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3억까지 갔던 제주, 최악의 미분양 사태['피크아웃' 제주]
입력 2024-06-10 07:10:01
수정 2024-06-15 06:02:50
최근 제주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물가가 크게 올랐고 흑돼지 논란 등으로 자영업자들이 신뢰를 잃으면서 오르며 관광객들의 '가격 저항성'이 높아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일본, 베트남, 발리 등 가격이 저렴하고 낯선 도시로 떠나는 관광객이 늘면서 제주의 실물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 1분기 제주에서는 생산, 소비, 사람이 모두 줄었다. 제주가 '눈물의 섬'이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까지만 해도 내국인 1380만 명이 제주를 찾았고 '제주 살이'는 낭만의 대명사가 돼 아파트 값을 밀어올렸다. 이제는 제주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졌다. 1분기 제주 인구 1678명이 순유출 됐는데, 20대의 이탈률이 가장 높았다. 관광지로서도, 투자지로서도 정점을 찍고 내려온 제주 현장을 둘러봤다.
지난해 아파트 값이 13억원까지 치솟았던 제주가 최악의 미분양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물량의 10%가 제주에 쌓였고 아파트뿐만 아니라 연립주택, 단독주택 등 매매가격 하락으로 부동산 열기가 급격하게 식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제주 미분양 주택은 2837가구에 이른다. 이 중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 역시 1341채로 절반에 이른다.
한때 ‘제주살이’ 열풍으로 활기가 넘치고 중국인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도 많았지만 경기침체 등의 직격탄을 맞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 부동산 경기가 힘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분양가다.
지난 4월 기준 제주 아파트 평균 분양 가격은 3.3㎡(1평)당 2482만원으로 전국에서 서울(3891만원)과 대구(3066만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고분양가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제주 건설업자들은 물류비용 등 공사비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제주가 외지인, 해외 투자 수요에 분양가가 고공행진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제주시 등 공항과 가까운 시내뿐만 아니라 읍·면 지역 역시 분양가가 높게 형성됐다. 지난 3월 기준 읍·면 지역 미분양 주택(1735채) 가운데 5억원 이상이 955채(7억원 이상 828채)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부 건설업체가 최대 분양가 반값 할인, 중도금 무이자, 한 달 살기 후 분양 등 마케팅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최근엔 제주 지역 도급 상위권이었던 한 중견 건설업계가 아파트 미분양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맡았던 5건의 관급 공사 등이 줄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건설업체는 제주에서 유명 빌라단지를 시공해 왔다.
제주는 한때 중국 관광객, 유명 연예인들의 제주 살기 유행으로 세컨드하우스 수요가 몰리며 투자 붐이 일었다. 제주로 들어오는 인구수도 자연히 늘었다. 제주 지역 아파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가격 상승률이 34.9%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게 올랐다. 이 기간 동안 도내 제주시와 서귀포시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전국에서 상위 1~2위를 다투기도 했다.
국내 부동산에 일정 금액(50만 달러 또는 5억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인 ‘부동산 투자 이민제’가 도입돼 중국인 투자자가 제주로 몰렸다. 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코로나19로 차이나 머니가 끊긴 후 제주 부동산 경기도 주춤했다. 2017년 초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며 정점을 찍은 제주 아파트값은 그렇게 하락장에 진입했고 2020년까지는 줄곧 집값이 떨어졌다.
집값이 반등하기 시작한 건 2021년부터다. 전국 집값이 폭등하면서 제주 역시 외지인 자금이 다시 몰려왔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대단지 아파트가 몰려 있는 노형동이 상승장을 이끌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한화꿈에그린’ 전용 108㎡는 2022년 최고 13억원에 거래됐다. 현재는 2021년 수준인 9억원 후반~10억원 초반으로 호가가 떨어졌다.
노형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는 “노형동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고 학군이 따라올 지역이 없다”며 “노형동 시세는 여전히 비싼 편이지만 빌라나 주택, 외곽 타운하우스 등은 타격이 큰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부동산 불경기는 제주 전체 실물경제를 침체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불경기 여파로 제주도 내 건설 취업자는 급감해 3만 명 초반대에 머물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건설단체연합회 관계자는 “IMF 때보다 더 어려운 현재의 건설경기 부진이 장기화된다면 제주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침체된 제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건설경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면서 자산가치나 투자수익률 역시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대다수의 지역에서 임대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가격, 공사비 상승세 등 영향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하고 있지만 제주는 아니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주의 중대형상가 투자수익률은 0.59%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낮았다. 소규모 상가 투자수익률 역시 0.57%로 경남과 함께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반면 공실률은 다른 시도보다 낮았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제주도는 실수요자가 아닌 외지인 투자자를 겨냥한 고분양가 주택이 많았는데 각종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이들 수요가 줄어든 것”이라며 “분양가 안정과 금리인하 등 금융 여건이 받쳐주고 한시적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투자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지난해 아파트 값이 13억원까지 치솟았던 제주가 최악의 미분양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물량의 10%가 제주에 쌓였고 아파트뿐만 아니라 연립주택, 단독주택 등 매매가격 하락으로 부동산 열기가 급격하게 식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제주 미분양 주택은 2837가구에 이른다. 이 중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 역시 1341채로 절반에 이른다.
한때 ‘제주살이’ 열풍으로 활기가 넘치고 중국인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도 많았지만 경기침체 등의 직격탄을 맞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 부동산 경기가 힘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분양가다.
지난 4월 기준 제주 아파트 평균 분양 가격은 3.3㎡(1평)당 2482만원으로 전국에서 서울(3891만원)과 대구(3066만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고분양가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제주 건설업자들은 물류비용 등 공사비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제주가 외지인, 해외 투자 수요에 분양가가 고공행진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제주시 등 공항과 가까운 시내뿐만 아니라 읍·면 지역 역시 분양가가 높게 형성됐다. 지난 3월 기준 읍·면 지역 미분양 주택(1735채) 가운데 5억원 이상이 955채(7억원 이상 828채)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부 건설업체가 최대 분양가 반값 할인, 중도금 무이자, 한 달 살기 후 분양 등 마케팅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최근엔 제주 지역 도급 상위권이었던 한 중견 건설업계가 아파트 미분양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맡았던 5건의 관급 공사 등이 줄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건설업체는 제주에서 유명 빌라단지를 시공해 왔다.
제주는 한때 중국 관광객, 유명 연예인들의 제주 살기 유행으로 세컨드하우스 수요가 몰리며 투자 붐이 일었다. 제주로 들어오는 인구수도 자연히 늘었다. 제주 지역 아파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가격 상승률이 34.9%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게 올랐다. 이 기간 동안 도내 제주시와 서귀포시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전국에서 상위 1~2위를 다투기도 했다.
국내 부동산에 일정 금액(50만 달러 또는 5억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인 ‘부동산 투자 이민제’가 도입돼 중국인 투자자가 제주로 몰렸다. 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코로나19로 차이나 머니가 끊긴 후 제주 부동산 경기도 주춤했다. 2017년 초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며 정점을 찍은 제주 아파트값은 그렇게 하락장에 진입했고 2020년까지는 줄곧 집값이 떨어졌다.
집값이 반등하기 시작한 건 2021년부터다. 전국 집값이 폭등하면서 제주 역시 외지인 자금이 다시 몰려왔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대단지 아파트가 몰려 있는 노형동이 상승장을 이끌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한화꿈에그린’ 전용 108㎡는 2022년 최고 13억원에 거래됐다. 현재는 2021년 수준인 9억원 후반~10억원 초반으로 호가가 떨어졌다.
노형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는 “노형동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고 학군이 따라올 지역이 없다”며 “노형동 시세는 여전히 비싼 편이지만 빌라나 주택, 외곽 타운하우스 등은 타격이 큰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부동산 불경기는 제주 전체 실물경제를 침체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불경기 여파로 제주도 내 건설 취업자는 급감해 3만 명 초반대에 머물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건설단체연합회 관계자는 “IMF 때보다 더 어려운 현재의 건설경기 부진이 장기화된다면 제주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침체된 제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건설경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면서 자산가치나 투자수익률 역시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대다수의 지역에서 임대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가격, 공사비 상승세 등 영향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하고 있지만 제주는 아니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주의 중대형상가 투자수익률은 0.59%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낮았다. 소규모 상가 투자수익률 역시 0.57%로 경남과 함께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반면 공실률은 다른 시도보다 낮았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제주도는 실수요자가 아닌 외지인 투자자를 겨냥한 고분양가 주택이 많았는데 각종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이들 수요가 줄어든 것”이라며 “분양가 안정과 금리인하 등 금융 여건이 받쳐주고 한시적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투자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