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職)과 업(業)의 차이 [김홍유의 산업의 窓]


직업에 귀천은 없으나 차별은 있다. 업으로 가면 직을 잃고, 직으로 가면 업을 잃는다. 어떤 일을 하시죠? 이제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첫인사로 자리 잡은 질문이다. 그만큼 직업이 중요하다. “업으로 가면 직을 잃고, 직으로 가면 업을 잃는다.” 참으로 무섭고 무서운 말이다. ‘직장’에 다닌다고 ‘업(業)’이 생기지 않는다.

“직업이란 말은 직(職)과 업(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즉 업을 달성하는 방법이 직이다.” 회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대부분 사람은 생계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생계형 회사원, 생계형 공무원, 생계형 교수, 생계형 자영업자 등 모두 생계형 인간이다. 형이하학에 매몰되어 다들 살아간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책이라고는 자격증 책밖에 안 읽고, 이야기라고는 먹고사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생계는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한 일이지만 이런 사람들한테서는 인간의 향기가 그립게 마련이다.

지구상에 있는 어떤 동물도 태어나자마자 걷고 달리며 먹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생계 해결은 못 하지만 먹고살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그것이 인간 조건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태어나서 군 복무 마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직장을 얻는다. 여성들은 이보다 조금 일찍 직장을 얻는다. 전 생애 37.5%가 암흑의 시대이지만 누구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나라 안에 회사가 가득하여 그런 고민을 잊고 살아간다. 즉 오라는 곳은 많은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일자리가 있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산업혁명 이후 회사를 만들 때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조직이 되었다. 인간은 자유롭게 마음대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폐쇄적인 공간에서 온종일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산업화 시절 영국의 맨체스터 공장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사람들을 공장으로 오게 하였지만 어느 사람도 자발적으로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소녀들을 공장으로 데려왔고 기계에 길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제 서서히 인간은 자신의 노동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되었다. 그 과정은 야생 들소를 가축화하는 과정만큼 지난(至難)했다.

우리는 회사에 취직하여서 한평생을 살아간다. 회사에서 공부하고 회사에서 급료를 받으며 회사에서 연금을 받는다. 이제 회사란 총과 여권이 없는 작은 국가이다. 회사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직업에 귀천은 없으나 차별은 있다. 그렇다고 반기업 정서로 기업을 해칠 수는 없다. 야성이 사라진 기업가와 도전하지 않는 직원이 모이면 기업이 망하고 더 나아가 산업과 국가가 망한다. 기업가는 죄인이고 부자는 더더욱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요즘 들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반응으로 사회가 뜨겁다.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말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다들 편하게 직장 생활하면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업을 포기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업의 선택 기준이 경제적이고 일하기 편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국가 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붕괴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서 인력 때문에 문 닫는 중소기업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직(職)을 버리고 업(業)으로 되돌아가자! 직이 모두를 결정하는 생계형 인간에서 탈피해 태어난 업으로 되돌아가 당당한 위엄을 갖고 살아가자. 먹고사는 데만 잘난 체 하지 말고 나라를 위한 일에도 노구(老軀)를 아끼지 말자. 직을 가진 정치가는 나라가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업을 가진 사람은 가장 좋은 시절에도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정치에는 업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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