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하락기 토지 ‘줍줍’ 주의보…입지·용도 꼼꼼히 따져야[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4-05-22 06:00:01
수정 2024-05-22 09:18:09
고난도 분석 필요한 토지 투자, 개발 호재만 믿고 들어가면 손해
완만한 하락 추세를 이어가던 부동산 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정부가 본격적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13일 ‘부동산PF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이 자리에서 “관대함보다는 엄정하게 평가하도록 할 예정이며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해관계자가 손실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실 PF사업장을 엄격하게 선별해 시장 원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개발사업이 추진되던 토지들이 경공매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그 여파로 전반적인 부동산 시세가 다시 한번 출렁일지 주목된다. 2022년 하반기 금리인상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세는 조정을 거쳤으나 토지 시장은 주택과 오피스텔 등에 비해 그 속도가 느렸다.
이번 구조조정에 따라 일부 개발업체 및 시공사들은 위기에 직면하겠지만 지난 부동산 사이클을 경험 삼아 대폭 조정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올 매물을 노리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미 선구안을 가지고 경공매 학원을 찾기 시작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었다.
그러나 토지는 아파트와 달리 전문지식이 필요한 투자처로 꼽힌다. 그만큼 큰 수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획부동산이나 ‘묻지마 투자’의 위험을 피하려면 세부적인 개발계획 및 토지 용도에 대한 지식이 필수다. 금리 오르자 토지시장도 ‘꽁꽁’
PF 위기를 넘기지 못한 부동산 개발용 토지들이 속속 공매시장에 나오고 있다. 5월 15일 기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자산처분 플랫폼 온비드에서 매각 입찰이 진행되는 서울 소재 토지물건은 총 46건에 달한다. 이 중 감정평가액 100억원이 넘는 강남3구, 용산구, 성동구 토지도 있다.
그러나 이들 토지는 감정가대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역삼동 소재 4필지(2040.9㎡)는 감정가가 2307억원에 달했는데 5월 8일 최저입찰가 1684억원에 나왔지만 원매자가 없었다. 20일 1523억원에 다시 입찰을 진행한다.
용산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6호선 이태원역 상권 대로변에 위치한 용산구 이태원동 소재 토지 2필지(996.4㎡)는 10차례 유찰됐다. 10번째 입찰에선 최저입찰가가 기존 약 685억원에서 450억원까지 떨어졌지만 낙찰되지 않았다. 같은 용산 내 삼각지역 대로 앞 토지 453.5㎡는 감정평가액 390억원에서 첫 번째 입찰을 시작했지만 4차례 유찰된 끝에 260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이들 토지의 공통점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추진되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공매시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역삼동 부지 역시 유명 시행사가 2021년 오피스텔 개발 목적으로 1199억원에 사들인 곳이다. 강남 등 서울 핵심지역에 공사용 울타리가 쳐진 채 방치된 부지 대부분이 이렇게 매각을 진행 중이거나 경매, 공매시장에 나오기 직전인 상황이다.
이들 부지는 입지 자체의 가치는 우수하지만 가격대가 너무 높아 개인 차원의 투자는 불가능한 매물이다. 일부 토지는 단위면적 기준으로 쳐도 3.3㎡(평)당 3억원이 넘어 개발업자들도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렵다. 분양시장이 침체한 데다 금리 역시 높은 상태가 유지되는 등 고가의 토지가 활발하게 거래되던 부동산 호황기와 상황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호재 따라간 투자자들
전국 토지 거래량도 감소하고 있다. 다만 개별 토지의 특수성 탓에 평균 거래가격은 일관된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밸류맵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토지 거래량은 7만4905건으로 전분기 대비 16%,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토지 3.3㎡당 가격은 100만원으로 전분기보다 14% 떨어졌지만 지난해 1분기보다는 15% 올랐다.
시도별 거래량은 전남(1만2381건)과 경북(1만286건), 경기(1만239건), 충남(9580건) 순으로 많았다. 이들 지역 내에서도 거래는 주로 개발호재가 있는 곳에 집중됐다.
경기에선 1년 이상 화성이 최대 거래량을 유지했고 충남은 당진과 아산이 분기마다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들 지역은 서해선 복선전철 홍성~송산 노선 개통 수혜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노선은 5586만㎡ 규모에 달하는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화성 송산부터 평택, 충남 아산 인주와 당진 합덕을 거쳐 홍성까지 이른다.
전남에선 해남, 경북에선 경주의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해남은 친환경 기업도시 ‘솔라시도’ 개발 및 영농형 태양광사업, 광주~영암 간 초고속도로 건설 등 호재가 있다. 경북 경주는 KTX신경주역세권 신도시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역세권 개발사업의 근생 및 주차장시설용지는 지난 4월 16일부터 일주일간 공급돼 모두 매각됐다.
다만 일부 지역에선 지분거래가 활발해 실제 거래 규모 대비 거래량이 많이 집계된 것으로 보인다. 전경진 밸류맵 시장분석팀장은 “전남, 충남 등 거래량이 많았던 일부 지역에서 지분거래가 많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액·경매 투자에 집착 말아야
일각에선 이런 토지거래, 특히 지분거래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개발 호재로 인해 지역 땅값이 곧 급등할 것처럼 홍보해 투자자를 모으는 세력이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일명 ‘기획부동산’이 성행하며 개발이익을 보기 어려운 땅을 여러 명이 지분을 쪼개 사게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개인이 소액을 투자해 높은 수익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포장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 경매학원이 법인 형태로 수강생을 공동투자자로 끌어모아 경매물건을 낙찰받도록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매 낙찰가에 따라 학원이 수수료를 받게 되는 구조로 인해 일부 강사들은 수강생들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투자가치가 낮은 물건을 고가에 낙찰받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통상 경매는 소유주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세금을 체납해 압류된 물건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수하는 투자 형태로 알려져 있다. 지금 같은 부동산 경기 불황에 투자자들이 경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특히 토지는 당장의 경기와 상관없이 지역별 개발계획이나 미래가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투자처라 불황기에도 투자자들이 차익을 보기 위해 접근하기 쉽다.
그러나 일부 경매학원 사례에서 보듯 경매투자 역시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세밀한 물건분석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부동산 시세가 하락하는 시점에는 6개월에서 1년 전에 책정한 감정가에 따라 최저입찰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인근 토지거래 시세를 정확히 확인한 뒤 응찰에 나서야 손해 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시가 곧 개발이 되니 그 일대 땅에 투자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 역시 많은 투자자들이 개발제한구역 등의 토지에 ‘물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토지는 개발 잠재력을 지닌 밑그림이므로 같은 위치에 있어도 용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그만큼 투자 난이도가 높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개발계획이 있는 택지지구 인근 토지 매수는 리스크가 낮고 투자금액 대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방식인 것은 맞으나 관공서 확인 등을 통해 개발단계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아보고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택지개발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정주인구가 늘어나는 효과가 토지 시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역세권 개발의 경우 인근 아파트 수요가 많은 곳에 한해 추진 속도가 빨라지게 되므로 분양수요가 적은 충남 당진의 경우 합덕역 주변보다 도로, 철도, 산업단지 호재가 집중된 계획관리지역 토지의 시세 상승이 빠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