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새 랜드마크인 TP타워(옛 사학연금회관)에 옛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대우증권은 ‘증권사관학교’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은 걸출한 인재들이 배출된 곳이다. TP타워 속속 입주하는 대우맨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TP타워에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 우리종합금융(우리종금),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 금융사들이 잇달아 입주를 시작했다.
우리종금은 지난 4월 29일 입주해 서울영업부가 업무를 시작했으며,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은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이전한다.
TP타워는 연면적 14만1669㎡, 지하 6층∼지상 42층 규모의 오피스로 2020년 10월 착공했다.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5·9호선 1·2번 출구와 맞닿아있는 초역세권 빌딩이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운용하는 코크렙티피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코크렙TP리츠)의 자산이며, 해당 리츠는 사학연금공단이 지분 약 97%를 소유하고 있다.
코크렙TP리츠 보고서에 공시된 임대차 현황을 보면 임차 기간이 긴 신한투자증권과 신한자산운용 등 신한금융 계열사들이 고층·중층부인 23∼41층에 입주하며, 본사 건물 재건축 기간에만 임차하는 키움증권과 키움자산운용, 키움인베스트먼트 등 키움그룹 계열사는 저층부인 4∼12층에 자리한다.
또, 한국투자증권 일부 부서가 13∼14층에 입주하며, 타임폴리오자산운용과 우리종금은 각각 15∼16층, 20∼22층에 터를 잡는다. ‘건물주’인 사학연금은 꼭대기 층인 42층에 들어선다.
여의도 안의 작은 여의도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더 이목을 끄는 것은 TP타워에 둥지를 트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옛 대우증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각각 1989년, 1993년 대우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과 인연을 맺었다.
김 사장은 대우증권 기업금융(IB)부장, 기업금융사업본부 주식인수부장 등을 거쳐 메리츠증권 IB사업본부장, 유진투자증권 IB사업본부 기업금융파트장, 미래에셋증권 IB 총괄 사장 등을 역임한 ‘정통 IB맨’이다.
엄주성 사장은 대우증권 기획실, 영업추진부를 거친 뒤 자기자본투자(PI)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2007년 키움증권에 자기자본투자(PI) 팀장으로 합류했다.
키움증권에서는 투자운용본부장과 전략운용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내고 올해 초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증권업 진출을 선언한 우리종금의 남기천 대표이사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다. 남 대표는 1989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런던법인장, 파생시장본부장, 고유자산운용본부장, 대체투자본부장 등을 지냈으며 멀티에셋자산운용·우리자산운용 대표를 거친 뒤 지난 2월 우리종금 대표로 선임됐다. 우리종금은 온라인 펀드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합병한 뒤 증권업 라이선스를 확장할 방침이다. 1등 증권사의 ‘맨파워’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은 현직에서도 해당 꼬리표를 자랑스레 앞에 배치한다. 여기 출신이란 말 한마디가 곧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이력이자 그를 대표하는 약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 변경, 사명 변경 등으로 기업은 역사 속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 DNA는 한국 금융 투자업계에 남아 있다.
‘대우맨’은 대우그룹 출신 인사를 부르는 별칭이다. 대우에서 일하다 그룹이 해체된 후 여러 곳에서 요직을 차지한 기업인들을 일컫는 말로, 증권가에서는 대우증권 공채 출신 인사를 통틀어 ‘여의도 대우맨’으로 부른다.
대우증권은 1970년 증시 태동기에 설립된 증권업계의 ‘맏형’이다. 모태인 동양증권이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대우 가족의 일원이 됐다. 1983년 10월 당시 삼보증권을 합병하며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1등 증권사’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대우증권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증권 사관학교’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은 걸출한 인재들이 대우증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낸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김기범 전 현대증권 사장, 손복조 전 토러스투자증권 대표, 황건호 전 (초대) 금융투자협회장 등 업계를 좌지우지했던 원로들이 ‘대우맨’이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도 대우맨이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증권에 합병된 이후 2021년 미래에셋대우에서 대우란 간판을 완전히 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의도 대우맨들은 여전히 증권 금융업계 곳곳에 포진해 대우의 DNA를 뿌리내리고 있다.
금융 투자업계에서 대우맨의 활약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과거 대우증권이 리서치 전문 인력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1984년 한국의 첫 민간 경제 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100% 출자해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서 철저한 교육 시스템 아래 인력을 양성했다. 이렇게 교육 받은 인력들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 배치돼 투자자에게 국내외 경제 동향과 상장 기업 정보를 알리는 등 증권사의 중추 역할을 했다.
당시 대우증권의 리서치센터는 선배가 후배를 일대일로 교육하는 전형적인 도제식 방식으로 팀워크를 통한 능력 배양에 힘을 쏟았다.
대우증권 출신인 한 금융 투자업계 인사는 “회사는 사라졌지만 열정 하나로 자본시장을 누볐던 그 시절이 제 인생의 영광스러운 기록”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우리종금은 지난 4월 29일 입주해 서울영업부가 업무를 시작했으며,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은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이전한다.
TP타워는 연면적 14만1669㎡, 지하 6층∼지상 42층 규모의 오피스로 2020년 10월 착공했다.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5·9호선 1·2번 출구와 맞닿아있는 초역세권 빌딩이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운용하는 코크렙티피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코크렙TP리츠)의 자산이며, 해당 리츠는 사학연금공단이 지분 약 97%를 소유하고 있다.
코크렙TP리츠 보고서에 공시된 임대차 현황을 보면 임차 기간이 긴 신한투자증권과 신한자산운용 등 신한금융 계열사들이 고층·중층부인 23∼41층에 입주하며, 본사 건물 재건축 기간에만 임차하는 키움증권과 키움자산운용, 키움인베스트먼트 등 키움그룹 계열사는 저층부인 4∼12층에 자리한다.
또, 한국투자증권 일부 부서가 13∼14층에 입주하며, 타임폴리오자산운용과 우리종금은 각각 15∼16층, 20∼22층에 터를 잡는다. ‘건물주’인 사학연금은 꼭대기 층인 42층에 들어선다.
여의도 안의 작은 여의도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더 이목을 끄는 것은 TP타워에 둥지를 트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옛 대우증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각각 1989년, 1993년 대우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과 인연을 맺었다.
김 사장은 대우증권 기업금융(IB)부장, 기업금융사업본부 주식인수부장 등을 거쳐 메리츠증권 IB사업본부장, 유진투자증권 IB사업본부 기업금융파트장, 미래에셋증권 IB 총괄 사장 등을 역임한 ‘정통 IB맨’이다.
엄주성 사장은 대우증권 기획실, 영업추진부를 거친 뒤 자기자본투자(PI)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2007년 키움증권에 자기자본투자(PI) 팀장으로 합류했다.
키움증권에서는 투자운용본부장과 전략운용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내고 올해 초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증권업 진출을 선언한 우리종금의 남기천 대표이사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다. 남 대표는 1989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런던법인장, 파생시장본부장, 고유자산운용본부장, 대체투자본부장 등을 지냈으며 멀티에셋자산운용·우리자산운용 대표를 거친 뒤 지난 2월 우리종금 대표로 선임됐다. 우리종금은 온라인 펀드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합병한 뒤 증권업 라이선스를 확장할 방침이다. 1등 증권사의 ‘맨파워’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은 현직에서도 해당 꼬리표를 자랑스레 앞에 배치한다. 여기 출신이란 말 한마디가 곧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이력이자 그를 대표하는 약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 변경, 사명 변경 등으로 기업은 역사 속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 DNA는 한국 금융 투자업계에 남아 있다.
‘대우맨’은 대우그룹 출신 인사를 부르는 별칭이다. 대우에서 일하다 그룹이 해체된 후 여러 곳에서 요직을 차지한 기업인들을 일컫는 말로, 증권가에서는 대우증권 공채 출신 인사를 통틀어 ‘여의도 대우맨’으로 부른다.
대우증권은 1970년 증시 태동기에 설립된 증권업계의 ‘맏형’이다. 모태인 동양증권이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대우 가족의 일원이 됐다. 1983년 10월 당시 삼보증권을 합병하며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1등 증권사’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대우증권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증권 사관학교’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은 걸출한 인재들이 대우증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낸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김기범 전 현대증권 사장, 손복조 전 토러스투자증권 대표, 황건호 전 (초대) 금융투자협회장 등 업계를 좌지우지했던 원로들이 ‘대우맨’이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도 대우맨이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증권에 합병된 이후 2021년 미래에셋대우에서 대우란 간판을 완전히 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의도 대우맨들은 여전히 증권 금융업계 곳곳에 포진해 대우의 DNA를 뿌리내리고 있다.
금융 투자업계에서 대우맨의 활약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과거 대우증권이 리서치 전문 인력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1984년 한국의 첫 민간 경제 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100% 출자해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서 철저한 교육 시스템 아래 인력을 양성했다. 이렇게 교육 받은 인력들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 배치돼 투자자에게 국내외 경제 동향과 상장 기업 정보를 알리는 등 증권사의 중추 역할을 했다.
당시 대우증권의 리서치센터는 선배가 후배를 일대일로 교육하는 전형적인 도제식 방식으로 팀워크를 통한 능력 배양에 힘을 쏟았다.
대우증권 출신인 한 금융 투자업계 인사는 “회사는 사라졌지만 열정 하나로 자본시장을 누볐던 그 시절이 제 인생의 영광스러운 기록”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