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면 유행이 된다”...‘협업 맛집’ 등극한 편의점[비즈니스 포커스]

[비즈니스 포커스]

: GS25가 출시한 점보(대용량) 컵라면 시리즈. 사진=GS25


“동네에 있는 GS25 편의점을 다 가봤는데도 제품을 살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 2학년 자녀를 둔 가정주부 신혜원(42) 씨는 최근 아이가 ‘동결건조 지구모양 젤리’를 사달라고 졸라 인근 편의점을 모두 돌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구매에 실패했다. 방문한 점포마다 “입고되는 즉시 ‘지구모양 젤리’가 다 나간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지구모양 젤리’는 새콤한 시럽이 든 동그란 모양의 젤리를 동결건조한 형태의 제품이다. 중국의 한 제조사가 만들었는데 현재 편의점 중에서는 GS25에서만 단독으로 판매 중이다. GS25는 지난 3월 이 젤리를 차별화 상품으로 선보였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독특한 모양과 식감을 가진 이 제품이 유튜브에서 ‘먹방(먹는 방송)’용 콘텐츠로 자주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것. 이후 10~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재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품절 대란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SNS상에는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다른 동네에 있는 GS25까지 찾아가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구매 인증글’들까지 올라올 정도다.

동결전조 지구모양 젤리.


편의점이 식품 트렌드를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GS25, CU,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들이 모객을 위한 목적으로 선보인 ‘이색 상품’들이 내놓는 족족 큰 화제를 모으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편의점이 출시한 이색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오픈런’까지 일어날 정도다.
편의점 오픈런까지 나타나최근 제과업계에 불고 있는 때아닌 ‘젤리 열풍’도 편의점에서 시작됐다. GS25에서만 판매 중인 ‘지구모양 젤리’의 엄청난 인기를 목격한 많은 제과 기업들이 편의점과 협업, 혹은 단독 판매 계약을 맺고 이색 젤리 제품들을 출시하고 나선 것이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수많은 제과 업체들이 함께 협업 젤리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러브콜’이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젤리뿐만이 아니다. 요즘 라면업계에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는 이른바 ‘빅 사이즈’ 제품이 유행인데 이 또한 편의점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식(食) 트렌드’다.

시작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GS25가 팔도의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해 ‘점보 도시락’을 출시한 것이다. 점보 도시락은 기존의 팔도 ‘도시락 컵라면’을 8.5배 키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용량 컵라면이다.

해당 제품의 출시 배경은 이렇다. GS25는 유튜브 등에서 봉지라면을 여러 개 끓여 먹는 먹방 콘텐츠의 인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겨냥해 내부에서 ‘대용량 컵라면’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대두됐고 즉각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제품을 출시할 컵라면 업체를 찾다가 팔도와 뜻이 맞았고 그렇게 빅 사이즈 ‘점보 도시락’이 5만 개 한정품으로 탄생하게 됐다.

처음에는 ‘누가 이걸 사먹겠나’라는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이는 기우였다. 출시되자마자 유명 유튜버들의 제품 먹방 영상이 쏟아졌다. 이를 본 많은 소비자들이 편의점을 찾아 제품을 구매해갔고 결국 ‘점보 도시락’ 수량 5만 개는 3일 만에 완판됐다. 더 이상 제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이를 재출시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성화에 못 이겨 결국 GS25는 ‘점보 도시락’을 정규 상품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판매 중이다. 출시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식지 않으며 고객들이 GS25를 찾게 만드는 상품 중 하나가 됐다.

이후 ‘점보 도시락’의 흥행을 본 라면 업체들이 여러 편의점에 ‘우리와도 함께 빅사이즈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건네기 시작하며 수많은 라면 업체들이 ‘빅 사이즈’ 제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라면에서 시작된 빅 사이즈 바람은 최근 삼각김밥, 빵 등으로 번지며 식품업계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편의점의 힘 더욱 커질 것”주류업계에서도 유흥업소만큼이나 편의점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애를 쏟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제품을 진열하기 위한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의점이 주류 시장에도 강력한 파급력을 미치는 플랫폼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국에 수제맥주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 편의점이다. 당시 CU가 한 수제맥주 업체, 그리고 대한제분(곰표 브랜드 소유)과 머리를 맞대 내놓은 ‘곰표 밀맥주’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후 여러 수제맥주들이 편의점과 함께 다양한 수제맥주를 내놓으면서 한국에 수제맥주 바람이 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편의점은 주류업계에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주요 거래처가 됐다.

최근에도 편의점이 주류업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번엔 하이볼이다. 소비자들의 하이볼 수요가 급증하자 수제맥주가 차지하던 냉장고 진열대 곳곳을 하이볼로 대체하고 나섰다. 곰표 밀맥주로 재미를 본 CU는 또다시 하이볼로 초대박을 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주류 제조기업 부루구루와 함께 만든 ‘생레몬 하이볼’이다.



편의점이 만든 제품답게 평범하지 않다. 얇게 썬 레몬 슬라이스를 직접 제품에 넣은 것이 특징인 이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온라인에 시음기 등이 쏟아지며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지난 4월 말 출시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약 일주일 만에 오비맥주의 카스 후레쉬에 이어 CU의 전체 상품 매출 순위(담배 제외) 2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CU 관계자는 “생레몬 하이볼은 현재 하루 약 6만 캔이 판매되고 있다”며 “출시 한 달여 만에 누적 판매량 360만 캔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세븐일레븐은 맥주 시장에서 ‘가성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달 선보인 덴마크 ‘프라가’ 맥주를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값에 판매하고 나선 것이다. 고물가 시대에 역행하는 이 제품은 출시 5일 만에 25만 캔이 판매되며 많은 고객들의 발길을 편의점으로 이끌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1000원 맥주를 출시하면서 경쟁 편의점뿐 아니라 대형마트들도 연이어 가격을 크게 낮춘 맥주 프로모션 제품, 또는 저가 맥주를 소싱해 판매하고 나섰다.

편의점들이 이처럼 이색 상품을 출시하게 된 배경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출발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업계 경쟁과 이커머스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 편의점들은 소비자들이 자사 점포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맛과 신선한 재미까지 갖춘 차별화 제품 판매다. 몇 해 전부터 GS25, CU,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들 모두 자사 점포에서만 파는 ‘이색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린 이유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편의점 자체적인 역량만으로는 기획한 상품을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하는 맛과 모양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색 상품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야 했다.

뛰어난 상품성을 갖췄음에도 판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수입사들도 타깃이었다. ‘우리 편의점에서 판로를 열어줄 테니 다른 곳에서는 판매하지 말라’는 요청을 건네며 단독 상품 수를 늘려나갔다. 품절템이 된 ‘지구모양 젤리’도 이런 과정을 거쳐 GS25에서만 판매하게 된 상품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맛과 포장, 아이디어 등 차별화가 돋보이는 이색 상품들은 출시가 되면 늘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고 어느덧 편의점의 매출을 올려주는 ‘실적 효자’가 됐다. 이색 상품을 구매하러 온 소비자들이 다른 상품까지 구매하는 ‘낙수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 제품들이 대박을 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최근에는 새로운 이색 상품을 내놓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앞으로 더 많은 이색 상품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편의점의 힘을 눈여겨 본 수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먼저 협업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CJ제일제당, 오뚜기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식품기업들 역시 먼저 편의점의 문을 두드려 얼마 전 함께 이색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게임 및 콘텐츠업체들도 빼놓을 수 없는 편의점의 고객이다. 마케팅의 일환으로 편의점 상품에 자사의 IP를 제공해 ‘캐릭터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편의점은 소비자 접근성이 가장 높은 오프라인 유통 채널로 각광받으며 갈수록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편의점에 자사 상품이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큰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신선하고 이색적인 상품들이 편의점을 통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