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연구원이 약을 안 먹는 이유? [강홍민의 굿잡]

임현우 대웅제약 신약 디스커버리센터 대사신약팀 PL(Project Leader)

임현우 대웅제약 신약 디스커버리센터 대사신약팀 프로젝트 리더.


제약업계에서 소위 ‘잭팟’이라 불리는 신약개발은 최초 기획부터 상용화까지 백만분의 1이 채 안 되는 가능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소 5000개에서 최대 1만 여개에 달하는 후보물질 탐색부터 여러 단계의 임상시험이라는 허들을 넘어야만 성공이라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평균 10년에서 15년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는 신약개발은 농부가 밭을 일구듯,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 연구원들의 각고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만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현우 신약개발연구원(대사신약팀 PL)은 대웅제약 입사와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신약개발성공의 맛을 본 운 좋은 연구원으로 꼽힌다. 대웅제약 내에서 최연소 PL로 승진한 임 연구원을 만나 ‘신약개발연구원’의 세계를 들어봤다.

하나의 신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었어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균 15년이 걸린다고 해요.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들어와 평생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셈이죠. 그런 면에서 전 운이 좋은 편이죠.(웃음)”

개발에 참여했던 신약이 최근 출시됐다고 들었어요.
“작년에 출시된 당뇨 치료제 ‘엔블로’인데요. 엔블로는 GC녹십자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해 개발한 신약인데,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시작됐던 프로젝트였어요. 비임상부터 허가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운 좋게도 참여하게 됐죠.”

대웅제약에서는 어떤 분야를 맡고 있나요.
“대웅제약 신약 디스커버리센터 내 대사신약팀 PL(Project Leader)로 근무 중입니다. 대사신약팀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3년 대체복무를 하고 바로 신입으로 입사한 케이스인데요. 사실 신약개발도 분야가 굉장히 다양한데, PL을 맡기 전까지 독성평가 연구를 담당했어요. 이 분야는 개발 중인 약물이 사람에게 어떠한 독성이 유발하는지 임상시험 전부터 상용화되기까지 실험을 통해 예측하는 일입니다.”


"신약개발공모전을 통해 연구원들의 아이디어 모집해 신약 개발 분야 선정...개발 질환 설정 후 치열한 시장조사 거쳐 개발여부 결정"



신약개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나요.
“대부분의 제약회사가 비슷하겠지만 경영진에서 추천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연구진들이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엔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신약개발공모전을 진행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데요. 몇 년 전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제가 낸 아이디어가 선정돼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해요.”

어떤 아이디어였나요.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인 내용이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 공모전을 통해 제가 프로젝트 리더로 승진했습니다.”

신약개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우선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은 목표 질환 혹은 질환군을 정하는 게 첫 번째인데요. 치료하고 싶은 질환이 정해지면 그 질병에 대한 원인과 타깃을 선정합니다. 그 이후 타깃에 작용할 수 있는 치료제의 근간인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그 구조를 연구를 통해 가장 치료 효능이 최적화될 수 있는 예상 물질을 선정합니다. 연구가 어느 정도 되면 임상시험에 들어가게 됩니다.”

새로운 물질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가요.
“신약을 구성하는 핵심 물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이 물질이 신약을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약사에서 개발한 이 핵심물질은 보통 특허를 신청해 놓기 때문에 타사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거든요. 예를 들어, 타 제약사에서 당뇨치료제를 개발했다면, 우리는 그 신약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물질보다 더 효과가 높은 또 다른 물질을 찾아내야 하죠.”

어떻게 보면 핵심물질을 개발·연구하는 건 맨 땅의 헤딩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그렇죠. 기존의 물질보다 더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없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야하니까요. 그 구조를 찾은 다음 유효성·독성평가, 임상시험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게 되죠.”


"모든 약에는 독성이 존재,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의 투약 범위 및 주기를 분석해 독성반응이 일어나는지 분석"


유효성·독성평가는 구체적으로 뭔가요.
“핵심물질을 발견한 이후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요. 먼저 유효성 평가는 저희가 찾아낸 물질이 실제 작용을 하는지를 실험동물을 통해 테스트하는 작업이에요. 실험쥐나 레트와 같은 실험동물에 약물을 투여해 저희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지 평가하는 작업이죠. 유효성 평가가 확인되면 독성평가를 하게 됩니다. 효과만큼이나 독성이 얼마나 있고, 안전한지를 검증하는 실험인 셈이죠.”

독성평가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유효성평가와 마찬가지로 실험동물을 통해 평가하는데요. 사실 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어요. 약을 얼마나, 자주 투약했을 때 독성반응이 일어나는지 예측을 하기 위해 진행되는 과정이죠. 독성평가가 끝나면 임상시험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동물실험은 어디에서 하나요.
“간단한 실험쥐는 내부에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외부업체를 통해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개발과정에서 독성실험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데, 만약 연구소 자체 내에서 평가를 하게 되면 연구결과를 부풀리거나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식약처에서 인증한 기관에서 독성실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임상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보통 동물실험을 통해 해당 물질의 유효성 및 안전성을 확인하고, 이후 사람 대상으로 임상시험 수행 여부를 결정하게 되거든요. 임상시험은 건강한 사람에서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1상과 유효성을 탐색하는 2상, 1·2상을 확증하는 3상 시험을 수행하게 되죠. 3상 시험까지 성공하게 되면 식약처 등 규제기관의 검초를 거쳐 최종 허가를 신청하게 됩니다.”

임상시험 단계도 시간이 꽤 걸리겠군요.
“보통 이 과정이 6~7년 정도 걸립니다.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식약처 허가 검토·승인 기간도 약 2년 정도 걸리고요. 승인이 난 이후 생산하고 시장에 내놓기까지 또 수년의 시간이 걸리니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어요.”

비용은 물론, 수년 간 투자했는데 끝내 빛을 보지 못하는 신약도 많겠네요.
“물론이죠. 임상시험까지 도달했는데 개발을 접는 경우도 많아요. 동물실험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3상에서 효능이 확인되지 않아 접는 경우도 있어요. 그 경우 연구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속상하죠. 개인적으론 프로젝트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보니 또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하려고 합니다.(웃음)

모든 과정이 다 중요하겠지만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꼽자면 뭔가요.
“여느 제약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신약이 시장에 나왔을 때 과연 경쟁력이 있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연구기간이 10년 이상 걸리고 투자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다 보니 시장성, 개발 가능성 등 아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거든요. 더군다나 연구를 시작한다고 해도 개발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시중에 비슷한 약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단점들이 있는지, 개발을 했을 때 어떤 부분을 더 강화할 수 있는지 등등을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대웅제약은 신약개발 조직을 특이한 구조로 운영된다고 들었어요.
“저희 신약개발팀은 각 질환별로 팀이 구성돼 있는데, 제가 알기론 이렇게 구성된 곳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대게 신약탐색팀, 비임상평가팀, 유효성평가팀 등으로 신약이 개발되는 순서로 팀을 나누는 반면에 대웅제약은 대사질환·자가면역질환·항암전문 등 질환별로 나눠 팀체제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신약센터 내 AI신약팀을 신설해 신약에 쓰일 물질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찾는 도전도 하고 있습니다.”

질환별 팀체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저흰 이 제도를 ‘익스트림 팀’체제라고 불러요. 각 질환별로 팀구조를 변화시킨 이후 과제에 더욱 몰입할 수 있고, 개발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는 장점을 발견했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신약개발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려 한 연구원이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퇴직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경우 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데, 팀 구조에 변화를 주면서 연구원 개개인이 성취감을 더 얻는 것 같아요.”

근무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저희는 스마트워크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각자 상황에 따라 일찍 나오기도 하고,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는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어요. 주말에 근무하는 경우에는 대체휴일을 쓰기도 합니다.”

수의학과 출신으로 알고 있어요. 수의학과 전공에서 신약개발연구원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사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질환으로 아픈 환자들을 위해 세상에 없는 약을 개발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 도전하게 됐죠.”

신약개발연구원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부분이 있다면 뭔가요.
“말씀드린 대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수많은 파트, 그리고 연구원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각 파트별로 쓰는 용어나 업무가 달라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전문성인데요. 독성평가 연구원의 경우, 독성시험 결과를 고찰하고, 혈중 약물의 노출, 심전도검사 등 도출된 결과를 규정하고 문헌자료를 토대로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게 기본인데요. 그 과정에서 전문성이 없다면 분석할 수 없게 되겠죠. 덧붙이자면, 연구원의 자격요건은 석사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지원이 가능합니다.”

관련 학과 졸업은 필수인가요.
“바이오나 제약 등 관련학과가 아무래도 도움이 되죠. 만약 대학원 진학을 앞둔 상황이라면 간판(학벌) 위주로 진학 여부를 결정하기 보다는 실제 해당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수행을 많이 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보통 최근 2~3년 내에 해당 실험실에서 어떤 논문들이 나왔는지 살펴보면 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대학원 이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제약사에서 주로 어떤 연구원을 원하는지 제일 먼저 파악하고, 이를 본인 연구와 잘 연관시켜 스토리텔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의 신약 연구소 홈페이지나 보도자료 등을 살펴보면 해당 제약사가 어떤 특정 분야, 파이프라인에 관심이 많은 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수년 간 연구한 신약이 환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뿌듯해...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성공에 대한 목마름 있어"


이 직업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장점은 내 손으로 평가한 약물이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이죠.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개발과정이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면 아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죠. 반면 단점 역시 타 직무에 비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죠.”

직업병이 있나요.
“연구원마다 좀 다른데요. 약효 평가 연구원은 약의 효능을 굉장히 믿는 편인 반면에 저같이 독성평가연구원은 약을 잘 안 먹습니다. 모든 약에는 다 독성이 있거든요. 우리가 흔하게 먹는 진통제에도 독성이 존재하죠. 그 독성을 매일 보는 직업이라 그런지 웬만해선 약을 잘 안 먹는 편이에요.(웃음)”

그럼 집에 비상약이 많지 않겠군요.
“정말 필요한 약 빼곤 없어요. 다만 모든 독성평가연구원이 그렇진 않을 거예요.”

신약개발연구원의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의학 분야가 굉장히 빠르게 발전되고 있지만 아직도 희귀질환이나 난치성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죠. 무엇보다 앞으로도 개발해야 할 신약들이 많기 때문에 신약개발연구원의 할 일은 많습니다.(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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