘면플레이션’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치킨, 김밥, 비빔밥, 김치찌개 값도 일제히 상승세다. 맥도날드와 피자헛은 5월 2일부터 햄버거값 등을 인상했다. 가정의 달인 5월이 걱정의 달이 됐다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심각한 것은 물가상승세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수요증가에서 기인한 게 아니다. 원가상승과 공급부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다. 중동전쟁 등으로 유가는 오름세다. 달러가치는 갈수록 강세다. 원화환율이 하락하니 수입물가가 비싸진다. 원가상승 요인이다. 기후변화로 과일과 채소의 작황은 좋지 않다. 정부가 공급 확대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외생변수마저 다스릴 수는 없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속 물가상승)이나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물가상승으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하는 상황)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고사성어에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는 말이 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이다. 초나라 항우(項羽)에 밀리던 한나라 유방(劉邦)이 대규모 식량창고를 탈취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뒤 승리를 거뒀다는 사례에서 기인한다.
4·10 총선의 교훈도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민주당의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 같은 주장이 먹혀들 수밖에 없고 ‘대파 사태’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다음 선거는 지방선거(2026년)와 대선(2027년)이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