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뛴 나스닥' 상승률 우스운 원자재…하반기 주목할 투자처는?



최근 원자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찍는 ‘만물 랠리’가 펼쳐졌다. 올해 금, 은, 구리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지난 20일까지 원자재 상승률은 고점을 10번이나 갈아 치운 나스닥 등 주식시장 상승률보다 높았다.

‘위기 방파제’ 금이 먼저 빛났고 구리와 은 역시 신고점을 향해 달려갔다. 5월 20일 기준 금 현물 가격은 장중 2450달러를 돌파해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구리가격도 톤당 1만100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 금값은 소폭 하락해 지난 23일 2337.20달러에 마감했지만 올 들어 여전히 12.81%나 오른 가격이다.

통상 금 상승세를 따라가는 은 가격 역시 5월 17일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구리 가격은 하반기에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례적인 금·구리 동반상승

금과 구리가 동반상승하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 금은 전통적으로 위기에 강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주식시장이 불안해지면 위험 회피와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돈이 금으로 향했다.

반면 구리는 실물 경기가 양호할 때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 소비 지표부터 건설·제조업·항만 등 인프라 투자가 늘면 원자재인 구리값이 상승했다. 구리값으로 경기 회복이나 침체를 전망할 수 있어 ‘닥터 코퍼(구리 박사님)’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최근 금과 구리는 기존 공식의 반대로 가고 있다. 통상 달러가 오르면 내리는 ‘음의 상관관계’인 금은 달러가 초강세인 상황에서도 고공행진했고 구리 역시 각국 제조업 경기는 안 좋은데, 가장 뜨거운 원자재로 떠올랐다. 기존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상승세는 넘치는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이 촉발했다.

우선 금은 중앙은행, 특히 중국이 대거 사들였고 일반 투자자와 펀드의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중국은 2022년 10월 이후 계속 금을 사들이고 있다. 중국 금융자산 가운데 금 비중은 3.2%에서 4.6%로 늘었다. 2200여 톤을 보유하면서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금을 가진 나라가 됐다.

올해 1분기에도 터키와 함께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금을 사들였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위기가 지속되고 주식시장의 변동성도 커 금이 더욱 인기 투자처로 떠올랐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달러화 의존을 줄이고 통화가치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17개월 연속 금을 매입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금 비축을 장기적인 국제 전략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에 대비한 재정 안정화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중앙은행과 개인투자자들의 금 매입 행렬이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금 ETF 순매입이 늘었고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에서 골드바가 완판되는 등 금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멀어지면서 하반기에도 금 가격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62%가 향후 5년간 지급준비금 가운데 금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인플레이션과 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신흥국을 필두로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AI·반도체·전력 뒤에 구리 있다?구리는 광산 투자가 줄고 생산량이 부족해지자 가격이 급등했다. 여기에 새로운 수요처가 생겨나면서 구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5월 21일 기준 구리 현물 가격은 톤당 1만775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구리 제련소가 감산을 예고한 데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전력 투자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겹치며 구리 가격은 올해만 27.12% 올랐다.

구리 공급 위축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나마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캐나다 광산기업인 퍼스트 퀀텀 미네랄이 보유한 코브르 파나마 구리 광산에 대해 20년간 부여된 운영권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광산 운영이 중지되면서부터 구리값의 반등 전환이 시작됐다. 해당 광산의 연간 구리 정광 생산량은 약 40만 톤이며 이는 2024년 구리 정광 전체 생산량 추정치의 1.7%에 달한다.

김도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수급 불균형 정도가 조금만 엇나가도 금속 가격 변동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1.7%에 달하는 구리 공급이 없어지는 것은 단기적인 공급 부족 현상을 크게 야기할 수 있기에 구리 가격은 이때부터 바닥을 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2023년 10월 글렌코어는 호주 2위 구리 생산량을 기록하던 마운트 아이자 구리 광산 3개를 정광 고갈을 이유로 2025년 말까지 점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에서는 구리 제련업체들이 생산 감축에 합의했다. 중국 전체 제련량은 글로벌 전체 제련량의 약 5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생산 감축은 치명적이었다.

지난 3월 초 중국 CNMC가 보유한 잠비아 참비시 구리 제련소는 올해 생산량을 20%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이 제련소가 연간 제련하는 구리 공급량이 약 25만 톤 수준이기에 20% 감축 자체가 2024년 글로벌 전체 제련량 추정치를 0.2%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2024년 3월 중순 중국 19개 구리 제련업체들은 생산 감축을 논의했다. 그 시기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약 5~10%의 생산량 감축 목표가 제시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소비의 증가다. 우선 중국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발표했다. 구리는 가장 효율적인 산업용 금속이다.

건설, 제조, 항만 등 전력 설비가 필요한 모든 인프라에 구리가 들어간다. 구리의 전기전도는 은 다음으로 높다. 전도가 가장 높은 은은 공기 중 산소와 산화되기 쉽고 산화 시 전기전도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무엇보다 비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지만 구리는 은 대비 약 94%의 전기전도를 갖고 있으면서 가격은 은의 1.2% 수준이다. 구리가 대체불가능한 이유다. 알루미늄은 구리의 65% 전기전도도를 띠고 있지만 효율성이 급격하게 떨어져 전류 손실이 크기 때문에 구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AI 열풍이 불면서 구리의 몸값은 더 비싸졌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구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AI가 ‘지능’을 갖기 위해서는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생성형 AI는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결과 값의 오차율이 감소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데이터 학습을 위한 AI 데이터센터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미국 테크기업들이 세계 각지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에 꼭 필요한 건 두 가지다. 고성능 반도체와 이를 감당할 전력설비다. 구리는 반도체 원료로도, 전력설비에 들어가는 전선과 방열설비, 변압기의 재료로도 많은 양이 사용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시카고 데이터센터의 구리 사용량을 분석해보니 총 2177톤의 구리가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반도체와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전력 수요는 향후 3년 동안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AI 및 가상자산을 위한 전력소비는 2026년까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동안 구리값의 랠리를 전망한다. 이영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구리 정광 쇼티지가 당분간 지속되면서 구리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되고 친환경·전력 수요의 구조적인 성장이 중장기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 “중국의 수요는 예상보다 부진할 수 있어 가격 상승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엘니뇨 가고 라니냐 온다…코코아 지고 곡물 뜬다

기상이변이 끌어올린 원자재도 있다. 올해 말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이 50%에 달한다는 호주 기상청의 예측이 나오면서 천연가스와 곡물 가격을 밀어올렸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0.5도 이하인 상황이 5개월 넘게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북미에는 강추위가 몰려오고 남미는 가뭄에 시름하며 호주와 동남아시아에는 폭우가 내린다.

이 지역의 농산물 생산뿐 아니라 난방 에너지인 천연가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반등하고 있는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2월 최저가 대비 70% 넘게 오른 상태다.

상반기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지역 가뭄이 몰아닥치면서 코코아와 커피 가격이 급등했다. 하반기에는 라니냐가 예고되면서 전문가들은 대두, 옥수수 등 곡물 가격 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라니냐는 남미 태평양 연안의 가뭄, 북미와 남미 연안의 겨울 한파, 호주의 이상고온 등이 동반된다”며 “이에 따라 대두, 소맥을 비롯해 주요 농산물 작황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옥수수와 대두 등 가격이 수년간 하락한 탓에 미국 곡물 농가들이 파종 면적을 축소했고 세계의 밀밭이라 불리는 흑해 지역에서는 가뭄에 서리까지 닥쳐 공급 충격은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산물 섹터가 2022년 하반기 이후 지속된 약세를 딛고 상승 반전했다”며 “단기적으로는 엘니뇨가 소멸하고 기상이변이 중립 구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 이후 라니냐 발생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곡물 중심의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로 상향 조정한다”고 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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