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떠난 지 100일…김인병 응급의학회 이사장 “전국 응급실 상황, 막바지 몰려”

“말 그대로 인력 갈아넣고 있다”, 사태 해결 기약 없어
“필수의료 전공의 절반, 영영 복귀 안 한다”는 주장도 나와

김인병 대학응급의학회 이사장이 29일 ‘한국 응급의료의 현실’을 주제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주최한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민보름 기자


2월 20일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지 이제 100일이 된 가운데 응급 의료현장이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29일 오전 ‘한국 응급의료의 현실’을 주제로 올해 첫 미디어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날 연사로 나선 김인병 대학응급의학회 이사장은 “현재 말 그대로 인력을 갈아 넣고 있으며 교수, 전임의 등 남은 인력으로는 응급실이 얼마 못 간다”면서도 “그동안 정부 입장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전공의들을 만나더라도 (복귀해달라면서) 해줄 말이 없다”고 밝혔다.

의정갈등이 본격화된 올해 2월 말 이후로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줄고 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경증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지 않거나, 병원에서 수용 가능한 환자 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학회가 제공한 경기도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4만9458명에 달했던 응급실 내원환자 수는 2월 12만6549명, 3월 11만1512명, 4월 11만3403명을 기록했다. 특히 4월은 내원환자 수가 전년 대비 75.9%에 그치며 대폭 줄었다. 그러나 중증환자 수는 9000명으로 전년 동월 9300명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응급의학회가 응급 수련병원 59곳의 수련과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의정갈등 이전과 이후 근무 전문의 수 역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갈등 전에는 주간 근무 전문의 수가 평균 5.4명이었지만, 이후에는 1.8명으로 줄었다. 야간 근무 전문의 수 역시 4.7명에서 1.6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에 대해 김인병 이사장은 “수련병원이 지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료기관인데 2명 이내 선에서 근무 스케줄을 돌리면 환자를 볼 수 없는 수준이 돼 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속초에 있던 심근경색 환자가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안 돼서 고양시까지 오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응급의학회는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필수·비(非)인기학과 전공의들 상당수가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매년 기본적인 응급의학과 전공의 티오(TO)가 160명으로 정해진 가운데 지원자 수가 이미 지속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돌아올 전공의 수가 절반이 안 될 것”이라며 “저만 해도 민형사 2건이 진행되고 있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위험에 크게 노출된 응급의들의 불안감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의료체계와 수가 개선, 지역의료 살리기 등 정부가 제시하는 거대 담론은 좋아 보이나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냐는 것”이라면서 “언제까지 지금의 어려움이 지속될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들은 큰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3일 기준 전국 수련병원 211곳 레지던트 총 1만501명 중 839명만 출근해 출근율 8%를 기록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에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정원 1109명을 확정했으며 이듬해부터 기존 방침대로 2000명 증원에 나설 계획이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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