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방수·태엽·크로노미터 세계 첫 인증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롤렉스①

중년 이상에게 롤렉스는 명품 시계의 대명사로 통한다. 아버지로부터 롤렉스를 물려받은 아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필자가 30여 년 전 결혼할 무렵 까르띠에, 오메가가 예물 시계로 부상했고 지금은 필립바텍, 바쉐론콘스탄틴, 피아제, 랑에운트죄네 시계가 최고의 명품으로 꼽힌다. 그래도 그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롤렉스 금시계가 최고였다.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방수시계, 세계 최초의 자동 태엽시계, 세계 최초로 시계에 날짜 표시, 세계 최초 크로노미터(Chronomètres) 인증 손목시계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롤렉스의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사진①)는 1881년 독일 남동부에 있는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19살이 되던 해 그는 스위스 라쇼드퐁 지방에 있는 시계 무역 회사에 취업했고, 그곳에서 시계 제조와 유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1900년대 초에 사람들은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무브먼트(Movement·시계가 작동하도록 하는 내부 장치)는 크기가 작아 회중시계(휴대용 소형시계)만큼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해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를 사용했다. 그러나 빌스도르프는 손목시계가 더 정확할 수 있다면 휴대하기 불편한 회중시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롤렉스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사진①) 사진 출처=rolex. com

1908년 첫 제품 출시, 회중시계 대체
1914년 영국 큐 천문대의 A 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시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롤렉스 손목시계(사진②) 사진출처=rolex. com
1926년 최초의 방수시계 오이스터 쿠션모양(사진③) 사진출처=rolex. com

1905년 그는 스위스 제조업체들로부터 소형 부품을 납품받아 손목시계를 제작했고, 동업자 앨프리드 데이비스와 함께 런던에 손목시계 유통업체인 ‘빌스도르프 & 데이비스’를 설립했다. 1908년부터 롤렉스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하였고 이것이 롤렉스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그는 롤렉스 이름을 짓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알파벳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조합해 보았습니다. 수백 가지 이름이 나왔지만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런던의 칩사이드를 따라 달리는 마차 2층에 앉아 있을 때 마치 마법처럼 ‘롤렉스’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롤렉스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1910년 롤렉스는 처음부터 무브먼트의 품질에 전념했다. 크로노미터의 정확도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롤렉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1910년 역사상 최초로 롤렉스 시계가 비엔의 공식 시계 평가 센터에서 수여하는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크로노미터란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관의 검정에 합격한 고정밀 시계에 주어지는 명칭이고, 1914년에 롤렉스는 항해용 시계에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수여하던 영국 큐(Kew) 천문대로부터 손목시계 최초로 A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사진②). 이로써 롤렉스 손목시계는 정확성을 대표하는 시계 브랜드가 되었다.

빌스도르프가 마주했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무브먼트를 막히게 하거나 산화시키는 먼지와 습기로부터 시계 케이스 내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1914년 후반 그는 롤렉스 시계 회사 산하 제조업체인 비엔의 에글러사에 “방수가 되는 손목시계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1919년 롤렉스는 시계의 도시로 명성이 높은 제네바로 본사를 이전하고 1920년 Montres Rolex S.A.라는 이름을 등록했다.

1922년 롤렉스는 케이스가 두 겹으로 이루어진 서브마린(Submarine) 모델을 출시했다. 바깥쪽에 위치한 두 번째 케이스에 베젤과 크리스털을 스크루-다운 방식으로 고정해 케이스 내부로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했다. 시계를 와인딩하거나 시간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외부 케이스를 열어야 하는 구조였다. 서브마린은 완벽하게 밀폐되면서도 사용이 편리한 시계 케이스를 만들고자 했던 빌스도르프의 노력이 담긴 첫 모델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오이스터(Oyster) 케이스는 4년 후인 1926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빌스도르프는 굴처럼 아무리 오래 수중에 머물러도 부품이 손상되지 않는 이 시계에 ‘오이스터(굴)’라는 이름을 붙였다(사진③). 오이스터는 시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발명품이었다. 이듬해 빌스도르프는 오이스터 시계의 이런 탁월한 특징을 홍보하기 위해 혁신적인 방법을 기획했다. 1927년 영국 브라이튼 출신의 메르세데스 글릿즈(Mercedes Gleitze)라는 젊은 비서가 영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도버 해협을 헤엄쳐서 횡단하는 일에 도전할 계획임을 알게 된 빌스도르프는 그녀에게 오이스터 시계를 착용하고 시계의 완벽한 방수 기능을 입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이스터 케이스, 롤렉스 방수시계 상징
1927년 메르세데스 글리즈가 영국해협 횡단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광고(사진④) 사진출처= rolex. com

10시간 넘게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헤치며 도버 해협을 헤엄쳐 건넜을 때도 롤렉스 시계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글릿즈가 횡단에 성공한 이후 더 타임스의 한 기자는 “오늘 저녁 그녀가 착용한 작은 골드 시계는 해협을 건너는 내내 완벽하게 작동했다”고 보도했다. 1926년 특허를 획득한 완벽하게 밀폐되는 오이스터 케이스는 롤렉스 방수시계의 상징이 되었다.

톱니바퀴를 비롯한 정교하게 제작된 부품을 보호하기 위한 오이스터 케이스는 최상급 합금으로만 제작되며 다양한 외부 충격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오이스터 시계 부품들은 다이빙 장비와 기법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깊은 곳까지 잠수할 수 있게 된 다이버들의 요구를 충족하고 시계의 방수 성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1927년 롤렉스는 이 횡단을 기념하기 위해 데일리메일의 1면에 방수 시계의 뛰어난 성능을 알리는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사진④). 이 광고를 계기로 각계 유명 인사들과 협력하는 테스티모니의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자료 참조: 롤렉스닷컴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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