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국적은 글로벌" 이해진의 꿈 좌절?…네이버 해외 사업 어디로[라인야후 사태②]

라인 국적논란 이어지고 빅테크 '연합군' 필요성에 소프트뱅크와 손잡아
손정의, 야후·알리바바·쿠팡 투자 때는 지분 34~37% 확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라인프렌즈 강남 플래그십스토어의 모습./연합뉴스

“(라인의) 국적을 묻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이슈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2016년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

“한국산인지 일본산인지 인터넷 서비스에서는 의미가 없다.”-2013년 라인 가입자 3억 명 돌파 기념 기자간담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이사회 전 의장·글로벌투자책임자, 이하 이 의장)는 그동안 라인의 정체성을 ‘글로벌’로 정의했다. 외부 행사나 언론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유명하지만 라인의 국적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이에 대한 불편한 내색을 내비쳤다.

라인의 탄생과 성공신화는 극적이었다. 이 의장이 “일본 시장에서의 사업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고 말했을 정도다. 2011년 일본에 머물던 이 의장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모든 통신이 단절되자 메신저 서비스를 제안했다. 3개월 후 라인 서비스가 탄생했다.

13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의 모습./연합뉴스

개발은 검색 벤처기업 ‘첫눈’의 창업자인 신중호 라인 CPO(제품 책임자)가 맡았다. 라인을 만든 신 CPO는 지난 5월 8일 이사회에서 퇴진했다. 신 CPO 해임안이 의결되면서 라인야후 이사회는 전원이 일본인으로 구성됐다.

그동안 일본은 네이버 해외 진출 전초기지였다.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 중 일본에서의 사업이 가장 먼저 성공했고 몸집도 가장 크다. 네이버가 일본 시장 문을 두드린 건 2000년이다.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을 설립하며 게임과 포털 사업을 동시에 전개했다.

2004년 한게임재팬은 일본 게임 사이트 중 인기 순위 2위에 오르는 등 실질적으로 성과를 냈지만 야후재팬에 밀려 포털 사업은 자리 잡지 못했다.

2006년 검색업체 ‘첫눈’을 인수하면서 ‘NHN재팬’을 설립했지만 재도전도 실패하며 2013년 서비스를 폐쇄했다. 이 의장은 이때 일본 시장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직원들과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네이버의 투톱으로 불렸던 신 CPO는 라인 메신저 개발을 주도한 뒤 이어서 라인주식회사 이사를 맡아 서비스의 안정적인 안착을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엔 라인주식회사 공동대표에 올라 혁신 서비스 개발과 경쟁력 강화를 담당했다.

라인은 출시 이후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직원 대부분을 일본인으로 채용했다. 초기 개발진은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의 블로그 서비스 업체 라이브도어 개발자들이 대거 넘어오며 일본인 개발 인력도 늘었다.

라인 이용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2013년 1억 명을 돌파했다. 그때부터 라인의 국적 논란이 시작됐다. “연합군 필요” 소뱅과 손잡은 이유
9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소프트뱅크 본사 앞으로 직장인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은 건 2019년이다. 당시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계열사 Z홀딩스(야후재팬 운영사)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지분을 가진 A홀딩스 아래 라인야후(LY주식회사)가 자리 잡았다.

합작의 이유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빅테크 공룡기업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이 의장은 합작 법인 설립 이전 “거대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연합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일본 IT 업계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몸집을 키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손을 잡은 이유다. 일본에서 시끄러운 국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묘수이기도 했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처음부터 50%를 보장해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상법 전문가들은 해외시장 진출 시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법은 지분 50%를 확보해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지분 34%’ 이상만 확보해 독단적인 의사결정만 막는 차원에서 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처음부터 소프트뱅크에 지분 50%를 넘겨준 건 일본 시장에서의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네이버의 결정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 상법과 마찬가지로 일본 회사법에서도 지분 33.33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이사 선임 및 해임, 정관 변경, M&A 등 특별결의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손 회장은 야후, 알리바바, 쿠팡 초기 투자 시에도 지분 34~37%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네이버는 당시 국적 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소프트뱅크가 야후를 통해 장악한 일본 검색시장, 라인과의 출혈경쟁을 이어오고 있던 간편결제 시장에서의 지배력도 높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일 양국 기업의 유례없는 동맹으로 검색과 메시지, 콘텐츠, 엔터, 금융, 전자상거래를 아우르는 이용자 4억 명 규모의 ‘메가 플랫폼’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몇 년째 고생했는데 다 실패하고 지진까지 덮쳐서 회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라인이 나왔고 야후재팬과 통합해 10년 만에 일본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됐다. 글로벌 도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올해 큰 기회가 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2021년 3월 11일. 이 의장이 직원들에게 네이버의 글로벌 도전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에 대해 밝힌 소감이다. 아날로그 일본, 라인 기술력이면 디지털 강국
이 창업자의 꿈이 실현되는 듯했지만 라인이 일본의 디지털 산업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가자 일본 정부가 태클을 걸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 제한이 없다.

NTT(일본전신전화)의 기간통신 부문만 이를 20%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유출 사고’를 명분 삼아 지분관계를 정리하라고 한 데에는 라인을 통째로 삼켜 자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복안이 깔려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은 아날로그의 나라다. 기시다 내각은 아날로그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디지털 원칙’을 내세웠는데 그 일환이 바로 ‘플로피디스크 퇴출’이었을 정도다. 일본 정부 기관에서 플로피디스크와의 완벽한 작별을 고한 건 올해 1월이었다.

플로피디스크 외에도 일본의 아날로그 사랑은 유명하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팩스를 선호하고 2018년 사쿠라다 요시타카 사이버보안 담당 장관은 “컴퓨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일본이 그동안 라인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라인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인을 통해 메신저, 금융서비스,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각종 행정서비스의 디지털화도 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라인페이를 통해 공공요금(전기, 가스, 수도)이나 공금(세금이나 개호보험료, 공영 주택료, 보육료 등의 각종 요금) 지불이 가능하고 행정 수속의 신청이나 결제를 위한 창구로 라인을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데이터와 기술력이 필요한 인공지능(AI) 패권을 위해서도 라인이 필수적이다. 일단 라인 메신저만 해도 일본 사용자 9000만 명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데이터는 AI를 움직이는 혈류이자 심장이다. 기술력도 보유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라인이 등록한 AI 관련 특허는 200건이 넘는다. 일본은 AI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작년 5월 이후 자체 AI 인프라 구축 비전을 발표한 뒤 중장기 투자 계획을 내놨다. 투자하겠다고 한 금액만 10조 엔(약 90조원)이다. 소프트뱅크가 AI반도체부터 로봇까지 AI 투자 전쟁을 가속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일본어에 특화한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갖추고 생성 AI 서비스까지 내놓겠다는 전략도 포함됐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을 약속한 상태다.

일본 정부가 데이터, 금융,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디지털 경쟁력을 장악한 라인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는 이유다.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일부라도 매각할 경우 글로벌 전선도 가다듬어야 한다. 플랫폼 사업은 일본 대신 동남아시장에서의 성장에 속도를 내고 콘텐츠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승부를 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국내 법인 라인플러스가 지난 5월 14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용보장’을 선언한 것도 소프트뱅크와의 지분 협상이 물밑에서 진전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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