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와 뒷것 김민기, 그리고 뒤틀린 목재 [EDITOR's LETTER]
입력 2024-06-24 08:00:26
수정 2024-06-24 08:00:26
[EDITOR's LETTER]
부와 권력. 이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누리면 세상은 당연하게 바라봅니다. 부와 권력을 누릴 능력이 없는 자가 누리면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부와 권력을 누릴 능력이 있는 자가 스스로 누리지 않으면 어떨까요. 세상은 그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나누는 것은 능력과 함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 한 장면을 봤습니다. 이인용 전 삼성전자 사장, 김준규 전 검찰총장, 김한 전 JB금융그룹 회장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이들의 공통점은 1970년대 신정동에서 야학을 했다는 것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의무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던 공간입니다. 이들은 한자리에서 신정 야학의 설립자이자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젊은 시절 김민기가 작곡한 노래들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위 현장에서 불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있었습니다. 1979년 후배들이 난곡에 유아원 설립 자금이 필요하다며 공연을 부탁하자 주저하지 않고 수락했습니다.
“땅 위에는 조용필, 땅 밑에는 김민기”라는 말이 있던 1980년대를 지나 그는 1990년대 무대에 다시 등장합니다. 모은 돈으로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가수 김광석, 배우 설경구·황정민·조승우 등 700명이 이곳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기획자 김민기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의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너희는 앞것이고, 나는 뒷것이지”란 말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후배를 키워 내보내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학전을 만들었습니다.
생계도 어려웠던 당시 연극판에 계약서를 도입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준 것도 김민기였습니다. 이익이 나면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익을 나눴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타운홀 미팅과 투명경영이 학전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뤄진 셈이지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성공으로 정점을 달리던 때 그는 갑자기 어린이 연극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어린이 연극은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이는 미래이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며 돈 안 되는 곳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김민기가 암에 걸려 학전은 얼마 전 문을 닫았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그에 대해 말합니다. “천재지요. 싱어송 라이터에 기획자이자 연출가로서 돈 벌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벌었을 겁니다.”
김민기의 탁월함은 단지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몸에 흐르는 천재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일관된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전 영혼을 정화시켜 준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어른 김장하’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해 큰돈을 번 그는 학교를 설립해 국가에 기부하고 주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평생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자동차도 없고 낡은 양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야구단 NC다이노스의 시구, 각종 수상,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면담 신청, 언론 인터뷰는 모두 거부했습니다. 혹여 카메라가 켜지고 자기 자랑이 될 만한 질문이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김장하는 말합니다. “나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로 인해 돈을 벌었다. 그 돈을 함부로 쓸수 없어 기부를 시작했다. 받은 이들도 사회에 갚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한 그의 말도 되새길 만합니다. “돈은 똥과 같다. 주변에 있으면 악취가 나지만 뿌려지면 거름이 돼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어른이 없는 시대’에 어른다운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능력주의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취를 과장하고, 스스로를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세뇌하고, 더 약삭빠른 동물이 될 것을 요구받는 그 시스템. 이런 사회에서 탁월한 능력과 맑은 영혼으로 사회에 울림을 준 사람들의 얘기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라는 뒤틀린 목재’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한국 경제를 이끄는 100대 CEO를 다뤘습니다.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CEO들이 더 많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부와 권력. 이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누리면 세상은 당연하게 바라봅니다. 부와 권력을 누릴 능력이 없는 자가 누리면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부와 권력을 누릴 능력이 있는 자가 스스로 누리지 않으면 어떨까요. 세상은 그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나누는 것은 능력과 함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 한 장면을 봤습니다. 이인용 전 삼성전자 사장, 김준규 전 검찰총장, 김한 전 JB금융그룹 회장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이들의 공통점은 1970년대 신정동에서 야학을 했다는 것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의무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던 공간입니다. 이들은 한자리에서 신정 야학의 설립자이자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젊은 시절 김민기가 작곡한 노래들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위 현장에서 불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있었습니다. 1979년 후배들이 난곡에 유아원 설립 자금이 필요하다며 공연을 부탁하자 주저하지 않고 수락했습니다.
“땅 위에는 조용필, 땅 밑에는 김민기”라는 말이 있던 1980년대를 지나 그는 1990년대 무대에 다시 등장합니다. 모은 돈으로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가수 김광석, 배우 설경구·황정민·조승우 등 700명이 이곳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기획자 김민기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의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너희는 앞것이고, 나는 뒷것이지”란 말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후배를 키워 내보내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학전을 만들었습니다.
생계도 어려웠던 당시 연극판에 계약서를 도입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준 것도 김민기였습니다. 이익이 나면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익을 나눴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타운홀 미팅과 투명경영이 학전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뤄진 셈이지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성공으로 정점을 달리던 때 그는 갑자기 어린이 연극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어린이 연극은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이는 미래이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며 돈 안 되는 곳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김민기가 암에 걸려 학전은 얼마 전 문을 닫았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그에 대해 말합니다. “천재지요. 싱어송 라이터에 기획자이자 연출가로서 돈 벌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벌었을 겁니다.”
김민기의 탁월함은 단지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몸에 흐르는 천재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일관된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전 영혼을 정화시켜 준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어른 김장하’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해 큰돈을 번 그는 학교를 설립해 국가에 기부하고 주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평생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자동차도 없고 낡은 양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야구단 NC다이노스의 시구, 각종 수상,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면담 신청, 언론 인터뷰는 모두 거부했습니다. 혹여 카메라가 켜지고 자기 자랑이 될 만한 질문이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김장하는 말합니다. “나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로 인해 돈을 벌었다. 그 돈을 함부로 쓸수 없어 기부를 시작했다. 받은 이들도 사회에 갚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한 그의 말도 되새길 만합니다. “돈은 똥과 같다. 주변에 있으면 악취가 나지만 뿌려지면 거름이 돼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어른이 없는 시대’에 어른다운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능력주의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취를 과장하고, 스스로를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세뇌하고, 더 약삭빠른 동물이 될 것을 요구받는 그 시스템. 이런 사회에서 탁월한 능력과 맑은 영혼으로 사회에 울림을 준 사람들의 얘기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라는 뒤틀린 목재’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한국 경제를 이끄는 100대 CEO를 다뤘습니다.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CEO들이 더 많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