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인공지능(AI)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손 회장이 AI혁명에 대응할 사업 준비를 구상 중이며 최대 10조엔(약 88조원)의 투자가 전망된다고 12일 보도했다.
손 회장의 핵심 구상 중 하나는 AI 전용 반도체의 개발이며 미국 엔비디아처럼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형식으로 2025년 봄 시제품을 제작해 같은 해 가을 양산 체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소프트뱅크가 90%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에 새 조직을 만드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Arm은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회로 설계도를 이미 엔비디아 등에 제공하고 있는 회사다.
AI 전용 반도체 개발은 Arm의 자금과 소프트뱅크그룹의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양산체제가 확립된 뒤에는 해당 사업 부문을 Arm에서 분리해 그룹 산하에 두는 방안도 검토한다. AI 전용 반도체의 제조는 대만 TSMC 등에 맡길 계획이다.
손 회장의 구상은 단순히 AI 전용 반도체 개발에 머무르지 않는다. 2026년 이후 자체 개발한 반도체에 기반한 데이터센터를 유럽과 아시아, 중동에 세우는 방안 등도 포함하고 있다.
AI 사업 확장을 위한 일련의 투자에는 수조엔의 자기 자본을 투입하고 중동 각국의 정부 펀드 등에서 추가 자금을 모아 총 10조엔 규모를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은 그동안 기술 변화에 맞춰 주력 사업을 전환해왔다. 1990년대에는 인터넷 기반 사업을 전개하다가 2000년대 후반에는 모바일 사업에 힘을 쏟았다.
2017년 비전펀드 운용 개시 이후에는 벤처 캐피탈 투자사업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비전펀드는 위워크, 우버 등 잇따른 투자 실패로 2022년에는 21조원의 기록적인 손실을 냈다. 손 회장은 지난해 6월 주주총회에서 위워크 투자에 대해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펀드였던 비전펀드는 직원도 100명 이상 해고했으며 새로운 투자도 잘 하지 않고 있다. 손 회장은 최근 비전 펀드를 거치지 않고 지주회사를 통해 주요 투자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그룹은 현재 비전펀드 자산의 상당부분을 매각하고 AI와 반도체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전환하고 있다.
손 회장의 이 같은 전략 변화는 Arm의 성공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Arm은 지난해 뉴욕시장에 상장된 후 기업가치가 약 1060억 달러로 치솟아 소프트뱅크 전체 자산가치를 앞질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