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 비즈니스로 만드는 '이 남자' [강홍민의 굿잡]
입력 2024-06-24 11:40:06
수정 2024-06-25 14:30:01
‘IP 비즈니스 디렉터’ 정재식 디오리진 대표
바야흐로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극장, 만화방, PC방 등 특정 공간에서만 그 콘텐츠를 즐겼다면 이제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새 이러한 스마트한 시대로 급변하면서 그와 함께 급성장하는 산업이 있다. 바로 ‘IP(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산업이다.
영화, 웹툰, 소설 등의 콘텐츠가 IP(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영역 확장으로 각자의 콘텐츠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이를 중개하는 역할도 생겨났다. ‘IP 비즈니스 디렉터’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군이지만 콘텐츠 업계에서는 ‘라이징 잡’으로 주목받고 있다.
창작자와 사업자 그 중간에서 콘텐츠를 비즈니스 모델로 엣지있게 바꿔주는 ‘IP 비즈니스 디렉터’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요즘 IP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 단어부터 정의하고 가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콘텐츠와 IP를 혼용해서 쓰는 것 같은데, 저희가 표현하기엔 콘텐츠에 팬덤이 붙은 어떠한 현상 자체를 IP라고 칭합니다. 어떤 분야의 지적 재산이 된다함은 대다수가 그 콘텐츠를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어야 IP로서 가치를 지닌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콘텐츠는 IP의 이전단계인거군요.
“그렇죠. IP 비즈니스 디렉터라는 직업 역시 시작단계인 콘텐츠를 기획할 때 어떻게 팬덤을 모을지를 구상해내는 역할이에요. 하나의 콘텐츠가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콘텐츠가 어떤 시장에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을까, 팬덤을 형성했을 때 사업적 가치는 어디에서부터 또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실제 다른 영역(시장)으로 IP를 확산시키는 역할이죠.”
다른 영역으로의 확신이라는 게,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걸 말하는 건가요.
“단편적으론 그렇습니다. 기존의 콘텐츠를 다른 시장으로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소스의 콘텐츠를 창작해 여러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IP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을 전부 관장하는 역할이 IP 비즈니스 디렉터라 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 콘텐츠 창작팀이 따로 있나요.
“저희 회사에 스토리와 아트를 담당하는 팀이 있어요. 그들이 모여 집단 창작을 하는 셈이죠.”
"대중이 좋아할만한 트렌드, 스토리를 분석-시놉시스 설정 이후 콘텐츠 개발, 'IP바이블' 단계를 거쳐 콘텐츠 기업에 세일즈"
창작 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우선 사업개발팀에서 최신 트렌드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취향을 분석하는 편집회의를 진행합니다. 편집회의를 거쳐 만들어지는 대략의 스토리가 통과가 되면 본격적인 콘텐츠 개발이 진행됩니다. 저희는 콘텐츠의 최종 단계를 ‘IP바이블’이라고 부르는데요. 저희가 창작한 ‘IP바이블’로 게임, 영화 등 협업회사에 IP라이선스 세일즈를 하게 되는 거죠.”
콘텐츠, 즉 IP를 만들고 확장시키는 또 다른 방법도 있나요.
“기존 작가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작의 스토리는 있으나 이걸 상품으로 기획하려면 스토리에 살을 붙여 마무리를 짓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들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는 분들이 있으시죠. 캐릭터의 매력도를 높인다거나 스토리의 밀도를 높이는 작업을 작가님들에게 맡기는 거죠.”
작가들과의 계약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별로 계약을 할 수도 있고, 디오리진의 전속으로 들어오실 수도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와 계약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계약을 하는 조건들이 다 다릅니다. 어떤 곳은 글만 필요한 데가 있고, 어떤 곳은 세계관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곳도 있고요. 저흰 맞춤 정장가게처럼 고객이 원하는 부분에 맞춰 스펙을 산정해 주죠.”
"보통 계약당 5억에서 10억 원 정도···한 프로젝트 당 대략 6개월 정도 소요"
계약금의 수준도 궁금하네요.
“보통 한 건당 5억에서 10억 원 정도 돼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보통 1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일 경우 3~4개월 차에 1차 완성본을 끝내고 이후 3개월 차에 마무리를 하는 구조인데요. 스토리팀과 아트팀이 순차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겹치지 않게 추진하고 있어서 현재 1년에 약 1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요.”
창작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어떤 한 장르에서 어느 정도의 단계까지 올라온 IP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해 보여요. IP로서의 가치를 더해줄 콘텐츠를 구분하는 잣대가 있나요.
“저희가 시중에 나와 있는 약 3천개의 웹툰을 분석해 놓은 자료가 있어요. 규격화, 분석력, 캐릭터의 매력도, 장르, 시장성 등 아주 세세하게 카테고리를 나눠 분석해 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과연 이 웹툰이나 게임이 IP로서의 시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잣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가 굉장히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왜냐하면 이 자료를 근거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데이터의 가치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콘텐츠의 출발부터 세일즈까지 모두 IP 비즈니스 디렉터가 하는 역할인가요.
“그렇죠.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부터 어떤 회사에 세일즈를 할지 이 모든 과정을 핸들링하고 정하는 역할이죠.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현장 상황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해요.”
최근 IP 저작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IP 바이블’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나요.
“보통 IP 바이블이 완성되면 약식으로 출판을 하게 됩니다. 그럼 출판 번호가 생겨 저작권으로 인정되고, 그 뿐만 아니라 스토리 창작에도 저작권 등록이 가능해 IP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는 곳이 많을까라는 의문도 드네요. 업계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제가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생각이 창업으로 이어지면서 반신반의했죠. 다행히도 콘텐츠를 만드는 업계의 전문가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죠. 사실 저희가 시드투자를 빠르게 받을 수 있었던 것, 창업 2년이 채 안된 시기에 80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 것도 제가 생각한 목마름이 다들 있었던 것 같아요.”
영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먼저 기존의 콘텐츠를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버전과 더불어 어떠한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선주문을 받고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죠.”
현재까진 주로 어떤 분야에서 관심을 많이 보이나요.
“아무래도 게임쪽이 많고, IP를 필요로 하는 영상분야에서도 문의를 많이 하고 있어요.”
"기존 IP 확장 시 시장성이 있는지, 트렌드가 무엇인지 파악이 중요···
콘텐츠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건 단점 중 하나"
IP 비즈니스 디렉터가 갖춰야 할 조건은 뭔가요.
“스위트홈 원작자님과 진행 중인 드라마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원작이 웹툰인데, 사실 웹툰으로 나왔을 땐 상위권에 오른 작품이 아니었는데 넷플릭스 시리즈로 인기를 얻고 있거든요. 기존 IP를 어떤 장르로 바꿨을 때 시장성이 있을지를 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각 분야의 생태계를 알고, 트렌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하죠. 특히 어떤 콘텐츠를 접했을 때 좋다, 안 좋다는 직관적으로 소비자들도 느끼거든요. IP 비즈니스 디렉터는 그걸 넘어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이다보니 구성원들도 개성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와 함께 공동창업을 하신 분이 조민수 감독님이세요. 이분은 EA게임즈에서 반지의 제왕 프로젝트 총괄 아트 디렉터를 맡았고, 영화 ‘설국열차’, ‘괴물’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한 분이세요. 저처럼 게임사 출신이나 CJ, 네이버 등에서 경력을 쌓고 이곳으로 온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직업병이 있다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듄2’를 봤는데, 그걸 보고 나왔더니 온몸이 아프더라고요. 압도적인 퀄리티와 스케일, 스토리 전개를 보면서 좋은 콘텐츠를 즐길 수 없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어떻게 하면 저런 걸 만들까하는 고민이 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IP 비즈니스 디렉터’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전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2조6301억 달러로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30억1000만 달러로 전년도인 2021년 대표 1.5% 증가하기도 했고요.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K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매년 늘어나고 있어 ‘IP 비즈니스 디렉터’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