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논란 아파트 사전청약 폐지…MB 때와 달랐던 것[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입력 2024-06-02 13:27:44
수정 2024-06-02 13:27:44
아파트 사전청약제도가 폐지된다. 사전청약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사전청약제도의 폐지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
사전청약제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7월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전청약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이다.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과 2000년대 들어서 세계적으로 휩쓴 저금리 물결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집값은 하늘 높이 올랐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84.5%나 상승했다.
특히 수도권(120.8%)이 지방에 비해 크게 올랐는데 부산이 39.0% 상승하는 동안 서울은 그 3배가 넘는 130.4%나 올랐던 것이다. 이는 지방에 비해 수도권, 특히 서울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가 집값 잡으려 도입한 사전청약제도문제는 흘러 넘치는 유동성과 수도권의 공급 부족을 감안하더라도 집값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전국이 48.5%에 올랐는데, 서울은 50.5% 상승에 그쳤다. 서울 전세가 상승률이 전국 평균보다 조금 높기는 하지만 매매가만큼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차이만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매매 시장에 팽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수가 모자랐기 때문에 실수요 측면에서도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집값 상승이 기대되기는 했지만 이를 기대한 투자 수요가 수도권에 몰리면서 과도하게 집값이 오르게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이명박 정부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첫 번째는 보금자리주택의 공급이다. 수도권 집값이 지방보다 비싼 이유는 공사비 때문이 아니고 땅값이기 때문에 수도권에 싸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부지를 싸게 공급해야 했다. 이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 소유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린벨트 내에 있는 민간 소유 토지를 싸게 수용하여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여 보금자리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파트가 금방 뚝딱하고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지를 조성하고 아파트 건물을 지으려면 아무리 속도전으로 해도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인부를 두 배로 투입한다고 공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없는 것이 건설 분야이다. 멀건 콘크리트 반죽이 딱딱한 구조물로 굳어가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에서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을 인지하고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해도 공급 부족 현상이 시장에서 해결되는 시간은 3년 후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3년의 기간 동안 집값이 크게 오를까봐 실수요자들이 동요했던 것이고, 집값 상승을 기대한 일부 투자자들이 가세하면서 실제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했었다.
이를 방지하고자 이명박 정부에서 좋게 말하자면 ‘묘수’, 나쁘게 말하자면 ‘꼼수’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사전청약제도이다. 유명한 맛집에 사람들이 너무 몰리고 동시에 주문(청약)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번호표를 먼저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사전청약제도라 하겠다. 기다리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주니 수요자들은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도가 불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서울 강남에 30평대 아파트를 10억원 이하로 공급하기 위하여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한다고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고 예약금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적법한 것일까, 불법적인 것일까?
당연히 불법이다. 그것을 허용하면 (주택 청약에 목매는) 실수요자들에게 본청약은 아니니 사전 예약금으로 500만원씩만 받는다고 하고 1만 명 정도의 실수요자들로부터 예약금 500억원을 챙겨 해외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 사람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이런 사기의 위험이 있기에 법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이상의 대지를 확보한 이후에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 민간 건설사가 일반인들에게 분양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부지는 100% 확보해야 하고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된 이후에나 분양 신청을 받을 수 있다.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제도라 하겠다.
그런데 똑같은 행위를 개인이 하면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지만 정부에서 하면 이를 ‘사전청약제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파트 건설부지를 소유한 민간인 지주들에게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전청약을 받았던 것이다. 쉽게 말해 남의 땅에 줄을 그어놓고 아파트 분양을 한다고 홍보를 한 것이다. 이런 불법적인 요소가 있지만 공익을 위해서 사전청약제도를 허용했던 것이다.
2021년 들어서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문재인 정부에서는 3기 신도시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전청약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시 과열된 수요를 식히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실수요자 불만 터지자 폐지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 이런 사전청약제도를 폐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청약제도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부지의 수용이 늦어지는 등의 이유로 공사가 계속 늦어지면서 애초에 약속한 시기에 본청약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사전청약제도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다. 이렇게 기다릴 것이면 애초에 다른 곳에 청약하거나 기축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후분양 제도가 불확실성이 가장 없는 제도라고 하면 사전청약제도는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 제도라 하겠다.
게다가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공사비가 애초에 계획한 것과 달리 크게 오르자 사전청약 시 예상했던 분양가와 조건은 본청약 때와 다를 수밖에 없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오른 원가를 무시하고 애초에 계획한 대로 분양한다면 그 손실은 그대로 정부의 몫이 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손실을 세금으로 메꾸어야 하니 전 국민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전청약과 무관한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또 당첨자와 같은 일부 청약당첨자에게 퍼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결국 실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 청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는 손해도 있고, 공급자인 정부 입장에서는 급격한 공사비 증가에 따른 사업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에 사전청약제도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는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시장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 제3기 신도시의 공급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3기 신도시 후보지들에 토지 수용이 모두 끝나고 확실한 공급 일정이 나왔으면 굳이 이 시점에서 사전청약제도를 없앨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전청약제도를 지금 없앤다는 의미는 현시점에도 향후 공급 일정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토지 수용 지연 등 시장의 불확실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확실한 공급 일정이 나온 후에 본청약으로 바로 진행하는 것이 신뢰성 측면에서 더 낫다고 본 것이다. 한마디로 3기 신도시를 통한 주택 대량 공급이 현재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