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1500명 증원’ 예정대로 간다…법원 “공공복리 중요” 쐐기 [민경진의 판례 읽기]

필수·지역의료 위한 증원 필요성 인정
‘의대증원 집행정지’ 의료계 신청 전패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추진해온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및 배정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정부의 의료 개혁 추진 동력은 한층 힘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의료계가 재항고하는 등 의·정 갈등으로 불거진 내홍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심 법원 “공공복리 옹호할 필요”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배상원·최다은)는 2024년 5월 16일 의대생, 교수 등 18명이 “의대 증원 및 배정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각하·기각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정부의 의대 증원 및 배정 결정은 공권력의 행사로 처분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향후 본안소송에서 보다 상세한 심리와 검토를 통해 처분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 사건 증원 발표와 배정은 증원 조치를 완성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며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양자를 엄밀히 구분할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그 처분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이 처분의 당사자는 각 대학의 장이고 제삼자인 신청인들에게는 원고적격이 없다”며 각하 결정했다. 항고심 재판부도 신청인 가운데 의대 교수, 전공의, 수험생은 1심과 같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의대 재학생들은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보다 원고적격 대상을 폭넓게 해석한 것이다. 재판부는 “헌법,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며 “의대생은 의대 정원 증원 처분으로 인해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들에 한해 집행정지 제도 요건 충족 여부를 본격적으로 심리했다. 행정소송법 23조는 집행정지 요건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것 △공공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으로 규정한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대 교육은 실습 등으로 상당한 인적·물적 설비가 필요해 일반적인 대학교육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의대생들이 과다하게 증원돼 의대 교육이 부실화되고 파행을 겪을 경우 의대생들이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대생인 신청인들에게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집행정지가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크다고 보고 의대 재학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전제로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신청인인 의대 재학생들은 부산대 소속으로 부산대의 기존 정원은 125명이다. 이번 증원 배정은 75명으로 2025학년도 정원은 총 200명이지만 모집인원 일부 감축으로 총 163명이 모집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 정도 규모의 증원은 집행정지 처분이 공공복리에 미칠 중대한 영향에 비해 과도한 게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의대생의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대학 측 의견도 존중해야”

한편 재판부는 정부가 제시한 의대 정원 증원 인원 2000명에 대해선 “향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재판부는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증원할 경우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과대학의 인적, 물적 시설 등 의대생들의 학습 환경과 관련한 사항은 대학 측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며 “정부는 거점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의 50% 내지 100% 범위 내에서 모집인원을 결정하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의대 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할 때 매년 대학 측 의견을 존중해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번 판결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각 대학이 지난 4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한 최대 1469명(차의과대학 제외)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교협은 오는 5월 말까지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 계획을 발표해 확정한다. 이후 대학들이 6월 초 모집 요강을 공고하면 2025년 의대 증원을 되돌릴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어진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실현되는 것이다.

다만 정부 계획대로 2026학년도부터 2000명씩 추가 모집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각 대학은 4월 말까지 대교협에 제출한 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서 증원분 2000명을 100% 반영한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의·정 간 대화를 통해 조정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전국 의사들은 법원 판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창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참 실망스러운 상황”이라며 “단순히 의대 정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과 향후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서 판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항고심 결정 다음 날 의대 증원 관련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재항고장 및 재항고 이유서를 항고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변호사는 “이미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에 모든 자료가 제출됐기 때문에 서울고법이 빨리 대법원으로 사건기록을 송부하고 대법원이 서둘러 진행하기만 하면 5월 말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돋보기]
의·정 갈등 장기화 불가피

수험생의 불확실성은 일단락됐지만 의·정 갈등으로 인한 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이 현실화될 조짐이다.

의대는 한 학기에 15주 이상 운영해야 하고 학생은 이 중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학점을 받아 유급 처리된다. 출석에 의한 유급 마지노선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5월 중순 이후다.

각 대학과 정부는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몇몇 대학은 1학기엔 한시적으로 유급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특례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F학점을 받더라도 유급시키지 않고 향후 2학기 내에 이수하도록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은 의사 국가시험 일정 조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현행대로라면 7월 원서를 제출하고 9~10월 실기시험을 본 뒤 2025년 1월에 필기시험을 보는데 일정을 연기하는 한편 실기보다 필기시험을 먼저 보는 방식으로 임상실습 시수(총 52주, 주당 36시간 이상)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미 사태 장기화 부담을 느낀 전공의들이 일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3개월 이상 수련 기간 공백이 생기면 전문의 시험 응시 시기가 1년 늦춰진다. 이 경우 2025년 전문의 배출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편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2024년 5월 21일 부산대 의대생 및 교수, 전공의 등 195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및 배정 결정 집행정지 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이로써 의료계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집행정지 신청 8건은 모두 각하됐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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